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기독교개혁신보컬럼

겸손의 영성 / 변세권 목사(온유한교회)

새벽지기1 2021. 6. 9. 06:34

2007년 2월 7일

 

이번 주는 제직 세미나가 있었다. 해마다 이맘때면 강사 선정으로 고민을 한다. 그러던 중 교회 국장회의에서 담임목사 지도도 다 못 받았는데 외부 강사는 내년에 모시자고 했다. 순간 신선하지도 않은 담임목사 얘기를 들으면 뭐하겠나 하는 부끄러운 마음과 함께 한편으론 우쭐한 마음으로 세미나를 시작했다. 

 

제직회 강사로 결정해줘 마음 흡족해

 

마침 강의 중간에 쉬고 있는데 보건소에 다니는 박 집사님이 지난주 검사한 나의 피검사 결과를 보여주며 간이 안 좋아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 그렇지… 내가 제대로 폼나게 나가는 게 있었나…’ 그러면서 문득 내가 보이지 않게 이렇게 저렇게 너무 많은 일들에 신경을 쓰고 있었구나 생각을 했다. 사람은 누구든지 처음의 마음은 순수하고 겸손하다. 처음 마음에는 때묻지 않은 청순함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처음에 품었던 순수함과 겸손함을 잊어버리고 살아간다. 처음 마음, 곧 초심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인가 야심이 일어나며, 명예욕이 강해지고 허세를 부리
게 된다. 


작년에 노회 주관으로 어느 교회 설립 예배가 있었다. 예전에 어쩌다가 노회장을 한 번 한 적이 있었는데 지난번엔 부노회장으로 한 번 더 섬기게 되었다. 그런데 부노회장이었던 나에게 아무 순서도 맡기지를 않았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참석하고 돌아왔다. 한편 생각해보면 개혁적으로는 이해도 되는 일이지만 그동안의 전통적인 관점으로 볼 때는 개인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섭섭한 일이었다. 내가 인간 관계를 잘못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면 서로의 생각의 관점이 달라서인가? 여러가지 생각을 해봤지만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어찌되었든 그 일은 섬김 받고 싶어하고 대접받으려 하는 내 마음의 동기에 겸손함이 없었다는 문제점만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엔드류 머레이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어야 할 근본적이고 진실한 관계는 잃어버린 겸손의 회복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우리는 지금 겸손의 회복이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가 처음 마음으로 겸손해지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을 낮추기로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목회를 하면서도 높아지고 싶은 생각을 버리고 낮아지려고 마음을 먹으면 심사가 참 편해지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다. 생각만 바꾸면 자존심이 상할 일도 없어지는 것을 느낀다. 


왜 어거스틴이 그의 좌우명을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겸손해야 한다고 했는지를 더욱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톨스토이도 인간은 겸손할수록 더욱 자유로와진다고 했다. 겸손한 자가 누리는 복을 말해서 더 무엇하겠는가? 우리는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이건 주께서 보내시는 자로 가기만 하면 된다. 내가 볼 때 목회는 마음을 비우는 훈련을 받는 것과 같다. 어느 날부터인가 마음을 비우니까 교회성장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마음을 비우니까 목사의 자녀가 좋은 학교에 못 가도 성도들에게 창피하지 않았다. 마음을 내려놓으니까 서운할 것들이 상당부분 줄어들었다. 마음을 비우니까 행복해지기 시작
했다. 마음 비우니까 자기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상처받거나 시험당할 일이 줄어들었다. 

 

마음 비우니 보고 듣는 게 달라져

 

우리는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한 아름다운 고백을 하는 사람들이다. 겸손함과 순수함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자주 비우고 채워야 한다. 우리 이번 주에는 답답하게 교회에만 있지 말고 합신에서 하는 세미나에 참석해서라도 우리들의 겸손의 영성을 회복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