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월 25일
해가 바뀌면서 매년 해 오던 것처럼 새 다이어리를 장만했다. 지난 일 년 동안 거의 매일 내 손에서 떠나지 않았던 낡은 다이어리를 대신하여 새로운 페이지와 깔끔함으로 치장한 노트 위에 조심스레 이름을 비롯하여 몇몇 글자를 적어 넣고서는 앞으로 일 년을 동고동락할 다이어리의 표지를 새삼 만지며 한 해를 출발한다.
새 다이어리 보는 심정으로
순식간에 내 삶의 중심부에서 한직(?)으로 물러난 지난해의 낡은 다이어리를 다시 손에 들었다. 별 생각 없이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기면서 어느 때는 차근차근 또 어느 때는 서둘러 메모하며 적어 두었던 글들이 눈에 들어온다. 당시에는 상당히 심각하게 적었던 것 같은 문구도 있고, 또 더러는 멍하니 앉아서 누군가의 말을 들으며 별 생각 없이 긁적거렸던 문장들도 있다. 기대와 설렘을 가지고 해야 할 일들을 적어 두었던 페이지도 나온다. 안타까운 마음, 실망한 마음으로 어쩔 수 없이 적어 두었던 글들도 있다. 모두가 지나간 시간들을 차곡차곡 이어오고 있는 일들이다. 문득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마치 어린 날 적어 두었던 비밀 일기장을 오랜만에 열어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불과 일 년의 짧은 시간들이었음에도 지나간 시간들이 이처럼 부끄럽게 느껴지는데, 나의 일생이 다한 뒤에 주님 앞에 섰을 때에는 얼마나 부끄럽고 창피할까? 그 생각을 하는 지금 벌써 그 부끄러움들이 밀려오는 것 같다.
한 시골에서 농부 부자가 함께 소를 몰며 밭을 갈고 있었다. 쟁기를 잡고 밭을 가는 일이 그리 익숙하지 못한 아들은 나름대로는 열심히 밭을 갈았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니 자신이 갈고 지나온 밭고랑이 이리 저리 춤을 추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숨을 쉬고 있는 아들을 보고서 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면서 아들의 손에서 쟁기를 받아 들고서 말씀하였다. “자 이제 내가 하는 것을 잘 보거라. 쟁기를 잡고 밭을 갈 때에는 한 가지 목표물을 바라보고서 쭉 나가야만 밭고랑이 똑바르게 될 수 있는 것이란다.” 말씀하신 아버지는 능숙한 솜씨로 소를 몰고 갔다. 역시 아버지가 간 밭고랑은 아주 반듯하게 잘 나왔다. 아버지의 시범을 본 아들은 용기를 얻어 다시 한 번 도전을 한다. 열심히 소를 몰고서 밭을 간 아들, 다시 뒤를 돌아보고서는 긴 한 숨을 또다시 내쉴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 갈았던 고랑보다 더 삐뚤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말씀대로 했는데 어찌 전 똑바르게 되지 않죠?” 이상하다는 듯 아들이 물었다. “한 가지 목표물을 정하고서 그것만 보고서 나가라고 했잖니? 넌 어떤 목표물을 보고서 밭을 갈았었니?” 아버지의 질문에 아들은 큰 소리로 답했단다. “예, 두 손으로 쟁기를 잘 잡고서 고개를 들어보니 바로 눈앞에 소 엉덩이가 보이기에 그걸 보면서 나갔습니다.”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아들은 목표물을 정하긴 했으나 그 목표물 자체가 고정된 목표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 결과가 곧게 나오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또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면서 이제 내가 가야 할 길과 목표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푯대를 향하여 하나님이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는 삶(빌 3:14)을 살아가기를 다시 한 번 다짐해 본다. 어린 나이부터 목회자의 길을 걷는다며 좌충우돌하며 지나온 자국들이 내가 선 발자국 뒤로 그 흔적을 남기고 있는 것이 마치 좌우로 춤을 추는 밭고랑과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막 해를 넘긴 다이어리 한 권을 보면서도 이처럼 부끄러운 것이 셀 수 없이 많은데, 주님이 들고 계신 지난날의 모든 기록들은 얼마나 더 부끄럽겠는가. 하지만 십자가의 은혜가 여기에 있지 않은가? 모든 것을 용서하시며 도말하시겠다는 그 약속이 있기에 또 다시 용기를 내어 새 다이어리를 다시 집어 들었다. 하루 하루의 빈칸들을 짚으며 해야 할 일들을 적기 시작한다.
지난날 돌아보며 새용기 내
지난 허물과 부끄러움은 이미 잊으시고 새로운 시간들 속에서 부족한 종을 통해 받으시기로 계획하시고 이루어 가실 그 일들을 기대하며 엎드려 기도하는 마음으로 적은 이 글씨들이 조금은 더 성숙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조금 더 완숙한 모습으로 실행되어지기를 기도한다.
'좋은 말씀 > 기독교개혁신보컬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간의 정보와 하나님의 섭리 / 김영규 목사(뉴욕학술원 ·남포교회 협동목사) (0) | 2021.06.07 |
---|---|
은혜와 찬송의 천사 패니 크로스비 /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0) | 2021.06.06 |
행복해지려는 여러 가지 시도들 / 김수흥 목사(합신 초빙교수) (0) | 2021.06.04 |
이 황무지에도 하나님의 사랑이 / 조대현 목사(화순화성교회) (0) | 2021.06.03 |
하나님의 눈앞에서 사는 사람들 / 김영규 목사(뉴욕학술원 ·남포교회 협동목사) (0) | 2021.06.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