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이재훈목사

은처럼 단련하시는 하나님 (시편 66:8~20)

새벽지기1 2021. 7. 26. 06:41

“단련을 통과하며 더욱 풍성하고,

예수 닮아가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은처럼 단련하시는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재난과 위기를 만날 때마다 초대교회를 다시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역사가들은 주후 100년대부터 500년까지를 ‘ 교부시대’라고 부릅니다. 이 시기 교회는 박해의 그늘 아래 살아야 했습니다. 당시 교회는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할 위치가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하면 많은 위험이 따르는 시대였습니다. 조롱과 차별만이 아니라 죽음의 가능성이 늘 존재했습니다. 로마 황제들은 사회적 책임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누명을 씌워 핍박하기도 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교회가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 교회가 급속도로 성장했습니다. 4세기 초 로마 시민의 8~12%가 그리스도인이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당시에도 전염병과 같은 재난과 타락한 세속 권력으로부터 핍박이 있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교회를 교회답게 했고,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복음 을 삶으로 살아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을 예배에 초청해서 교회가 성장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과 다른 믿음, 인내, 사랑으로 복음을 살아냈기에 수많은 사람이 교회공동체 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재난의 때 일수록 교회다워지는 모습이 있어야 하고, 세상 속에서 소금과 빛된 공동체가 되도록 복음에 합당한 시각과 선택을 해야 합니다. 속히 고통 속에 있는 사회가 일상을 회복하도록 우리가 함께 인내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코로나19 팬데믹을 통하여 온 인류에 시험을 허락하셨습니다. 성도들에게는 신앙의 단련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우리의 모습,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모습, 신앙이 참된 신앙으로 변화되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단련하시는 이유

 

“하나님께 고백하라. ‘주께서 하신 일들이 놀랍습니다! 주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하신지 주의 적들이 주 앞에서 복종합니다. 온 땅이 주께 경배하고 주를 찬송합니다. 주의 이름을 찬송합니다.’ (셀라)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와서 보라. 사람의 자손들을 위해 이렇게 놀라운 일들을 하신다”(시 66:3~5). 원수가 하나님의 능력 앞에 복종하고 무너진 사건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통하여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깨닫고 있습니다. 당연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위대하신 하나님의 능력이고, 하나님께서 주신 기적적인 삶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오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셔서 은처럼 잘 단련시켜 주셨습니다. 주께서 우리를 그물에 걸리게 하셨고 우리 등에 짐을 지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우리 머리 꼭대기에 있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불 사이로, 물 사이로 지나가기도 했습니다”(10~12a절). 자기 백성을 위하여 큰 능력을 베푸시는 하나님께서 동시에 그 백성을 시험하시고 은처럼 단련하시는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인간 이 교만하고 타락해서 사탄이 만들어 놓은 죄의 그물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때로 그 그물을 치워주시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물에 걸리도록 허락하십니다. 더욱 온전한 구원, 더욱 온전한 자유, 더욱 온전한 신앙, 더욱 온전하게 하나님 앞에 나가도록 단련하시 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을 기적의 은혜만 베푸시는 분으로 안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모두 버림받았다고 고백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와 씨름하기 때문입니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남아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도 하지만, 그 문제를 통해서 우리를 단련하시고, 더 큰 은혜를 주시기도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단련하십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단련을 통해 빚어집니다. ‘은을 단련함 같이’ 라고 했습니다. 은을 강조한 것은 세속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영적 의미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단련하시는 목표

 

은을 강조하신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은을 단련하는 모든 과정은 신경이 많이 쓰이는 매우 섬세한 작업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을 단련하실 때 더 강하게 붙잡고 돌보십니다. 은은 인간의 영혼을 상징합니다. 영혼을 정결하고 깨끗하게 하는 과정은 매우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재난을 통해서 우리를 단련하시는 것은 버리심이 아니라 돌보심이요, 더 붙잡으심입니다. “내 형제들이여,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십시오. 여러분이 알다시피 여러분의 믿음의 연단은 인내를 이룹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온전하고 성숙하게 돼 아무것에도 부족  것이 없게 될 것입니다”(약 1:2~4).

