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두로는 이스라엘의 북쪽 해안에 가까운 섬에 세워진 도시국가였습니다. 그 도시는 해양 무역의 통로로서 고대로부터 매우 번창했습니다. 이 예언은 유다 백성이 포로로 잡혀온 지 십일년 되는 해에 에스겔에게 임합니다(1절).
두로의 주민들은 예루살렘이 바빌로니아에게 멸망 당하는 것을 보고는 자신들이 그로 인해 이득을 보게 될 것이라며 기뻐합니다(2절). 하지만 주님은 그들도 같은 운명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3-6절). 그 심판은 느부갓네살을 통해 이루어질 것입니다(7절). 그는 예루살렘을 공략한 동일한 방법으로 두로를 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두로는 그물이나 말리는 맨바위처럼 될 것입니다(8-14절).
두로가 멸망하는 것을 보면서 해변 국가들의 왕들은 두려워 떨며 두로를 위해 애가를 부를 것입니다. 모두가 선망했던 영화로운 도시 두로가 무력하게 패망하니, 주변에 살던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15-18절). 그 때가 되면 번성 했던 두로는 황폐하게 될 것이며, 두로의 주민들을 바다속 깊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19-21절).
묵상: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에워싼 네 민족에 대한 심판의 예언에 더하여 두로에 대한 심판의 예언을 주십니다. 두로의 주민들은 경제적 경쟁 관계에 있던 예루살렘이 느부갓네살에 의해 함락되는 것을 보면서 그곳으로 몰리던 부가 두로로 유입되어 자신들이 더욱 부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두로는 바빌로니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육지로부터 떨어져 있기 때문에 바빌로니아의 침략으로부터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이 당한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두로는 느부갓네살에 의해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들이 상상도 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날 것이며, 주변에 있던 도시의 왕들은 두로가 멸망 당하는 것을 보면서 놀랄 것입니다.
상상할 수 없었던 혹은 상상하지 않았던 일을 당하는 것은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그런 경험은 우리를 가두고 있던 사고의 틀을 깨뜨리고 좁아져 있던 시야를 넓혀 줌으로써 잊고 있던 진실을 깨닫게 해 줍니다. 상상하지 못했던 일을 겪는 것은 위장된 축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겪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을 겪지 않고는 깨달을 수 없는 진리가 있고 닿을 수 없는 경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두로의 멸망은 두로의 주민들에게나 이웃 민족들에게 인간의 영화가 얼마나 덧없는 것이며 역사의 실제 주인이 누구이신지를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심판을 당한 이들에게는 뼈아픈 일이었지만, 그것을 보고 두려워 떠는 이들에게는 영적 깨우침을 받은 축복의 사건이 되었습니다.
때로는 물질적/육체적 손실을 통해 정신적/영적 진리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물리적/육체적 손실을 보상하고도 남습니다. 그래서 시험이나 고난이 올 때 인내하며 영적 도약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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