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동식목사

비전일까? 욕망일까?(1)

새벽지기1 2021. 5. 8. 03:59

비전일까? 욕망일까?(1)

 

살면서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을 경험합니다. 그 가운데 비전과 욕망에 대한 생각은 가끔씩 고개를 갸우뚱하게 합니다. 욕망은 보통 세속적인 성공을 의미합니다. 비전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의미를 발견하여 성취함을 의미합니다. 여기에 세속적인 욕망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비전은 강조하지만, 욕망은 비판합니다. 하지만 비전과 욕망, 욕망과 비전의 차이에 대하여 명확하지 않아서 갈등을 겪습니다. 물론 이 갈등은 그리스도인에게 우선합니다. 세상은 비전과 욕망이 차이가 없습니다. 비전이 욕망이고, 욕망이 비전입니다. 그러다보니 세상을 살아가면서 비전을 말하는 것인지, 욕망을 추구하라는 것인지 혼돈될 때가 있습니다.

 

요즘은 많이 사라졌지만 미숙한 교회시대에는 예배순서지 광고란에 OO 대학교 들어갔다는 소식이 실리기도 하였습니다. 지금도 시골에 가면 마을 어귀에 각종 성공 현수막이 걸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입신양명이 삶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비전을 강조하는 명목으로 욕망을 자극합니다. 그 사람이 하는 일의 선함과 영향력보다는 연봉이 평가의 기준이 되고, 선망의 대상이 됩니다.

 

성경은 분명 비전의 사람이 되는 것을 막지 않습니다. 그러나 욕망의 사람이 되는 것을 거부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앞에 있는 좋은 것을 위하여 살았습니다. 모세를 설명하는 히브리서의 기록을 보면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히 11:26]”고 말합니다. 욕망이 아니라 비전을 위하여 살았습니다.

 

비전과 욕망을 바로 이해하는 것은 믿음의 여정에 정말 중요하고 의미가 있습니다. 교회도, 목사도, 성도도 모두가 바르게 이해하고 정리되어야 합니다. 앞으로 몇 번에 결쳐서 비전과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시대의 어수선함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바르게 걸어가려면 표지판이 분명해야 합니다. 비전과 욕망의 표지판을 하나씩 세워봅니다.

 

첫 번째 표지는 비전과 욕망은 “무엇”에 따라서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르게 이해하고 분별해야 합니다. 비전과 욕망은 함께 기생하기 때문에 구분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무엇은 목적을 의미합니다. 방법이 아닌 목적을 가리킵니다. 무엇을 위하여 사는지를 묻습니다.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을 묻습니다. 무엇에 따라서 같은 일을 하면서도 비전을 이루기도 하고, 욕망을 따르기도 합니다. 비전의 사람이 되기도 하고, 욕망의 노예가 되기도 합니다. 내가 비전의 사람인가? 욕망의 사람인가? 이 질문에 답을 알아보려면 “무엇” 즉 삶의 목적을 생각하면 됩니다.

 

욕망은 자기중심의 권력을 목적합니다.

삶의 목적이 여기에 집중합니다. 무엇을 위하여 사느냐 물을 때 자기중심의 권력을 강조합니다. 자신이 우선됩니다. 모든 것이 자기중심으로 생각하고 재편됩니다. 놀이, 공부, 직업, 정치등 모든 부분에서 자기중심의 권력을 추구합니다.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자기중심의 권력을 욕망한 사람은 이세벨과 그의 딸 아달랴입니다. 이세벨은 권력의 힘을 나타내기 위하여 힘없는 농부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습니다. 자신을 반대하는 선지자 엘리야를 죽이려고 합니다.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자기 중심으로 재편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그의 딸인 유다의 왕비였던 아달랴를 통하여 확장됩니다. 아달랴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자 왕자들을 학살하는 끔찍한 일을 버립니다.

 

역사상 가장 잔인한 통치자들의 모습에서 여전히 계승됩니다. 로마의 황제 헤롯과 칼리쿨라를 비롯한 잔인한 황제들을 봅니다. 이탈리아아의 뭇솔리니. 독일의 히틀러, 우간다의 학살자 이디아민, 소련의 스탈린, 북한의 김일성등을 봅니다. 이들의 모습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자기중심의 권력욕망입니다.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가지 않더라도 자기중심의 권력을 추구한다면 그는 잠재적 독재자입니다. 기업에서 이러한 모습을 가진 재벌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땅콩회항, 자식을 위하여 폭력을 행사한 재벌, 직원들을 골프채로 폭행한 대표, 법을 권력으로 이용하는 집단들이 다 동일합니다. 이들에게 강력한 독재의 길을 열어주면 히틀러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자기중심의 권력을 추구하는 것은 욕망입니다.

 

비전은 타자중심의 섬김을 욕망합니다.

자신이 하는 모든 것들이 자기중심이 아니라 타자중심입니다. 이것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에 거슬립니다. 그래서 꿈꾸지 않으면 어렵습니다. 꿈꾸는 자 즉 비전을 품은 자에게 주어집니다. 비전은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려왔다고 하였습니다.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자신을 내어주심이 예수님의 삶이었습니다. 이것이 비전입니다. 이웃을 섬기고자 하는 것이 삶의 목적일 때 비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는 목적이 남을 도와주기 위함이고, 열심히 버는 것이 힘들고 어려운 이들을 돕기 위함입니다. 이 목적을 위하여 자신을 계발하고 훈련시킵니다. 성경은 비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모습을 나타내기를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강조합니다. 철저하게 예수님의 삶을 따릅니다. 이렇게 첫 번째 표지판을 세워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