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하용조목사

예수와 빌라도 (요한복음 18:28~38)

새벽지기1 2020. 4. 19. 06:18



예수님을 만나면 반드시 삶의 변화가 옵니다.

생각의 변화, 습관의 변화, 행동의 변화, 가치관의 변화가 생깁니다.

그리고 인생의 목적이 바뀝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성령으로,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깨끗이 씻기면 어린양 예수가 보이고 하나님이 보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세 종류의 사람들이 변화를 합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만난 이후에 삶의 기적 같은 변화와 축복을 받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는 기적 같은 예수를 만나서 축복을 받을 뻔한 사람이 있습니다. 결론은 받지 못합니다. 바로 오늘 본문 말씀의 주인공인 빌라도입니다. 세 번째는 예수님을 만나서 축복도 다 보장이 되고 새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저주를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가룟 유다입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빌라도와 가룟 유다는 한 사람 뿐입니다. 확률적으로 보면 거의 100% 예수님을 만나면 축복 받고 예수님을 만나면 삶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축복을 받을 뻔했던 빌라도


첫 번째로 예수님을 만나서 축복받은 사람들은 누가 있습니까? 요한복음 1장부터 13장까지 나오는 모든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인생의 목적이 바뀌었고, 기적을 체험했고, 거듭남의 비밀을 깨닫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마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는 기적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풍랑을 만나서 배가 뒤집어지는  환경 속에서도 풍랑을 거스르고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 풍랑을 잠잠케 하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여자는 용서 받았습니다. 문둥병도 나았고, 죽은 나사로도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가장 놀란 것은 예수님께서 직접 발을 씻어주신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 중 한 명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변하지 않았다는 것은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분을 만나면 반드시 삶의 변화가 옵니다. 생각의 변화, 습관의 변화, 행동의 변화, 가치관의 변화가 생깁니다. 그리고 인생의 목적이 바뀝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을 만나서 축복을 받을 뻔한 사람은 바로 예수님을 재판했던 본디오 빌라도입니다. 28절을 보겠습니다. “그때 유대 사람들이 예수를 가야바의 집에서 로마 총독의 관저로 끌고 갔습니다. 때는 이른 아침이었습니다. 유대 사람들은 몸을 더럽히지 않고 유월절 음식을 먹기 위해 관저 안에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예수님의 재판 받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은 형사재판이나 민사재판을 받을만한 일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분은 죄가 없는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을 체포한 사람들은 군인들과 천부장, 유대 사람들의 경비병들이었습니다. <더 패션>이라는 영화를 보면 예수님이 체포당하는 모습을 아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거칠고 무례하게 예수님을 체포합니다. 만약 죄가 있더라도 그냥 체포하면 되는데 주먹으로 치고, 몽둥이로 칩니다. 영화 장면에서는 예수님께서 눈을 맞아 순식간에 피멍이 듭니다. 그리고 재판장으로 끌고 가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의 재판


오늘 본문에 보면 재판 장면이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첫 번째 재판장은 그 해의 대제사장이자 가야바의 장인인 안나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죄목이 뚜렷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를 죽였거나 도둑질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종교적인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구속했기 때문에 재판이 잘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로 가야바가 재판을 하게 됩니다. 그래도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28절을 더 자세히 보면 예수님을 체포해 안나스에게 끌고 갔고, 안나스의 집에서 가야바에게로 다시 끌고 갑니다. 여기까지는 종교재판입니다. 종교적, 교리의 문제에 관한 재판입니다. 그런데 종교재판에서는 사형의 권한이 없습니다. 사형의 권한은 형사나 민사 재판에서만 선고를 하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이고 싶어했습니다. 유대인들의 법에는 예수님을 죽일만한 권한이 없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로마 총독부인 빌라도 총독이 있는 곳으로 예수님을 끌고 간 것입니다. 예수님을 언제 끌고 갔는지도 매우 중요합니다. 새벽에 끌고 갔습니다. 우리나라 시간으로는 새벽 3시에서 6시 사이입니다. 여러분, 이런 이른 새벽에 재판을 하는 것을 보셨습니까? 새벽에는 재판을 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잘 시간에 횃불을 켜놓고 재판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해결 되지 않자 새벽에 로마 총독의 집으로 몰려갑니다. 예수님에 대한 재판은 이 사실 한 가지만 봐도 얼마나 불법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기소나 변론과 같은 절차도 전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처음으로 재판다운 재판을 받는 것은 로마총독 앞에서였습니다.


