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온전히 기쁘게 여기십시오.
믿음의 연단이 인내를 낳고, 인내가 우리를 온전하게 합니다.
지혜가 부족하거든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시험을 이기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적 가치입니다.”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살아가려고 할 때 금의 맛이 무엇입니까? 올바른 교리를 믿는 것뿐만 아니라 믿는 대로 살아가는 능력입니다. 삶에서의 실천입니다. 그것이 없다면 소금과 빛의 소명을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믿음대로 살아갈 수 있는 삶의 실천력을 이루어가야 할 때 야고보서 말씀이 큰 도전과 능력을 줍니다. 믿음은 시험을 통과하며 실제가 됩니다. 시험을 통과하지 않은 믿음은 생각일 뿐입니다. 믿음은 반드시 시험을 만나고, 그 시험을 통과하며 검증되고 인격 일부가 됩니다.
오늘 본문 3절에서 시험을 ‘믿음의 연단’ 이라고 불렀습니다. 연단이란 금속을 불에 녹여 순수한 물질만 남기는 과정을 뜻합니다. 우리의 믿음도 순수성과 진정성을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순수하고 진정한 믿음이라면 열매 맺고 역사하는 실천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1장에 나오는 ‘시험’ 이라는 단어는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됩니다. 1절에서 12절까지는 믿음을 견고하게 세우는 연단입니다. 13절에서 15절에서는 믿음을 무너뜨리는 유혹입니다. 그 목적과 결과가 다릅니다. 우리를 세우는 시험이 있고, 무너뜨리려는 시험이 있습니다. 12절까지의 시험은 우리의 믿음을 참되고, 실제적이며, 견고하게 세우기 위한 시험입니다. 야고보서에서는 ‘믿음이 시험 가운데서 행함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약 2:26)이라는 말씀이 야고보서 전체 주제 구절입니다.
야고보가 ‘흩어져 있는 유대 12지파’에게
야고보서의 저자는 예수님의 친형제인 야고보입니다. 야고보는 예수님을 ‘미쳤다’고 여겼던 가족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 친형제 야고보에게 직접 나타나셨습니다. 야고보가 충격을 받았고, 자신이 미쳤다고 여겼던 그가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오순절 성령 체험을 통해서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야고보서를 쓴 시기는 주후 40년에서 45년경입니다. 사도 바울이 본격적으로 사역을 시작하기 이전이기 때문에 신약 27권 중에서 가장 먼저 쓰인 책으로 분류됩니다. 야고보는 누구를 대상으로 이 책을 썼을까요? 오늘 본문에 ‘흩어져 있는 12지파’ 라고 되어 있습니다. 12지파는 매우 구약적인 용어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 가운데 예수님을 믿다가 당시 로마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핍박으로 흩어진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일컬어 ‘흩어져 있는 유대 12지파’ 라고 이름 붙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의 배경에는 어떤 시험이 있겠습니까? 두 가지가 떠오릅니다. 하나는 핍박이요, 또 하나는 가난입니다. 핍박과 가난이라는 시험 속에서 어떻게 믿음의 행함을 실천하는 성도들이 될 것인가가 야고보서의 전체 주제입니다.
