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주기도(18)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6. 26. 05:22

-거룩한 이름(4)-

 

     루돌프 오토라는 종교학자의 책 <Das Heilige>를 그대는 혹시 읽어보셨소? 내 기억으로는 분도출판사에서 번역되어 나왔을 거요. 거기서 오토는 종교경험의 본질을 ‘누미노제’, 즉 ‘거룩한 두려움’이라고 했소. 두려움이면 두려움이지 도대체 ‘거룩한’ 두려움이라는 게 무슨 말이오.

 

    내 둘째딸 이야기를 한 가지 하겠소. 그 아이가 첫돌인지, 두 살 때인지 모르겠지만 대충 그만한 나이 때 이야기요. 생일 케이크에 촛불을 밝혔소. 그 아이가 그 촛불을 바라보는 표정이 아직도 내 머리에서 잊히지 않소. 신기하고 놀랍다는 표정이었소. 촛불을 처음으로 본 모양이오. 그 전에도 보았을지 모르지만 그 아이의 의식에 자리를 잡고 표정으로 나타날 수 있을 정도로 강하게 경험한 것은 그때가 처음일 거요. 그 모습을 보면서 처음 불을 발견한 유인원들의 느낌이 어땠을지 상상해보았소. 당시 유인원은 호모 에렉투스였일 거요. 불은 그들이 일상에서 경험하던 것과는 전혀 성질이 다른 것이오. 불이 나무와 동물들을 태우는 걸 보고 무서운 짐승 같다는 생각을 했을지 모르오.

 

     누미노제는 전혀 낯선 것을 경험했을 때 나타나는 어떤 충격으로 가리키오. 그 낯선 이가 바로 하나님이오. 어느 정도로 낯선 존재인지는 그에게 이름을 붙일 수 없다는 사실과 그를 본 자는 죽는다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소. 좀더 진지하게 생각해보시오. 누미노제 경험이 실제로 어떤 것이겠소? 그대는 직접 경험해 보았소? 이런 질문에 까딱 잘못 대답하면 사이비 교주가 될 수 있소. 그런 정도도 위험한 질문이고, 위험한 대답이오. 지난 인류 역사에서 자신이 신탁을 받은 자처럼, 더 나아가서 자신이 신이며 신의 아들인 것처럼 외친 이들은 많았소. 예수도 그런 이들 중의 하나라는 조롱을 받기도 했소. 이런 의심은 지금도 여전하오. 우리는 그런 이들에게 대답할 준비를 해야 하오. 지금 우리의 공부가 바로 그런 준비의 일환이기도 하오.

 

     그대는 어떤 때 거룩한 두려움을 경험하시오? 어떤 이들은 예술가들의 영감이 바로 그것이라고 대답할 거요. 그들은 자신들도 어찌 절제할 수 없는 어떤 영에 사로잡히는 거요. 거의 신들림 상태에서만 예술 행위는 가능할 거요. 그런 경험은 낯선 것에 대한 경험에서 오는 것이 분명하오. 철학자들이 말하는 존재나 도 경험도 그런 것과 비슷하오. 그들은 자신들의 인식과 경험을 근본적으로 뛰어넘는 어떤 세계와 접하는 거요. 그 이외에 크고 작은 종교 경험들이 여기에 해당되오. 큰 틀에서 보면 기독교의 하나님 경험도 이와 비슷하오. 그런 현상이 성서 곳곳에 나오고 있소. 기독교의 가장 결정적인 하나님 경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어진다는 것이 다른 종교나 철학, 또는 예술 경험과의 차이요. 복음서에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행위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는 표현이 자주 나오오. 그 놀라움이 바로 누미노제, 즉 거룩한 두려움이요.

 

     우리는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 사건을 타성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소. 예수는 우리를 편하게 해준다는 거요. 내 건강도 지키고, 내 직장도 지키고, 내 가정도 지키는 분이니, 아주 익숙한 분이오. 예수는 마치 집안의 품위를 높여주는 샹들리에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거요. 적당한 장소에 늘 그렇게 자리해서 우리 삶을 평안하게 만들어주는 대상인 거요. 그런 방식으로 영성의 긴장을 지속시킬 수는 없소.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 영접’에 대한 뜨거움을 살려내려고 애를 쓰오. 자신의 감정을 고조시키려고 애를 쓰오. 일종의 복고적인 신앙으로 돌아가는 것이오. 그런 방식의 신앙이 근본적으로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런 행태들이 예수 그리스도 사건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자신 자신에게 매달려 있기 때문이오. 생각해보시오. 남녀 연인들도 첫사랑에만 빠져서 사랑을 존속시킬 수는 없는 것 아니겠소. 우리의 영성이 살아나려면 예수 그리스도 사건을 전체적으로 낯설게 경험하는 데서 시작하오. 낯설다는 말보다는 새롭다는 말이 낫겠소. 모양만 새로운 게 아니라 내용까지 새롭게 다가와야 하는 거요. 거기서 우리는 ‘거룩한 두려움’을 느낀다오. 네가 선 땅은 거룩한 곳이라는 말,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온 세계에 가득하다는 말이 그런 경험을 가리킨다오. 그대는 나이가 들면서 그쪽으로 가고 있소? 아니면 신앙생활의 요령만 느는 거요.(2010년 8월6일, 금, 계속 무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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