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에스겔서 31장: 이집트의 교만

새벽지기1 2022. 9. 22. 07:09

 

해설:

앞의 예언이 임한 지 2개월 정도 지나서 또 다른 예언이 에스겔에게 임합니다(1절). 이집트가 아직 심판 당하지 않은 상태에서 주님은 과거형으로 말씀하십니다. 그 심판은 이미 일어난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한 때 불멸의 왕국으로 군림 했던 앗시리아에 이집트를 비유하십니다. 앗시리아는 레바논의 백향목과 같았습니다(2-3절). 이집트 역시 앗시리아 처럼 나일 강의 혜택을 입어 큰 나무로 성장했고 뭇 민족이 그 가지와 그 그늘 안에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동산 안에 있는 에덴의 나무들(즉 이스라엘과 유다)도 나일 강에서 뻗어난 나무를 부러워 했습니다(4-9절).

 

하나님께서 그 나무를 영화롭게 하셨는데, 그 나무는 스스로의 능력으로 그렇게 된 것으로 여기고 교만 해졌습니다(10절). 그래서 주님은 그 나무를 심판하셨습니다. 나무는 베어지고 그 나무에 깃들었던 새들은 모두 도망쳤습니다(11-13절). 그렇게 심판하신 이유는 그 나무가 교만에 머물러 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14절). 그 나무가 심판을 받아 스올(죽음의 세계)로 내려갈 때 그 나무에 의지하고 있던 새와 짐승들이 같이 스올로 내려갈 것입니다(15-18절).

 

묵상:

두로 왕의 경우에도 교만이 문제였습니다(28장). 두로의 번영과 영광이 그로 하여금 스스로를 신으로 여기게 만들었습니다. 그가 누린 복이 화근이 되었습니다. 이집트 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이 외세의 침입에 대한 염려 없이 번영을 구가하고 영광을 누린 이유는 하나님께서 허락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로와 그의 통치 아래에 있던 사람들은 그것을 자신들의 능력의 결과로 여기고 스스로를 신으로 여기고 그 영광을 영구화 하려 했습니다. 오늘 남겨진 이집트 유적들은 인간의 자아가 최대치로 부풀려지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물입니다. 그 위용과 규모에 감탄하지만, 사실은 인간의 죄성을 보여주는 흉물입니다. 

무력한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우리도 때로 우리 자신의 능력 때문에 혹은 우리가 처한 상황 때문에 “이만하면 됐다! 이렇게만 가자!”고 생각하며 우쭐 해집니다. 우리의 본성이 이러하니, 두로와 이집트 같은 번영한 국가를 통치하는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교만에 빠지기가 더욱 쉬웠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로 왕과 이집트 왕의 교만을 두고 뭐라 할 자격이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다. 우리도 그런 자리에 앉으면 더 심한 교만에 빠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질적으로는 그들이 우리와 비교할 수 없는 복을 누렸지만, 영적으로는 우리가 훨씬 안전한 자리에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 5:3)라고 하셨습니다. 가난한 것, 연약한 것, 무력한 것, 무능한 것이 세상적으로는 불행이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축복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축복은 하나님 안에 머물게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