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박완서 소설가의 산문집을 읽고 있소이다.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읽소. 자투리 시간은 주로 밥 먹을 때요. 이게 밥에게는 미안한 일이오. 밥의 고마움을 생각해야하고, 밥맛을 음미해야 하는 순간에 책을 읽다니. 그래도 어쩔 수 없소. 산문집 이름은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요. ‘내 생애의 밑줄’이라는 꼭지의 글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오.
지금 나는 보통 노인과 다름없이 내 건강이나 우선적으로 챙기며, 내 속으로 낳은 자식들과 그들이 짝을 만나 새롭게 만든 가족들의 기쁜 일을 반기고 어려움을 나누며 정상적으로 평범하게 살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 소리 없이 나를 스쳐 간 건 시간이었다. 시간이 나를 치유해줬다. 그렇다면 시간이야말로 신이 아니었을까. <중략> 그나저나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가지. 고통의 기억뿐 아니라 기쁨의 기억까지 신속하게 지우면서. 나 좀 살려줘, 비명을 지르며 뛰어내리고 싶게 시간은 잘도 가는구나.
박완서 선생님은 벌써 80세가 넘으셨소이다. 로마가톨릭 신자요. 1988년도에 참척의 고통을 겪으셨소. 그 전에 남편을 잃었소. 아주 오래 전 그분이 가톨릭 서울교구 주보에 연재한 성서묵상 글 모음집을 읽었을 때 성서를 보는 평신도의 시각이 목사보다 낫다는 생각을 했소. 위 글도 곰곰이 새겨보시오. 시간이 자신을 치유해줬다고 고백하오. 시간이 신이 아닐까 말하고 있소. 고통만이 아니라 기쁨의 기억까지 지우는 능력이 바로 시간이라는 거요.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뛰어내리고 싶다고 하오. 솔직한 고백이오.
한 해가 다 가고 있소. 2010년 한 해, 어떻게 사셨소? 뭐가 남아 있소? 뭐를 놓치고, 뭐를 잊었소? 모든 것을 무(無)로 돌려버리는 시간이 두려울 때가 있을 거요. 한 걸음 더 나가보시오. 하나님의 정의로운 심판 능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오. 그 주체가 하나님이라면 시간은 결국 사랑이고, 은총이 아니겠소?(2010년 12월28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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