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오병이어 (79) -오병이어와 일상 (막 6:43,44)

새벽지기1 2023. 1. 12. 06:14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저는 어제의 묵상 마지막 대목에서 오늘 우리의 일상에는 부활의 흔적이 전혀 없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이 질문은 당연히 부활의 흔적이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우리는 일상에서 어떻게 부활 생명을 경험할까요?

 

사람들은 절망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경우라든지 도덕적으로 새로워지는 걸 그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군요. 또는 씨앗에서 꽃이 핀다거나, 부활절에 우리가 흔히 예로 들듯이 달걀에서 병아리가 나오는 생명현상들을 그렇게 볼 수도 있구요. 그런 것들을 부활생명의 간접적인 증거들이라고 할 수 있긴 하지만 그런 자연현상은 결정적인 게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 생명의 영인 성령과의 소통이 그 증거입니다. 잠정적인 이 세상에서 우리가 부활생명을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바른 길은 성령과의 소통입니다. 이렇게만 말하면 우리는 또 혼란스러워집니다. 성령과의 소통이 여전히 명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간혹 잠을 자다가 비몽사몽간에, 또는 기도하는 중에 어떤 소리를 듣는 일이 있겠지만 성령과의 소통을 그런 현상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아주 특별한 경우에 그런 현상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서 볼 때는 그것이 대답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대답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존재하십니다. 창조도 언어로 일어났습니다. “빛이여 있으라.” 하니 빛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 언어는 ‘다바르’, 즉 창조의 힘입니다. 로고스인 예수님은 태초에 있었던 그 다바르이십니다. 구체적인 우리의 역사를 떠나시어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예수님은 지금 전혀 다른 존재방식인 성서말씀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성서말씀을 바르게 이해한다면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며, 더 나아가서 부활생명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