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구름에 달 가듯이 (창세기 23장) / 김영봄목사

새벽지기1 2024. 5. 22. 04:47

해설:

이야기는 또 다시 20여 년의 시간을 뛰어 넘어 이어집니다. 사라는 127세에 세상을 떠납니다. 이삭을 낳은 지 37년 후의 일이요, 모리아 산 사건이 있은 지 20여 년 후의 일입니다(1절).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아브라함은 “곡을 하며 울었”(2절)습니다. 사라는 그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애도의 과정을 끝낸 후에 그는 헷 사람에게로 가서 무덤으로 사용할 땅을 사게 해 달라고 부탁합니다(3절). “나는 여러분 가운데서 나그네로, 떠돌이로 살고 있습니다”(4절)라는 말에서 보듯, 아브라함은 그 때까지 땅 한 뙈기도 자신의 소유로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요청에 대해 헷 사람들은 아무 곳이든 마음대로 사용 하라고 대답합니다(5절). “어른은,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세우신 지도자이십니다”(6절)라는 말에서 보듯, 그들은 아브라함을 영적인 인물로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그들의 선의에 감사하는 뜻으로 일어나 그들에게 절을 하고는 다시 요청합니다. 그는 이미 막벨라 굴을 아내의 묘지로 점 찍어 두고 있었습니다. 팔레스틴 지역에는 돌산이 많기 때문에 자연 동굴이나 인조 동굴을 무덤으로 사용했습니다. 그 굴은 에브론이라는 헷 사람의 소유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헷 사람들에게, 에브론을 설득하여 막벨라 굴을 자신에게 팔게 해 달라고 부탁합니다(7-9절). 땅 주인 에브론이 그들 중에 있었는데 아브라함이 그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에브론은 아브라함에게 그 굴과 굴에 딸린 밭을 모두 무상으로 주겠다고 제안합니다(10-11절). 그 말을 듣고 아브라함은 또 한 번 큰 절을 한 후에 정당한 값을 치루게 해 달라고 사정합니다(12-13절). 에브론은 굳이 그럴 것 없으니 무상으로 가지라고 답합니다(14-15절). 하지만 아브라함은 고집을 꺾지 않고 은 4백 세겔을 주고 그 땅과 굴을 매입합니다(16절). 

 

아브라함은 헷 사람들이 모두 지켜 보는 앞에서 토지 매매 절차를 이행하고 아내를 장사 지냅니다(17-20절). 이렇게 하여 가나안 땅에 처음으로 아브라함 소유의 땅이 생깁니다. 나중에 아브라함도 죽어서 이곳에 묻힙니다. 이 무덤은 아브라함 자손들에게 있어서 하나의 이정표가 됩니다. 야곱은 흉년을 피하여 이집트로 이사한 후에 세상을 떠날 때 자식들에게 자신의 시신을 막벨라 굴에 묻으라고 유언을 남깁니다(49:29). 낯선 땅에서 조상이 묻힌 무덤은 자손들에게 이정표가 되어 준다는 사실을 여기서 봅니다.

 

묵상:

헷 사람들과의 협상 과정에서 우리는 영적으로 완숙함의 경지에 오른 아브라함을 만납니다. 아마도 모리아 산에서의 체험이 그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을 것입니다.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시험은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지만, 그렇기에 그 시험은 그의 영성과 인격을 새로운 차원으로 옮겨 놓았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모리아 산 이후의 아브라함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 주는 하나의 스냅 사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방 민족들에게조차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로 인정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 인정과 존경을 누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끝내 고집을 부려 에브론에게 제 값을 치루고 밭과 굴을 사려는 태도에서 그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가나안 땅에 도착한 이후 60년이 넘도록 땅 한 뙈기도 소유할 생각 없이 정처 없이 떠돌아 다녔다는 사실도 놀랍습니다. 이민자들에게 가장 안정감을 주는 것은 토지입니다. 그렇기에 이민자들은 어떻게든 집을 사려하는 것입니다. 고향으로부터 뿌리 잘린 불안감을 토지 소유로 달래 보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우리와 다르지 않았을 터인데, 그는 사라가 죽을 때까지 무덤으로 쓸만한 땅조차 소유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모리아 산에서 아들 이삭에게 매어 있던 희망의 줄을 끊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믿고 고향을 떠난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은 이후로 하나님이 아니라 이삭을 믿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삭에 대한 믿음의 줄을 끊도록 이 시험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런 시험을 통해 영적으로 도약했기에 그는 땅 소유에 목을 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그네처럼, 유랑민처럼 살 수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그는 막벨라 굴을 거저 가지라는데도 극구 사양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모두 “땅에서는 길손과 나그네 신세”(히 11:13)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고향이 따로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우리가 소유하고 사용하는 모든 것은 잠시 빌려 쓰는 것입니다. 결국은 모두 다 놓고 떠나야 합니다. 우리가 누릴 영원한 소유물은 하나님 나라에 있습니다. 그것은 이 땅에서 가질 수 있는 것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습니다. 그 믿음과 소망으로, 이 땅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시간 동안, “구름에 달 가듯이” 자유하게 살아가는 것이 완숙한 믿음의 사람이 사는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