눈 앞의 진리를 못 보는 빌라도


31절을 보겠습니다. “빌라도가 말했습니다. ‘이 사람을 데리고 가서 너희들의 법에 따라 재판하라.’ 유대 사람들이 빌라도에게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죽일 권한이 없습니다.’” 이때 빌라도는 매우 귀찮았고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종교 사건이 생겼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네가 무슨 죄를 지었으며, 왜 여기에 왔느냐”하고 묻자 예수님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죄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왕인데 유대인들은 예수가 스스로 자기가 왕이라고 했다며 죄목을 만들었습니다. 빌라도는 전혀 관심이 없는 재판이었기 때문에 재판의 본질을 뚫고 볼 수 있는 예리한 눈이 없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어떻게 진리가 보이겠습니까. 눈앞에 있어도 보지 못합니다. 빌라도는 예수의 재판이 인류의 재판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재판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을 때, 교회에 나올 때 정신 똑바로 차리십시오. 교회 나오기 전에 기도로 준비하고 신랑을 만나는 신부와 같은 마음으로 와서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아름다운 신부가 자신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은혜의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사실 빌라도는 자기 생애에서 최대의 기회를 맞이합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에 대해 너무 무지했습니다. 무지는 무관심을 낳고, 무관심은 무책임을 낳습니다. 무책임은 무행동을 낳습니다. 자기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릅니다. 행동이 변화되어야 하는데 행동을 변화시킬 만한 동기부여가 되지 않습니다. 


정의·평강·기쁨 있는 하나님 나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믿으라”(막 1:15)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은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개념이 없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4장 7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기쁨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단순하게 먹고 마시는 나라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은 ‘먹는 것, 마시는 것, 권력을 갖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그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성령 안에서 정의와 평강과 기쁨이 중요합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하나님의 영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온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마 12:28) 성령이 임하면 귀신이 나가고, 귀신이 떠나야 하나님의 나라가 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천국에 간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하나님의 나라에 소속된 멤버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개념이 없으면 이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합니다.


요한복음 3장 3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말한다. 누구든지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의 산상설교에서도 마음이 깨끗한 자가 하나님을 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왜 보이지 않을까요? 유리창에 새까만 먼지가 쌓이면 바깥을 보지 못하듯이 우리의 마음이 더러워지면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더러워지고, 죄가 가득 차고, 위선과 사기와 욕심이 가득 차면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것들이 하나씩 제거되고 닦이면 하나님이 보석처럼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음성도 들립니다. ‘하나님을 보여주면 믿겠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평생 보이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성령으로,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깨끗이 씻기면 어린양 예수가 보이고 하나님이 보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은 예수님 예수님이 우리의 마음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어두움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빛이 들어오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어떤 사람은 희미한 안개처럼, 어떤 사람은 맑은 하늘처럼 아주 청명하게 보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느껴지고 깨달아지면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고 지루하고 의미 없고 허탈하던 인생이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빌라도를 통해서 이것을 보여주고 계십니다.예수님은 세상 나라의 왕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왕입니다. 세상 나라의 왕은 예수님이 아닌데 빌라도와 유대인들 모두 세상 나라의 왕으로 이해를 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나라를 간단히 비교해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끝도 시작도 없이 영원하고 세상 나라는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통치하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중심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대통령 중심이고, 법 중심이고, 조직 중심입니다. 그것이 무너지면 혼란스럽고 허탈해집니다. 또 하나님의 나라는 물질적이지 않고 영적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나라는 어떻습니까? 이 세상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언젠가 종말이 올 것입니다. 세상이 점점 악해지고 도덕이 무너지고 혼란스럽습니다. 또 이 세상은 인간이 인간을 통치하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통치하면 완전한데, 인간이 인간을 통치하기 때문에 계속 실수가 생깁니다. 이 세상 나라는 이기적입니다. 사랑을 하는데 자기 사랑에 기초하는 아주 이기적인 사랑을 합니다. 국가도 이기적입니다. 공정하다고 말하지만 공정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세상은 모두 돈으로 계산하려 합니다. ‘Money Talks(돈이 말한다)’라는 말이 잘 표현하고 있듯이 돈으로 보상하고 돈으로 이야기하려 합니다. 빌라도는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 나라를 혼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때가 빌라도가 구원에 이르는 결정적인 기회입니다. 빌라도는 진리에 손을 맞잡고, 진리가 그 안에 들어올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를 가진 것입니다. 그런데 빌라도는 거기서 끝내버리고 맙니다. 축복을 받을 뻔했다가 놓쳐버린 것입니다. 오늘도 여러분 가운데 주위 사람이 교회에 가자고 졸라서 온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오셨든지 잘 오셨습니다. 진리에서 벗어날 뻔한 순간을 벗어난 것입니다. 말씀을 계속 들어보십시오. 계속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하나님 나라를 계속 추구해 보십시오. 그러면 보석과 같이 빛을 내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진리를 향해 손을 내밀어 보십시오.


