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말한 ‘전교인의 신학자화’를 어떻게 들으셨소? 끄트머리에 신학은 지성이 아니라 영성이라고 말했소. 신학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은 곧 영적으로 접근한다는 말과 같소. 왜 그런지를 여기서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거요. 그것은 아주 당연한 말이기 때문이오. 간단히 한 마디만 하겠소. 기독교 교리는 기독교 신앙의 뼈대요. 그것을 말한 사람들은 모두 신학자들이오. 신앙의 뼈대가 바로 신학의 결과라는 뜻이오. 신학자가 된다는 것은 곧 영성가가 된다는 말이오. 바울이 바로 신학자였소. 그에 의해서 믿음을 통한 칭의라는 교리가 그리스도교의 중심에 자리 잡게 되었소. 그대가 영성을 경험하기 원하면 신학을 알아야 하오.
이것이 신학교를 가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그대는 알 거요. 사명을 받았으면 신학교에 가서 목사나 선교사가 되어야한다는 말을 흔히 하오. 사명과 목사가 된다는 것은 일치하는 게 아니오. 그냥 그리스도인으로 살면 충분하오. 신학교에 간다고 해서 신학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오. 형식적으로는 커리큘럼에 따라서 신학공부를 하기는 하지만 신학적인 정보를 취득하는 것에 머물 때가 많소. 목사라는 직업을 얻고, 교회를 섬겨야 한다는 사실에 압도당해서 신학의 세계로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소. 그런 부담이 없어야 실제로 신학공부를 할 수 있소.
신학교에 가지 않고 신학공부를 할 수 있는 길이 뭔지 설명해야겠소? 간단하오. 신학책을 읽는 것이오. 대학교 철학과에 가지 않아도 철학책을 읽으면 철학적 사유를 할 수 있고, 철학자가 될 수 있는 것과 비슷하오. 문제는 좋은 신학책을 찾는 일이오. 한국 그리스도인들에게 베스트셀러가 된 책들은 거의 좋은 신학책이 아니오. 단지 신앙적 처세술에 불과한 책들이오. 그런 책들은 아무리 읽어도 신학 공부가 되지 못하오. 오히려 신앙의 상투성에 떨어지게 하오.
이렇게 바쁜 세상에서 어떻게 신학책을 읽으면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냐고, 투덜댈 사람들도 있을 거요. 어제 한 말이지만, 그런 것에 관심이 없으면 그만 두시오. 대충 신앙생활을 해도 큰 지장은 없소. 그러나 이왕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로 나섰으니 신앙의 진수를 맛봐야하지 않겠소? 교회에 나가서 사람들 만나는 재미, 교회당 짓는 재미에만 머물 수는 없는 것 아니겠소? 내년에는 좋은 신학책, 깊이 있는 신앙서적을 읽도록 하시오. 그게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그래서 영성이 풍요로운 사람이 되는 첩경이오. (2010년 12월30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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