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다른 종교의 경전과 달리 이 세상을 긍정합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지혜로 창조하신 유일무이한 세상이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세상이고, 하늘과 땅으로 이루어진 참으로 오묘한 세상이라는 것이 성경의 기본 토대입니다. 성경의 모든 이야기는 이 토대에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 약속한 것이 뭐였습니까? 아브라함이 죽으면 천국에 들어가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까? 영혼을 구원하겠다고 약속했습니까? 아닙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겠다고 약속했고, 너를 통해 큰 나라를 이루겠다고 약속했습니다(창12:1-2). 이삭에게도 영혼 구원을 약속하지 않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땅에 머무르게 할 것이고, 이삭과 함께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창26:2-3).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구출하신 후에도 저들의 영혼을 구원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땅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풍성한 삶을 살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모세 오경의 마지막 책인 신명기가 확실하게 말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고,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고,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고, 네 광주리와 네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고,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신28:1-6).
물론 여호와의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않으면,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고 들에서도 저주를 받고,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고,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고, 하나님이 약속한 땅에서 살지 못하고 열방 중에 흩어지게 될 것이라는 말씀도 했습니다(신28:15-19,25).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한 것은 어쨌든 이 땅에서의 삶이었습니다. 하늘에서의 삶이 아니라 성읍, 들, 자녀, 토지, 짐승, 광주리, 떡 반죽 그릇, 등등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복이었습니다. 물론 그냥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말하는 건 아니에요. 세속적인 부귀영화를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율례를 좇아 사는 삶, 열방을 복되게 하는 삶, 영원한 유업이 되는 삶, 생명의 삶을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율례를 좇아 사는 삶, 열방을 복되게 하는 삶, 영원한 유업이 되는 삶, 생명의 삶이라는 것이 하늘나라에서 신비롭게 살아가는 삶을 말하는 건 아닙니다. 일상이 하나님나라의 삶이 되고, 하나님나라의 삶이 일상이 되는 삶을 말합니다. 바로 이것이 신명기가 말하는 하나님이 약속한 복의 특징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약속한 이 복이 파국에 이르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바로 바벨론 유배 사건입니다. 잘 알다시피 유다는 BC 587년에 바벨론에게 성전을 유린당하고 가나안 땅을 빼앗겼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해인 BC 596년에는 예루살렘 성전마저 약탈을 당하고 파괴되는 치욕을 당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남으로써 에덴동산에서의 모든 복을 잃었던 것처럼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 바벨론에 유배당함으로써 모든 복을 잃어버리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습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이스라엘 되게 했던 것은 성전과 율법과 약속의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에 유배당함으로써 이스라엘은 성전도 잃어버렸고, 약속의 땅도 잃어버렸고, 율법을 좇아 살 수 없는 포로 신세로 추락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이 약속한 모든 복을 잃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겠습니까? 지금까지 저들을 지켜주고 떠받쳐줬던 것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져버렸으니까, 자기들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고 굳게 믿었고 하나님이 자기들을 지켜주실 거라고 굳게 믿었는데 바벨론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유배를 당했으니까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성전을 바라볼 때마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있다고 굳게 확신했는데 그 성전이 이방나라에 의해 유린당하고 성벽이 헐렸으니까 그 충격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모르긴 몰라도 저들의 영혼과 신앙과 존재 전체가 사시나무 떨듯 떨렸을 겁니다. 모든 것이 깊은 의문에 빠졌을 겁니다. 실오라기 하나도 붙잡을 것이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난 현실 앞에서 하나님은 과연 살아 계신가, 하나님은 정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가, 하나님의 약속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스라엘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인가, 등등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물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운명이 이처럼 칠흑 같은 어둠에 빠져 있을 때에 혜성처럼 나타난 자들이 있습니다. 바로 선지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눈에 보이는 현실은 하나님의 언약과도 거리가 있어 보이고, 하나님의 선하심과도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은 여전히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언약은 결코 폐기되지 않는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강을 건널 때 물이 침몰하지 못하도록 지키실 것이고, 불 가운데를 지날 때에 불꽃이 이스라엘을 사르지 못하도록 지키실 것이며(사43:2), 열방에 흩어진 이스라엘을 다시 모으실 것(사11:12)이라고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좀 더 직접적으로 “슬프다 그 날이여! 그와 같이 엄청난 날이 없으리라. 그 날은 야곱의 환난의 때가 됨이로다. 그러나 그가 환난에서 구하여 냄을 얻으리라. ~~ 그 날에 내가 네 목에서 멍에를 꺾어버리며 네 포박을 끊으리니 다시는 이방인을 섬기지 않으리라. ~~내가 너를 먼 곳으로부터 구원하고 네 자손을 잡혀가 있는 땅에서 구원하리니 야곱이 돌아와서 태평과 안락을 누릴 것이며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라.”(렘30:7-10) 라고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도 이스라엘에게 새 영과 새 마음을 주어 정결케 할 것이고, 여호와의 규례를 행하게 할 것이고, 조상들에게 준 땅에 거주하면서 여호와의 백성이 되게 하고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될 것이라고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겔36:25-28).
