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묵상

화평이 아니요 검이라 (마 10:34-42)

새벽지기1 2023. 2. 14. 04:56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 10:34) 

사람 앞에서 하나님을 시인하는 삶을 존귀하게 여기신 주님은 제자가 얼마나 존귀한지를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말씀하심으로 제자의 아름다움을 말씀합니다.

세상에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왔다고 말씀합니다.

검의 기능은 참과 거짓을 가르는 일입니다.

부패하고 거짓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주님은 성육신 하셨습니다.

주님은 가정의 불화를 말씀하면서 검의 의미를 해설합니다.

주님은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이라 말씀합니다(35-36).

이 원수는 사랑의 대상에 대한 불화입니다.

부모가 자녀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면 자녀들이 부모를 싫어합니다.

자녀가 부모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면 부모가 자녀를 싫어합니다.

주님은 이러한 현실 가운데 제자의 삶을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첫째, 모든 삶의 우선순위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의 우선순위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그것이 부모와 자녀라 할지라도 같습니다.

 

둘째,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합니다.

대신하여 십자가를 져주지 않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부인하는 것은 제자의 길이 아닙니다.

믿음의 길은 복음과 함께 고난받는 삶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갑니다.

자기 욕망을 위하여 살지 않습니다. 

세속적 세계관은 모든 중심이 인간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습니다.

사나 죽으나 주의 것입니다.

제자의 삶에 대한 말씀 후에 제자가 가진 영광을 말씀합니다.

우선 제자를 영접하는 것은 곧 예수님과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 됩니다.

아브라함이 부지중에 그리스도를 영접한 것과 같습니다.

제자의 신분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 잘 보여줍니다.

또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습니다.

선지자는 말씀을 전하는 존재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자를 존귀하게 여길때 선지자가 누리는 생명의 면류관을 받습니다.

또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의 면류관을 받습니다.

어느 시대나 공의를 행하는 자들이 환영받지 않습니다.

공의를 길 바닥에 내 던지는 세상에서 공의를 말하고 행하는 것은 정말 용기있는 삶입니다.

그런 의인을 영접하고 함께하는 것은 동일하게 의로운 일입니다.

의인의 복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작은 자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결단코 받은 상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작은 자가 하나님께 얼마나 소중하고 큰 존재인지를 알려주셨습니다.

세상은 큰 자를 존중합니다.

그래서 작은 자를 무시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생각은 단릅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합니다.

작은 자를 존중히 여기는 것이 새언약 백성의 모습입니다.

주님은 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참과 거짓된 신앙이 선명하게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참된 제자의 자세와 그 영광을 보여주셨습니다.

오늘도 주님의 말씀앞에 깨달음과 함께 순종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알면서도 잘 못하는 부족함을 용서하시고 끝까지 감당할 수 있도록 간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