좋은 말씀/김재홍목사

천국은 마치 사람과 같으니 (마 13:44~48) / 김재홍목사

새벽지기1 2024. 9. 25. 03:08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 놓은 보물과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발견하면, 제자리에 숨겨 두고, 기뻐하며 집에 돌아가서는,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 밭을 산다." "또 하늘 나라는, 좋은 진주를 구하는 상인과 같다. 그가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면,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것을 산다." "또 하늘 나라는, 바다에 그물을 던져서 온갖 고기를 잡아 올리는 것과 같다. 그물이 가득 차면, 해변에 끌어올려 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내버린다."

1. 무너지는 창조세계


좋으신 주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평안과 새롭게 하시는 은혜가 저와 여러분 위에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추석 명절 연휴 잘 보내셨는지요? 너무 더웠지요? 폭염과 열대야 속에서 추석을 보내게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추석’ 가을밤이 아니라 ‘하석’ 여름밤 명절 같았습니다. 기후변화의 속도가 생각보다 너무 빠릅니다. 올 겨울 추위도 만만치 않을 거라고 합니다. 이번 주 금요일은 세계 기후 행동의 날입니다.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매주 금요일마다 학교를 결석하고 ‘미래를 위한 금요일’이라는 시위를 했던 것에서 시작된 환경운동입니다. 매년 9월 넷째 주 금요일에 전 세계 사람들이 함께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해 직접적인 행동을 하는 날입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9월 7일 강남에서 2만여 명의 시민들이 모여 ‘기후정의행진’ 모임을 가졌습니다. 기후정의란 기후위기의 원인을 제공한 자와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자가 일치하지 않는 상황이 정의롭지 못하니, 기후위기의 원인 제공자인 산업체와 정부와 같은 기관에 좀더 큰 책임을 지게하고, 기후위기에 별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음에도 기후위기로 인해 큰 피해를 입게 된 이들을 사회공동체가 좀더 책임 있게 돌보아야 한다는 개념입니다. 올 여름만해도 온열질환 사망자가 30여 명 발생했습니다. 거의 대부분 무더위에 실외에서 일하던 노동자와 논밭에서 일하던 할아버지와 할머니였습니다. 재해는 언제나 취약계층에게 먼저 찾아옵니다. 참으로 슬픈 현실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기후 위기와 같이 전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가 발생했는데도 세계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과 지혜를 모으기는커녕 계속 자연을 훼손하고 있으며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크라이나와 명분 없는 전쟁 중인 러시아도 문제지만, 중동 지역의 여러 나라들을 상대로 계속 전쟁을 일으키고 있는 이스라엘도 문제입니다. 지난 주중에는 레바논 전역에서 삐삐와 무전기 수천 개가 동시다발로 터져 30여 명이 죽고 3,000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사망자 중에는 어린이들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은 ‘아직 이스라엘에게는 사용하지 않은 많은 공격방법이 있다’라고 말함으로 삐삐와 무전기 테러가 자신들에 의한 것임을 은연중 시인했습니다. 악합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요? 이스라엘 외부뿐 아니라 내부에서도 휴전에 대한 요구가 강합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의 총리 네타냐휴는 휴전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그가 내세운 명분은 이스라엘에 저항하는 모든 세력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네타냐후는 지난 금요일 레바논까지 공습하면서 전쟁을 확대시켰습니다. 이스라엘은 살인자 가인의 후손인 라멕처럼 자기에게 해를 가한 자에게 수십 배로 복수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이스라엘의 사망자는 1,700여 명이고 가자 지구의 사망자는 대부분 민간인이었는데 44,000여 명입니다. 26배입니다. 악합니다.

어머니 지구가 심각하게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지구의 맏자녀인 인간은 욕망에 이끌려 자연을 파괴하고, 복수심에 불타 서로 싸우고 죽일 뿐 어머니 지구의 신음소리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창조질서를 회복해야 합니다. 평화를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교회 절기로 정의와 평화와 창조질서 보전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 노력해야 하는 절기인 창조절기와 왕국절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정의와 평화와 창조질서 보전이 이루어지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후 바라보시며 ‘좋다’라고 말씀하셨는데 바로 그 세계가 하나님 나라의 표본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세상’은 어느 특정 나라, 특정 인종, 특정 종교, 특정 계층의 사람이 보았을 때 좋은 세상이 아니라 생명 세계의 모든 구성원이 보았을 때 좋은 세상입니다. 그 세상이 우리가 이 땅에 이루어야 할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꿈인 동시에 우리 인류의 꿈이며 모든 피조물의 꿈입니다. 그리고 그 꿈은 예수님의 꿈이기도 했습니다.