더 거슬러 올라가면 신명기에도 이 메시지가 나옵니다. 신명기 저자는 28장에서 축복과 저주를 선포한 후에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며 말했습니다. ‘너희가 여호와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저주를 받는 상황이 올 수 있는데 만일 그런 상황이 온다 하더라도 이방 땅에서 저들이 마음을 돌이켜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실 것이고, 흩어진 모든 곳에서 당신의 언약 백성을 모으실 것이며, 약속의 땅에서 조상들보다 더 풍성한 삶을 살게 하실 것이다.’(신30:1-5)
성경은 이처럼 고대 이스라엘 때부터 성전과 율법과 약속의 땅에 대해 줄기차게 이야기했습니다. 심지어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나라를 잃은 후에도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을 회복시킬 것이고 다윗의 나라를 회복시킬 것이라는 이야기를 거듭거듭 반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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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바벨론 유배 이후에 새롭게 덧붙여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부활 이야기입니다. 바벨론 유배 이전까지는 부활 이야기가 없었는데 바벨론 유배 이후부터는 부활 이야기가 나옵니다. 대표적인 것이 에스겔서 37장에 나오는 마른 뼈 환상 이야기입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이 인도하는 대로 어느 골짜기에 갔습니다. 거기에는 마른 뼈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에스겔은 마른 뼈들을 향해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자, 놀랍게도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니 뼈들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고 그 위에 가죽이 덮이는 것이었습니다. 또 생기를 향해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붙어서 살아나게 하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자 그들이 살아서 큰 군대가 됐습니다(겔37:1-10).
이어서 본문은 이 환상이 무슨 뜻인지를 설명합니다. 골짜기에 흩어져 있는 마른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을 뜻하고, 뼈들이 마른 것은 이스라엘에 소망이 없어졌다는 것을 뜻하고, 여호와의 말씀과 생기가 마른 뼈들을 살려낸 것은 소망 없는 저들을 무덤에서 나오게 한 것을 뜻한다, 라고 친절하게 설명합니다(겔37:11-12).
이 설명이 말해주듯 마른 뼈 환상은 무덤에서 나오는 부활을 말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환상이 부활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른 뼈와 같은 이스라엘을 무덤을 열고 나오게 한 다음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한다는 이야기로 끝납니다(겔37:12-14). 부활 이야기와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는 이야기가 함께 묶여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이라는 주제를 부활이라는 이미지와 연결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바벨론 유배 이후에 나타난 변화입니다. 그전까지는 부활 이야기가 없었는데 바벨론에게 나라를 잃고 성전을 잃고 땅을 잃은 후에 갑자기 부활 이야기가 튀어 나온 겁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하면서 부활 이야기가 튀어 나온 거예요.
다니엘서도 그렇습니다. 다니엘서 12장은 마지막 끝 날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마지막 때에 이스라엘이 개국한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이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1절). 이어서 그 구원이 무엇인지를 설명합니다.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12:2-3).
