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3월 14일
며칠 전 사랑하던 성도 한 분이 곁을 떠나갔다. 목사에게 있어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은 참으로 의미 깊은 존재이다. 어느 형제인들 그렇게 수시로 만나겠는가? 어느 이웃이 그토록 얼굴 표정만 봐도 마음을 교감할 수 있고, 어느 친구와 그렇게 고락을 나누겠는가? 형님과 누님이 그리 멀지도 않은 곳에 살고 있지만 몇 달에 한번 만나기도 힘들다. 하지만 성도들과는 일주일에도 몇 번씩 만나는 사람이 많다. 만남뿐인가? 교회에 현안이 있을 때마다 함께 기도하고, 함께 애타하고, 함께 힘을 모으고, 물질을 모으지 않던가? 또한 형제들과 친척들과도 함께 식사할 기회가 적은데 성도들과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함께 식사를 한다. 이런 관계가 어디 있겠는가!
목사의 분신같은 성도들
그래서 교우들 중에는 때론 형제애보다 더 진한 애정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교우들 중에서 원치 않은 죽음을 맞아 공동체 곁을 떠나갈 때는 가슴이 메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성도들이 많은 교회라면 자못 담담하게 대하게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리 많지 않은 성도를 돌보는 목회자로서는 각별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날, 성도들 중 한두 분은 참으로 안타까운 죽음이어서 비통의 눈물을 쏟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나치게 슬퍼하지 말라는 성경말씀을 몰라서일까, 하늘나라에 대한 믿음이 약해서였을까? 그게 아니었다. 이번에도 권사님 한 분이 암으로 투병하시다 소천하셨는데 의도적으로 올인하지 않았다. 그것은 올인했을 때 겪는 데미지가 무척이나 크다는 것을 두어 차례나 경험했기 때문이다. 누가 생각하기를 “목사님은 왜 우리 가족, 우리 형제가 이렇게 죽어 가는데 차별을 하시나?”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
을 것이다. 지난날의 내 태도를 안다면 말이다. 이미 십 여 년도 더 지난 일들이기는 하나 한 때 암에 걸린 교우를 살려보려고 나와 온 성도들이 올인했었다.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기도했다. 한 주간의 특별기도회가 두 주간, 세 주간으로 이어졌고 금식기도도 했다. 교인들 대부분도 이 일에 동참해 맹렬히 기도했다. 어느 형제는 한 달 월급을 고스란히 바쳐가며 기적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소원했다.
우리의 기도는 단순히 교우의 병이 치유받아야겠다는 맹목적 기도가 아니었다. 한두 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사연들이 있는, 그렇기 까닭에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야 한다는 대명제가 걸린 기도였다. 정말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가 나타나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애쓰고 기도한 보람도 없이 기적의 역사는 비켜갔다. 그로 말미암아 겪는 허탈감과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후유증이 한 달, 두 달, 아니 일 년도 더 갔다. “놀라운 역사! 기적의 역사! 하나님의 살아
있는 역사!”라는 단어는 내 입에서 사라졌다. 그 후로 성도들을 위한 기도에 올인하기가 두려워진 나는 그냥 적당한 선에
서 멈추는 모범적(?)인 기도를 유지했다. 어쩌면 양떼를 위해 올인할 때가 진정한 목회자의 자세가 아닐까? 지금 나는 너무 약아 빠지고 나약해진 것은 아닐까? 의구심을 품기도 한다. 전도사 시절 생애 첫 부흥집회를 인도할 때가 있었다. 얼마나 열정을 쏟아 부었던지 집회 마치고 난 다음 주간 내내 앓았다. 입술은 온통 부르튼 채 몸살에 걸려 신음했다. 그건 사실 미숙한 아마추어 행동이었다. 일 년 내내 집회 다니는 부흥강사는 한 집회에 올인하지 않는다. 긴 페넌트 레이스를 생각하며 던지는 프로야구 투수와 같다. 투수가 한 경기에 목숨을 걸면 결국 그 경기는 이길지 모르나 만약 그로 인
해 어깨가 고장나면 선수생명 자체에 치명적인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이게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다. 그렇다면 내가 지난 날 환자를 위해 올인했던 것은 어리석은 아마추어의 행동일 것이다.
주님께서 부르신 뜻 받들기로
그러나 그것으로 100% 자신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최선을 다하지 않는 나 자신은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네 가족이 그렇게 죽어 간다고 해도 그 정도 기도에서 멈출 것이냐?” 한다면 답변이 궁해질 게 틀림없다. 이번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가신 권사님. 이 분을 지켜보노라면 가슴 한 구석이 늘 아파오던 그런 분이셨다. 충성을 하고 싶으나 물질은 넉넉하지 못했고, 마음껏 섬기고 싶으나 건강이 따라주지 못해 애쓰시던 분, 그러나 실은 숨은 봉사자였다. 말없이 충성하시던 분, 남들이 싫어하는 궂은일들을 도맡아 하시던 분이셨다. 평생에 걸쳐 남들처럼 호사나 호강의 근처도 못 가보시고 고생만 하시더니 끝내 몇 가지 암으로 생을 마치셨다. 주님께서 그를 고통 많은 세상에 더 두기보다는 영원한 안식의 세계로 먼저 부르셨음을 믿는다.
그렇지만 이번 일을 겪으면서 내 태도는 아무래도 석연치 않다. 그를 위해 하루의 금식기도도 없었고 밤을 지새운 기도도 한 번 없었으니 말이다. 이번에는 그저 담담히 그의 생명을 주님 뜻에 맡기고 기도할 뿐이었다. 장례를 치르면서 애써 울지 않고자 했다. 눈물 많은 내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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