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묵상

욕망과 분열 (삼하 19:40-20:13)

새벽지기1 2022. 10. 23. 07:03

"43 이스라엘 사람이 유다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는 왕에 대하여 열 몫을 가졌으니 다윗에게 대하여 너희보다 더욱 관계가 있거늘 너희가 어찌 우리를 멸시하여 우리 왕을 모셔 오는 일에 먼저 우리와 의논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나 유다 사람의 말이 이스라엘 사람의 말보다 더 강경하였더라 "(삼하 19:40-20:13) 

다윗은 압살롬을 물리치고 다시금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그러나 새로운 왕국의 시작은 쉽지 않았습니다. 포용의 마음은 욕망의 도전에 부딪혀 분열의 씨앗을 만들어 냅니다.

북이스라엘 10지파와 유다지파의 정권쟁탈은 결국 유다지파의 강경함이 승리를 거둡니다. 서로의 주장을 통하여 정권에 가까이 가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합니다. 도적질, 멸시라는 감정섞인 말까지 나옵니다. 서로 의논하지 않고 즉 협치하지 않고 마음대로 결정하였느냐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유다지파는 자신들의 주장대로 감행합니다. 분열의 씨앗이 자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베냐민 지파의 사람 세바가 반란을 일으킵니다. 세바는 불량배입니다. 이 말은 벨리알로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종종 사단을 표현할 때 쓰는 말입니다. 그런데 마음이 상한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세바에게 동조하고 따릅니다. 협치없는 진행된 권력다툼은 결국 또다른 분열을 가져옵니다.

예루살렘에 이른 다윗은 후궁에 대하여 별채에 가둡니다. 그리고 세바를 진압하기 위하여 압살롬의 군대장관이었던 아마사를 통하여 유다 지파가운데 삼일안에 군사를 모집하라고 명령합니다. 아마사를 보낸 것은 요압의 행위에 대한 다윗의 불편함을 보여준 내용입니다. 아마사가 군대장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군사 모집이 쉽지 않았습니다.

삼일이 되어도 어렵게 되자 다윗은 요압의 동생 아비새를 불러서 세바를 잡으라고 명령합니다. 아비새는 다윗의 근위병들을 데리고 세바를 쫓아갑니다. 그런데 이때 명령을 받지 않았던 아비새의 형인 요압이 자발적으로 따라갑니다.

요압의 출정에는 다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기브온에 이르렀을 때 아마사를 만납니다. 요압은 아마사가 의심하지 않도록 칼집을 헐렁하게 하여 미리 칼이 땅에 떨어지게 합니다. 그리고 친근하게 형이라고 부르며 인사하는 사이에 칼로 아마사를 죽입니다. 그러자 함께 출정하였던 군사들이 요압을 군대장관으로 삼고 따릅니다. 그리고 세바를 쫓아갑니다.

세바와 북이스라엘의 행위만이 아니라. 요압의 행위도 이스라엘을 분열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이 모두는 다 욕망의 열매입니다. 정치권력을 누리고자 하는 욕망이 모두에게 상처를 주고 분열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탐욕은 패망에 이르는 길입니다. 탐욕은 살리는 일을 하지 않고 죽이는 일을 합니다. 유다, 북이스라엘, 세비, 요압 모두 자신의 욕망을 취하기 위하여 죽이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그러나 결국 자신이 죽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검을 사용하는 자는 검으로 망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정치적 메시야로 이 땅에 오지 않았습니다. 정치권력은 사람의 영혼을 구할 수 없습니다. 잠시의 쾌락은 즐길 수 있지만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보이는 것은 잠깐이고 보이지 않는 것이 영원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 주님만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세상을 보고 사람을 볼 때 만족함이 없습니다. 주님안에 있을 때 탐욕과 싸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에 가장 강력한 시험은 탐욕입니다. 비전을 가장한 욕망입니다. 이 욕망을 죽여야 영혼이 삽니다. 오늘도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