여기서 하나님의 구원은 두 말할 것 없이 이스라엘이 개국 이래 없던 환난에서 건짐 받는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바벨론 포로가 된지 70년 만에 바벨론 유배에서 풀려났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예루살렘으로 귀환했습니다. 무너진 성벽도 재건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또 다시 알렉산더 대왕이 이끄는 헬라 제국의 침략을 받았고, 뒤이어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셀레우코스 왕조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특히 셀레우코스 왕조의 지배를 받을 때에는 많은 의인들이 고초를 겪고 죽임을 당하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하나님께 신실한 자들, 토라에 순종하는 자들이 극심한 고초를 겪고 순교당하는 너무도 끔찍하고 슬픈 일들이 많이 벌어졌습니다. 한 마디로 바벨론 유배와 같은 상황이 계속된 것입니다. 다니엘서는 바로 이런 상황 속에 있는 이스라엘을 향해 쓴 묵시록입니다. 그러니까 다니엘서가 말한 구원은 바벨론 유배와 같은 상황에서 건짐 받는 것을 말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구원을 무엇으로 표현했나요? 놀랍게도 몸의 부활로 표현합니다.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 깨어나는 것 - 즉 몸의 부활로 표현합니다. 그리고 부활한 자들이 궁창의 빛과 같이, 하늘의 별들과 같이 영원히 빛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부활한 자들이 하늘의 별과 같은 천상의 존재가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부활한 자들이 세상을 다스리는 지도자와 통치자 노릇을 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다니엘서 7장을 보면 이 사실이 확연히 드러납니다. 다니엘서 7장은 네 짐승 환상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15절부터 환상에 대한 해석을 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으리니 그 누림이 영원하고 영원하고 영원하리라.”(v.18)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나라들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거룩한 백성에게 붙인 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들이 다 그를 섬기며 복종하리라.”(v.27)
여기서 ‘나라를 얻는다’는 말은 ‘나라를 다스린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나라를 다스린다’는 말은 하나님이 아담을 만드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의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1:28)고 말씀하셨던 그 역할을 다시 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세계에서 진정한 왕노릇을 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지금의 인간은 이 세상에서 포악한 왕 노릇을 하거나 아니면 이 세상의 종노릇을 하고 사는데 부활의 때에는 사랑으로 섬기는 진짜 왕노릇을 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결과적으로 부활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게 나라와 성전과 땅을 잃고 유배를 당한 후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언하는 과정에서 툭 튀어나왔습니다. 큰 틀에서 다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이스라엘은 본래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 홍해를 건너고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들어간 하나님의 언약 백성입니다. 그런데 그런 저들이 나라를 잃고, 성전을 잃고, 약속의 땅을 잃었습니다. 마른 뼈와 같이 아무런 소망이 없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패역한 권세에 짓눌려 순교를 당하는 비참한 신세가 됐습니다.
그 때에 선지자들은 눈앞의 현실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쉼 없이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기억하사 회복시킬 것이다.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한 땅으로 불러들일 것이고, 온 세상을 사랑으로 다스리는 참된 통치자로 높이 세울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더욱이 놀라운 사실은 이스라엘의 회복과 구원을 부활과 연결시켜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선지자들은 부활을 뜬구름 잡듯이 말하지 않았습니다. 밑도 끝도 없이 말하지 않았습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이 창조한 이 세상이 유일무이한 세상이라는 근본 토대 위에서, 또 하나님의 언약이 위기에 봉착한 상황 속에서 부활을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회복과 구원이라는 맥락 속에서 말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걸 놓치면 안 됩니다. 이걸 놓치게 되면 부활은 아무 것도 아닌 게 되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돼버리기 때문에, 특히 내세 신앙으로 굴러 떨어지는 것을 막을 방도가 없기 때문에, 이 걸 놓치면 절대 안 됩니다. 오늘날 대다수 목사와 성도들이 부활을 말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내세 신앙 일색인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부활이 하나님의 창조에 뿌리박고 있고, 이스라엘의 회복과 구원이라는 드라마와 깊이 엮여 있다는 것을 자꾸 놓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부활은 하나님의 창조에 뿌리박고 있고, 이스라엘의 회복과 구원이라는 드라마와 엮여 있습니다. 창조와 구원은 부활을 통해 연결되고 통합되고 완성됩니다. 진실로 그렇습니다. 창조와 구원을 이어주고 통합하는 것은 부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활이 없으면 창조와 구원이 분열돼버립니다. 창조는 창조대로 놀고 구원은 구원대로 놀아버리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기독교는 완전히 무너집니다. 성경의 모든 이야기가 해체됩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한 겁니다. 부활이 없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되고 우리가 믿는 것도 헛되다.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들일 것이다(고전15:14,19).
부활은 진실로 창조와 구원을 연결하고 통합하는 다리이자 실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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