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창골산 봉서방

정죄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때

새벽지기1 2022. 10. 10. 08:25

정죄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때



글쓴이/봉민근


때로 나는 비겁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생각을 한다.
잘못된 것이나 불의를 보고도 화합이 깨어질까 봐 말하지 못할 때가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이나 이웃의 잘못을 볼 때에 정죄하는 일에 빠르게 반응한다.
좋은 뉴스보다 나쁜 뉴스는 전파력이 강하고 뇌리에 각인이 되기가 쉽다.

자초지종을 정확하게 알아보기도 전에 귀에 들린 대로 입이 먼저 반응하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오판하게 만든다.
간음하다 잡힌 여인은 율법적으로 죽어 마땅한 여인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주님은 간음한 여인에게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말씀으로 대응하셨다.

사람들은 정의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을 짓밟고 무고한 사람들을 정죄하는지 모른다.
사랑이라는 회초리가 아니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밖에 없고
잘못한 사람들을 벌을 주고 혼내어 준다고 해서 근본이 변하지를 않는다.

공의를 내세우지만 사랑 없는 공의는 자신들의 감정을 나타내는 것일 수밖에 없다.
기독교의 정신은 사랑이라는 밑바탕 위에 공의도 성립하게 된다.

사랑 없는 정죄는 원수를 맺게 하고 사랑 없는 공의는 원망과 공포심 만을 자극할 수밖에 없다.
사랑은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지만 공의는 정죄하며 사람들을 심판할 뿐이다.

기독교인은 불의를 보고 가만히 모른 체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원인을 확실히 파악하기 전에 정죄하는 것은 금물이다.
정죄하고 판단하기 전에 사랑이라는 멍석을 먼저 깔아 놓아야 한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했다.
잘못을 뉘우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에 주께서 우리의 죄만을 보셨다면 살아남을 자가 얼마나 될까?

그렇다고 해서 죄와 불의를 보고 가만히 있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고 했다.
죄에 대하여 단호하게 대처하되 사랑의 마음을 품고 행해야 한다.

사람들을 올바른 빛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명이요 본분이다.
우리는 할 수 없는 일이 많기에 기도 할 수 있는 무릎을 주셨으며 갈바를 모르기에 성경을 통하여
깨닫게 하시며 성령을 통하여 도우시는 은혜를 주신 것이다.

정죄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때 먼저 그리스도의 사랑에 마음을 품어야 한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하셨던 주님처럼............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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