 

둘째, 은을 단련하는 일은 거울처럼 제련사의 모습이 비칠 때 끝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단련하시는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보일 때까지입니다. 모든 불순물을 제거해서 제련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나타나고,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나타날 때까지 단련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온전히 들어갈 때까지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의 삶은 단련과 제련의 삶입니다. 끊임없는 시험의 삶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룰 때까지 계속 단련하십니다. 하나님 께서는 우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결코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변화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단련하십니다. 단련하시는 하나님의 목표는 우리가 예수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개역개정). 욥기에 대한 올바른 시각은 ‘ 하나님께서 자랑할 만한 의인인 욥도 단련이 필요했다면 하물며 우리 같은 이들은 얼마나 많은 단련이 필요한가’ 입니다. 욥과 같은 의인에게도 태워져야 할 죄가 있고, 회개해야 할 죄가 있었 다면 하물며 우리 같은 이들은 얼마나 많이 태워져야 하고 얼마나 많이 회개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 단련의 열매 ‘의로운 평화’

 

“‘주께서는 사랑하시는 사람을 연단하시고 아들로 받으신 사람들마다 채찍질하신다’라고 하셨습니다. 연단을 견뎌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아들들같이 대하십니다. 아버지가 연단하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히 12:6~7). “모든 연단이 당시에는 즐거움이 아니라 괴로움으로 보이지만 나중에는 그것을 통해 연단된 사람들에게 의로운 평화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피곤한 팔과 연약한 무릎을 강하게 하십시오”(히 12:11~12). 하나님의 단련 과정에는 반드시 열매가 있습니다. 의로운 평화의 열매입니다. 의롭고 평화로운 열매는 양립하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의를 추구하면서 평화를 무너뜨립니다.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은 의를 내버립니다. 의로운 평화는 사람들이 추구해서는 얻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한쪽으로 치우치기 마련입니다. 정의를 부르짖는 사람은 언제나 평화를 깨뜨리기 마련입니다. 평화를 부르짖는 사람은 언제나 정의를 무너뜨리기 마련입니다. 의로운 평화의 열매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단련하실 때 맺어질 수 있는 열매입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풍성한 곳으로 우리를 데려오셨습니다. 내가 주의 성전에 번제물을 들고 들어가겠습니다. 주께 내 서원을 지키겠습니다. 내가 고통당하고 있을 때 내 입술로 약속하고 내 입으로 말했던 그 서원 말입니다 ”(12b~14절). 두 가지를 고백합니다. 첫째,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서원한 바를 지키게 됩니다. 사람들은 고통이 찾아오면 하나님 앞에서 서원합니다. 그리고 단련을 통해서 서원을 지키는 삶, 풍성한 삶으로 나가게 됩니다. 둘째,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더욱 귀 기울이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너희 모든 사람들아, 와서 귀 기울이라. 하나님께서 내 영혼에 하 신 일들을 말해 주리라. 내가 내 입으로 그분께 울부짖었고 내 혀로 그분을 찬양했다” (16~17절). 단련의 과정을 통해서 고통받는 영혼은 하나님께 더욱 민감하게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교제하게 됩니다. 단련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서원한 것을 지키고, 예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풍성한 삶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 풍성함은 문제가 없는 삶이 아닙니다. 고통이 없는 삶이 아닙니다. 문제와 고통 속에서 단련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고, 더 순수하고 강하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시험이 없었을 때와 비교할 수 없는 풍성하신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고, 예배하는 영혼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시험과 단련에도 무너지지 않고, 어떤 고통도 무너뜨릴 수 없는 삶이 풍성함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라! 그분이 내 기도에 등 돌리지 않으시고 그 인자하심을 내게서 거두지 않으셨도다”(20절). 단련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 다. 사랑하시기에 단련하시고 채찍질하십니다. 사랑하시기에 그물에 걸리게 하시고, 등에 짐을 지우시고, 때로 사람들이 우리의 머리 위로 지나가게 하시고, 불과 물 가운데로 나아가게 하십니다. 그러나 이 모든 단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욱 풍성한 삶으로 인도하십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통과하면 우리의 신앙이 더욱 풍성한 신앙으로 변화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은처럼 단련하시는 목적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