“인내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야고보서가 행함을 강조하기 때문에 “행함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바울서신의 가르침과 정반대되는 것처럼 오해하는 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조차 야고보서의 가치를 매우 낮게 보고 ‘지푸라기 서신’ 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했습니다. “정경에서 빼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피력했습니다. 마틴 루터라고 해서 모든 사상이 옳은 것은 아닙니다. 그의 개혁이 완전했던 것도 아닙니다. 야고보서에 대한 시선을 사도 바울과 반대되는 것으로 평가절하한 것은 루터의 오해이자 잘못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믿음이라면, 진짜 순수하고 진정성 있는 믿음이라면 반드시 행함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 이라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진리를 무너뜨리는 게 아닙니다. 보완하는 것입니다. 핍박으로 인해 흩어져 가난 속에서 고 통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야고보는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끝까지 견디라”고 권면합니다. 연단이기 때문에 인내하라는 것은 훌륭한 영적 교훈입니다. 시험받는 성도에게 “앞으 로 잘 될 것입니다”라는 덕담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시험받는 성도에게 “인내하십시오”라고 권면하는 것이 얼마나 영적인 권위가 있습니까? 그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며 적극적으로 믿음으로 대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내’는 야고보서 전체의 중요한 주제입니다. 1장은 전체 주제의 핵심 내용을 미리 열거하고 있습니다. 서신서 전체에서 하고 싶은 말씀을 1장에서 간략하게 요약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험을 견디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이는 그가 인정을 받은 후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약속된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12절). “그러므로 형제들이여, 주께서 오실 때까지 오래 참고 기다리십시오. 보십시오. 농부는 땅의 열매를 참고 기다리며 이를 위해 이른 비와 늦은 비가 내리기까지 기다립니다. 여러분도 오래 참고 여러분의 마음을 굳건히 하십시오. 주의 강림이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약 5:7~8). “보십시오. 우리가 인내하는 사람을 복되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과를 보았습니다. 주는 자비와 긍휼이 많은 분이십니다”(약 5:11). 욥의 인내를 인용합니다. 구약에 익숙한 유대인들이기 때문에 욥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욥기 전체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욥의 시험을 허락하셨습니다. 욥은 모든 것을 상실했을 때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범죄하지도 않았습니다. 욥의 믿음이 증명되었습니다. 욥이 배운 것은 인내입니다. 인내로 승리한 것입니다. 인내를 영어 성경에서는 ‘ 스태드패스트니 스(steadfastness)’ 라고 번역합니다. 끈질기게 견디고 참고 인내한다는 의미입니다. 4절에 “인내를 온전히 이루십시오”라고 나옵니 다. 우리말로 “인내를 온전히 이루십시오”라고 하면 우리가 주체가 됩니다. 우리가 참고 견디는 것으로 해석되는데, 원어를 직역하면 인내 그 자체가 주어입니다. “역사하는 것을 이루도록 하라”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우리 스스로 참고 억누르는 인내가 아니라 인내 그 자체가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인내 그 자체가 작용합니다. 인내가 우리 의사와 상관없이 목적을 향해 끌고 간다는 면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거스르거나 방해하거나 가로막지 말고 인내가 우리를 만들어가도록 내려드리고 참여하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인내가 역사함으로써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시험 가운데 인내가 역사해서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이 무엇일까요?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은 이것을 ‘성 도의 견인(Perseverance of Saints)’ 이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참된 믿음이라면, 믿음으로 의롭게 된 믿음이라면, 인생에 여러 시험을 받아도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 예수님 의 은혜와 그분의 중보기도와 성령 하나님의 임재하심으로 끝까지 인내하며 승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 참아내는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를 끝까지 붙드시며 인내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시험을 통과하며 구원을 이루어가도록 역사하는 성도의 견인,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1장 6절에서 “여러분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이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그 일을 성취하실 것을 나는 확신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안에서 시작한 선한 일’은 구원의 역사입니다. 구원은 우리 스스로 완전하게 이루는 것 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시험당할 때 인내하게 하심으로 인내를 이루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로 인내가 찾아왔고, 그 인내를 따라가다 보면 이루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내를 주어처럼 사용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붙들고 계심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한 행실을 지킴으로 구원을 완성해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선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기에 시험을 통해서 인내하게 하시고 구원을 이루어 가십니다. ‘성도의 견인’ 이라는 교리를 여기서 찾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17장 1~3 항이 바로 이 부분을 설명합니다. 1항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독생자 안에서 받아 들이시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효과적으로 부 르시고, 거룩하게 하신 자들은 은혜의 상태에서 전적으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타락할 수 없다. 그들은 끝까지 은혜의 상태에서 확실하게 보존되어 영원히 구원받는다.” 예수님을 믿는데도 때로 시험에 빠지고, 유혹에 빠지고, 고난을 받을 때 우리는 ‘과연 온전히 구원받은 사람인가?’를 의심합니다. 그러나 의심하지 마십시오. 인내를 온전히 이루시도록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붙드십 니다. 우리가 견디는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역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내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우리가 어떤 태도로 인내해야 하는지 세 가지로 교훈하고 있습니다.