2. 천국 비유


마태복음 13장은 마태복음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중괄식입니다. 핵심 주제가 중간에 담겨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중간인 13장 후반부에는 천국의 비유가 나옵니다. 마태복음은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말씀으로 시작해서, 천국은 마치 00와 같다는 말씀이 중간에 나오고,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해져야 한다는 말씀으로 끝납니다. 마태복음은 천국 복음, 하나님 나라 복음입니다. 그런데 왜 마태는 천국을 이렇게까지 강조했던 것일까요? 마태공동체의 상황이 천국과는 정반대의 상황, 종말적 상황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주후 70년 예루살렘 성과 성전이 로마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그로인해 유대교는 성전 중심의 종교에서 경전 중심의 종교로 바뀌게 되었고 율법에 더욱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보다는 예수를 중시하던 유대 기독교인들을 이교도로 낙인찍어 회당 공동체에서 쫓아냈습니다. 유대기독교인들은 나라의 멸망과 성전의 무너짐이라는 고통에 더해 동족으로부터 버림받음이라는 고통까지 겪어야 했습니다. 유대기독교인들로 구성되었던 마태 공동체가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 붙들 수 있는 것은 예수님뿐이었습니다. 로마가 식민지배를 하고 성전체제가 자신을 죽이려는 지옥 같은 상황 속에서도 천국,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셨던 예수님이 그들 삶의 지표였습니다.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천국에 대한 세 가지 비유는 모두 어떤 사람에 대한 비유입니다. 보물이 숨겨 있는 밭을 발견하여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팔아서 그 밭을 사는 사람, 값진 진주 그러나 그 진주의 값어치를 아직 다른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한 진주를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팔아서 사는 상인. 이 두 가지 천국 비유는 사실 같은 이야기입니다. 귀한 것인데 남들은 아직 귀한지 모르는 것을 혼자 알게 되어 그 귀한 것을 얻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이 본문은 천국을 얻기 위해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것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렸던 것처럼. 그런데 저는 이 말씀을 다른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귀하게 여겨라.’ 평범한 밭처럼 보이는 사람 속에도 보물과 같은 것이 담겨 있다. 일반 진주처럼 보이는 사람도 자세히 보면 아주 특별한 진주 같은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모든 사람을 귀히 여겨라, 사람을 귀히 여기기 위해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라, 그것이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길이다, 라는 말씀으로 읽혔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그렇게 사셨지요. 베드로는 로마가 보았을 때 어부에 지나지 않았고 유대교가 보았을 때 율법을 잘 모르는 무지렁이였습니다. 삭개오는 로마가 보았을 때 언제든 교체 가능한 소모품 같은 세리에 지나지 않았고 유대교가 보았을 때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반석을 보아내셨고, 삭개오 속에서 하나님 자녀의 모습을 보아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이 귀히 여기지 않는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심으로 당신이 결국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것을 아셨지만 끝까지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셨고, 사람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을 귀하게 여기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나라, 천국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 천국 비유는 그물에 가득 잡힌 고기 중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내버리는 어부의 비유입니다. 이 어부의 모습 속에도 예수님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이 비유는 마태복음 25장을 연상시킵니다. 예수님은 최후의 심판 때 심판자의 자리에 앉아 구원받을 자와 심판받을 자를 나누십니다. 사람들을 부르실 때 그들의 인종과 지위와 종교적 공로에 따라 부르지 않고 중심을 보고 부르셨던 것처럼 사람들을 심판하실 때에도 인종과 지위와 종교적 공로를 보지 않으시고 지극히 작은 사람 한 사람에게 어떻게 대했는가에 따라 구원받을 자와 심판받을 자를 나누셨습니다. 우리가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을 주고, 나그네를 영접해 주고, 헐벗은 자에게 입을 것을 주고, 병든 자를 돌보아 주고, 감옥에 갇힌 자를 찾아가 주었다면, 곧 우리가 그에게 천국이 되어 주었다면, 우리도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에게 천국이 되어 주지 못했다면 우리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첫 번째 비유와 두 번째 비유와 세 번째 비유에 담긴 뜻이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을 귀히 여겨라! 최선을 다해 귀히 여겨라! 그래야 천국이 이루어진다!

