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 해의 끝 날이오. 이렇게 한 해가 휙 지나갈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소. 한 해가 끝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소. 한 해가 가고, 다시 한 해가 오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이오. 그게 과연 당연한 일이오? 우주가 시작되고 130억년 동안 반복되었으니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당연하지 않소. 과거의 일이 미래를 무조건 규정하는 게 아니오. 마치 작년을 살고, 올해를 살았으니 내년에도 살아 있을 거라고 생각하다가 사고를 만나 죽기도 하는 것처럼 이 세상이 지금처럼 영원히 반복된다고 말할 수는 없소.
만약 그대의 삶이 올 한 해로 마감될 거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면 어떻게 살았을 것 같소? 상투적인 질문 같이 들릴 거요. 그래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시오. 결국은 우리에게 마지막 한 해가 온다는 것은 분명하오. 지금 80세가 넘은 노인들이나 시한부 생명을 살고 있는 난치병 환자들은 그걸 실감할 거요. 그대가 그 마지막 날을 의식했다면 그것을 의식하지 않고 사는 것과는 분명히 다르게 살았을 거요. 사람에 따라서 반응은 다를 거요. 조금이라도 더 살기 위해서 발버둥 치는 사람도 있을 거고, 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있을 거고, 미워했던 사람과 화해하는데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있을 거요.
올해는 이미 지났으니 이제 내년으로 우리의 질문을 옮기는 게 좋겠소. 내년이 마지막 한 해라고 생각하시구려. 그대가 젊어서 그게 실감이 나지 않을 수도 있소. 그대가 건강해서 이런 것과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소. 그렇다면 그대는 불행한 사람이오. 마지막 순간이 잠시 유보되어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이기 때문이오. 그대 앞에 놓인 수많은 자기 성취적인 요구가 생명의 진수를 가로막기 때문이오. 다시 그 안으로 들어가서 생각해보시오. 마지막 한 해에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말이오.
그대가 그리스도인이니 아무래도 신앙적으로 말해야겠소.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이 종말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거요. 마지막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그 순간이 임박해 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느끼고 사는 것이 그리스도교 신앙이오. 그 마지막은 끝나는 순간이면서 동시에 완성되는 순간이오. 끝난다는 사실은 드러났지만 완성된다는 사실은 아직 숨겨져 있소. 그 숨겨진 것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경험하고 믿소. 그래서 마지막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절망이면서 동시에 희망의 순간이오. 절망과 희망을 함께 살아갈 수 있겠소? 설교 조로 금년의 마지막 말을 해서 미안하오만, 어쩔 수 없소이다. 이것보다 더 분명한 사실이 없으니 어쩌겠소. 잊지 마시구려. 마지막이 오고 있소. 생명 완성이 순간이 말이오.(2010년 12월31일, 금, 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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