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오병이어 (75) -오병이어와 일상 (막 6:43,44)

새벽지기1 2023. 1. 10. 06:42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인간의 자유의지를 전제하지 않으면 인간의 죄 문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처럼 눈이 밝아진다는 뱀의 유혹을 거절할 수도 있었지만 결국 받아들였습니다. 그것이 자유의지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한 하나님의 창조는 실패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이 자유의지로 인해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사태가 오는 것까지 감안하면서도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배반의 모험이 허락되지 않은 사랑은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모든 것을 선택할 자유를 주심으로 사랑의 극치를 실현하셨습니다.

 

거꾸로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었다면 어떨까요? 우리가 이 세상에서도 그와 비슷한 경우를 봅니다. 소위 마마보이는 자유의지가 없습니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마마보이라고 한다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사랑의 관계가 성립될 수 없습니다. 그런 관계에서는 결코 행복을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자유의지만으로 인간의 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을 유혹하는 존재가 없다면 인간은 죄에 빠질 수 없습니다. 도대체 유혹자는 어디서 왔을까요? 에덴동안의 뱀은 누구의 허락을 받고 아담과 이브를 유혹했을까요? 하나님을 대적하는 또 하나의 궁극적인 세력이 존재한다는 말인가요? 이 문제는 더 이상 나가지 맙시다. 거기까지 언급하기에는 말씀묵상의 자리가 너무 좁습니다. 어쨌든지 저는 오늘의 교회 지도자들이 기독교의 죄 문제를 통시적으로 접근하지 못하고 죄책감을 강조하는 쪽으로만 접근함으로써 결국 생명을 훼손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