예수님을 증거하십시오 


창조과학회에 속해 있는 어느 교수님이 CGNTV에 출연해 간증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교수님은 목사의 아들이었지만 예수를 믿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자기의 이성으로 믿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이 우주의 크기에 대해 과학적으로 깊이 연구하다가 결국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고 간증했습니다. ‘당신이 우주를 만들고, 꽃을 만들고, 인간을 만든 하나님이셨습니다’라고 고백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위대한 하나님을 그동안 너무 무시하고, 농담으로 받아들였습니다’라고 고백하며 눈물을 흘렸답니다. 그분은 과학자로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자연을 통해서 보고,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바로 그분이 하나님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 자리에 무릎 꿇고 펑펑 울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삶이 달라졌다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수학적, 과학적, 생물학적 진리들을 훈련받아왔던 우리가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영적인 세계지만 하나님을 만난 순간 진리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빌라도는 정치적으로 오해를 받을까봐 더 이상 진리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알아보지 않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처형시키는 장본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을 눈앞에 두고 진리를 놓치고 하나님의 나라를 놓치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주변에 교회 가자고 아주 귀찮게 조르는 사람이 있으면 감사하게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이 구원의 문에 거의 가까이 왔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오늘부터 뺨을 맞더라도 자꾸 예수님을 증거하십시오.하나님의 나라에 가까이 가면 엄청난 평화가 찾아옵니다. 근심, 걱정과 질병이 사라집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집니다. 그런데 우리의 몸은 이 세상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입니다. 이 하늘나라에 접촉한 사람은 천국이 이미 그 사람 안에 와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길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도신경에 보면 빌라도의 이름이 나옵니다. 인류를 대표해서 예수를 죽인 사람이 빌라도입니다. 사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죽일 만한 좋지 않은 감정이 개인적으로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결론은 인류를 대표해서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고, 앞으로도 두고두고 오는 세대에도 크리스천들의 입에 매일 빌라도가 낭독될 것입니다. 한편으로 보면 빌라도라는 사람이 측은하게 여겨집니다. 진리에 가까이 왔는데, 하나님 나라에 가까이 왔는데, 이제 발만 디디면 되는데 그 마지막 순간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수많은 교회가 있지만, 그 많은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 중 하나님의 나라에 거의 갈 뻔 했는데 놓친 사람들도 많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만나서 축복받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병도 고치고, 외로움도 고치고, 우울증도 고치고, 인생의 목적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자살하려는 마음이 생겼더라도 정신 차리고 회개하십시오.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영원한 진리를 깨닫고 구원받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빌라도처럼 구원에 가까이 갔다가

멀리 떨어진 사람이 되지 않게 해 주시고,

천국 갈 때 까지 하나님의 나라와 진리가 우리 안에 있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