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비유와 예수의 정체(막 4:33)

새벽지기1 2022. 10. 24. 07:10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막 4:33)

예수님이 비유로 가르치신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를 직접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그게 이상하지요?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왜 하나님의 나라를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으셨을까요? 못하신 건가요, 안하신 건가요?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자신은 직접 본 것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궁극적인 실체를 직접 보았다면 그것을 그대로 말하면 되지 않았을까요? 요즘 천국을 직접 보았다고 선전하고 다니는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조금 더 노골적으로 질문을 해 봅시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직접 보았을까요? 이 말이 신성모독처럼 들릴지 모르겠군요. 우리는 아주 어려운 사태에 빠져 들었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그게 무엇인지도 별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이 말은 곧 그가 하나님을 대상으로 생각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을 바로 하나님의 아들, 곧 성자로서의 하나님이라고 믿습니다. 이게 서로 모순입니다. 주체와 객체가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요? 이 모순을 뚫고 들어가지 않으면 우리는 초기 기독교의 신앙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이 모순을 받아들입니다. 이에 대해서 한 마디만 설명한다면, 초기 기독교인들의 신앙에 의하면 예수님은 하나님과 구별되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본체’였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를 비유로 가르치셨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 나라와 구별되면서도 동시에 일치한다는 뜻입니다. 구별되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설명할 수 없으며, 일치하기 때문에 비유적으로 설명했습니다. 비유의 가르침은 예수의 신성이 어떤 성격인지를 보여주는 게 아닐는지요. 공연히 어렵게 말을 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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