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마 9:27-36)
회당장의 딸을 치유하신 예수님은 다른 곳으로 복음을 전하시려고 떠납니다. 그때 두 사람의 시각장애인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다윗의 자손으로 부른 이들은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묻습니다. 그러자 주여 그러하다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믿음을 보시고 눈을 고쳐주십니다.
믿음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믿음은 지식과 확신과 입술의 고백입니다. 시각 장애인은 예수님이 다윗의 지손인 메시야임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능히 고쳐주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입술로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런 후에 예수님은 이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하였지만 이들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후에 귀신 들려 말 못하는 농아인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자 귀신이 쫓겨납니다. 농아인은 말을 하게됩니다, 이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비방하기를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고 말을 합니다.
바리새인들의 모습에서 안타까움을 봅니다. 마음이 삐둘어져 있으면 선을 보고도 기뻐하지 않습니다. 보았음에도 부정하는 것은 참으로 불쌍하고 슬픈 일입니다.
이를 뒤로하고 예수님은 도시와 마을을 돌아다니며 천국복음을 증거하십니다. 예수님의 눈에 목지 없는 어린양들이 방황하고 기진하며 고생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예수님은 눈에 들어온 것을 표현하시기를 추수할 곡식은 많은데 추수할 일꾼이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추수할 일꾼을 보내주기를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천국복음은 믿음으로 구원받아 천국백성이 되는 일입니다. 이 일은 천국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이뤄집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복음을 들음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이유가 천국복음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교회는 복음을 전할 때 살아있습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교회라 할 수 없습니다. 복음을 들은 성도들이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로 살아갑니다. 추수할 일꾼입니다.
교회는 가난하고 힘든 이들, 병들고 아픈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믿움을 갖게하고 위로받고 치료받게 해야 합니다. 비록 바리새인들과 같은 이들이 선한 일에 대하여 비방하지만 이겨내야 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6:9)
목자 없는 어린 양들이 여전히 방황하고 있는 이 시대에 주님이 걸어가셨고, 사도들이 따랐으며 교회사의 증인들이 함께했던 믿음의 길, 천국복음을 전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복음에 따라 사는 길에 함께하기를 오늘도 기도합니다. 우리 모두 이러한 은혜 가운데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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