첫째, ‘ 온전히 기쁘 게 여기라’ 입니다.
“내 형제들이여,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십시오. 여러분이 알다시피 여러분의 믿음의 연단은 인내를 이룹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온전하고 성숙하게 돼 아무것에도 부족한 것이 없게 될 것입니다”(2~4절). ‘여러분이 시험을 만나거든’ 이 말씀은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시험에서 도망가려고 하지 말고, 시험을 무시하려고 하지 말고, 시험에 적극적인 태도로 기쁘게 여기십시오. 우리가 살면서 겪는 최고의 유혹은 죄에 빠지는 유혹도 있지만, 시험을 피하고자 하는 유혹입니다. 시험을 외면하고 피하면 더 큰 시험이 옵니다.
시험을 기쁘게 여기고, 시험을 통해서 변화될 것을 기대해야 합니다. 그것을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 여긴다’ 는 것은 계산한다는 뜻입니다. 믿음으로 계산하는 것입니다.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는 것은 시험을 당할 때 당황하거나 서두르거나 회피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시험을 통해서 하나님이 온전히 유익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족한 지혜를 하나님께 구하라”
둘째, 부족한 지혜를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면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그러면 주실 것입니다”(5절). 시험을 인내하는 데 지혜가 필요합니다. 시험을 온전히 기쁘게 여길 수 있는 것도 지혜가 필요합니다. 시험을 온전히 기쁘게 여겨야 하는 이유를 발견하기 위해서도 지혜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부족함이 어떻게 온전해지고 있는지를 발견하는 데도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혜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내의 길을 걸어갈 때 여러 선택의 갈림길이 있는데 지혜가 길을 선택하게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에서 지혜가 중요한 주제로 등장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지혜롭고 분별력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선한 행실을 통해 지혜에서 나오는 온유함으로 자기의 행위를 보이십시오”(약 3:13). “그러나 하늘에서 오는 지혜는 무엇보다도 성결하고 또한 화평하며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며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약 3:17). 시험을 만났을 때 지혜가 필요합니다.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하나님은 이러한 지혜를 우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는 말씀을 믿고 지혜를 하나님께 구하기를 바랍니다.
“가난하든 부유하든 영적 위치를 자랑하라”
셋째, 인내의 자세는 가난하든 부유하든지 영적 위치를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형제는 자신의 높은 위치를 자랑하고 부자는 자신의 낮은 위치를 자랑하십시오. 이는 부자는 풀의 꽃처럼 사라져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9~10절). 하나님은 양쪽 모두에게 “자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가난한 자는 자신의 높은 위치를 자랑하고, 부유한 자는 자신의 낮은 위치를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가난 자체로 우리에게 찾아오는 고통에 낙심하지 말고,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영적인 높은 위치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우리가 얼마나 고귀한 존재인지, 높은 영적 위치인지를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내할 수 있습니다. 많은 재물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영적으로 매우 낮은 위치라는 것입니다. 부유한 자는 많은 재물이 있어도 매우 낮은 영적 위치라는 것을 자랑할 수 있다면 시험을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재물을 하나님의 뜻 가운데 온전히 사용되도록 할 때 부가 가져오는 시험을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난이 주는 시험보다 부가 주는 시험이 더 위험합니다. 참된 믿음은 시험 가운데 인내를 통해 온전해집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하시는 이유는 인내가 가져오는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험을 온전히 기쁘게 여기십시오. 믿음의 연단이 인내를 낳고, 인내가 우리를 온전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지혜가 부족하거든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인내할 수 있는 지혜를 하나님이 주십니다.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나 시험을 이기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적 가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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