3. 천국은 마치 사람과 같다


마태복음 13:45의 개역성경 번역은 이렇습니다.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마태복음 13장에 나온 세 가지 천국 비유의 말씀은 제게 이렇게 들렸습니다. ‘천국은 마치 사람과 같다.’ 평범해 보이는 사람 속에도 보물이 숨겨져 있음을 알아보는 한 사람, 사람들이 똑같이 보여도 사람들 속에는 특별한 것이 담겨져 있음을 알아보는 한 사람, 그래서 그들을 귀하게 여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한 사람에 의해 천국은 이루어집니다.

서울대학교에서 보건학을 가르치는 김승섭 교수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라는 책에 한 마을 이야기가 나옵니다. 미국 펜실베니아의 로세토 마을 이야기입니다. 그 마을은 1960년대 이탈리아에서 온 이민자들이 세운 마을입니다. 마을 주민들을 진료하던 의사는 신기한 현상을 발견합니다. 옆 마을과 비교해 보았을 때 로세토 마을 사람들의 심장병 발병률이 절반밖에 안 됐습니다. 옆 마을과 식수원이 같았고, 로세토 마을 주민들도 심장병을 유발하는 술 담배를 즐겼고 비만율도 높았습니다. 이 신기한 현상을 의학자들이 연구하기 시작했고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의학자들은 그 신기한 현상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의학논문이라기보다는 수필과 같습니다.

로세토 마을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사람들이 삶을 즐기는 방식이었다. 그들의 삶은 즐거웠고, 활기가 넘쳤으며 꾸밈이 없었다. 부유한 사람들도 이웃의 가난한 사람들과 비슷하게 옷을 입고 비슷하게 행동했다. 그 공동체는 계층이 없는 소박한 사회였으며 따뜻하고 아주 친절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신뢰하였으며 서로를 도와주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있었지만, 진정한 가난은 없었다. 이웃들이 빈곤한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었다.

꼭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 모습 같지요? 로세토 마을이 그런 아름다운 공동체가 된 배경에는 한 사람의 헌신이 있었습니다. 니스코 신부. 그는 미국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이민자 마을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참여와 교육이 필수라 생각하여 주민들에게 미국 시민권을 얻어 투표하라고 독려하였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라고 적극 권장했습니다. 마을을 단장하기 위해 씨앗을 나누어주며 꽃을 가장 예쁘게 키운 사람에게 상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로세토 마을 주민 다수가 채석장에서 일했는데 임금이 형편없었습니다. 니스코 신부는 앞장서서 회사에 항의해 노동자들이 더 많은 임금을 받도록 해 주었습니다. 마을에 장례가 나면 온 마을 공동체가 함께 돕도록 했고, 누군가 파산을 하면 공동체가 그 짐을 함께 나누어지도록 했습니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자신이 위기에 처했을 때 보호해 줄 것이라는 확신이 마을 사람들의 건강을 증진시킨 것입니다. 니스코 신부는 로세토 마을 사람들을 귀하게 여겼고, 그들을 귀하게 여기기 위해 최선을 다함으로 맨땅과 같았던 로세토 마을을 작은 천국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천국은 한 사람과 같습니다. 천국은 한 사람에게서 시작됩니다. 박노해 시인은 <다시>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희망찬 사람은 / 그 자신이 희망이다
길 찾는 사람은 / 그 자신이 새 길이다
참 좋은 사람은 /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사람 속에 들어 있다 / 사람에서 시작된다
다시 / 사람만이 희망이다

중병에 걸린 지구는 쉽게 회복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기적인 인간 또한 쉽게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 전체의 새로운 변화는 쉽게 찾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희망의 조짐은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부터, 나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천국은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함을 삶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그 말씀과 그 삶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절망을 딛고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시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그저 그런 사람이 아니라 내면에 아름다운 보물- 하나님 나라의 반석, 하나님의 자녀라는 보물을 지닌 귀한 존재임을 잊지 맙시다. 서로를 귀히 여깁시다. 귀히 여기기 위해 최선을 다합시다. 우리가 그렇게 노력할 때, 멸망으로 치닫는 이 세상 또한 천국으로 변해갈 것입니다. 그 귀한 일을 기쁨으로 함께 이루어가는 청파공동체가 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