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주로 임직식에서 주로 설교하는 본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성도들이 이 본문이 임직자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으로 오해합니다.
물론 중요 직분자들은 더욱 높은 도덕성과 영성을 요구하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본문에서 ‘감독의 자격’이나 ‘집사의 자격’이나 결국 같은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본문은 직분자의 자격 기준이라기 보다는 <성도의 자격>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왜냐하면 결국 성도 중에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고 목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메시지 제목을 <참된 성도의 지표!>라고 정했습니다.
▶그러면 참된 성도의 지표는 무엇일까요?
첫째, 자신에 대하여-거룩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9절)
먼저 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9절)
직분자는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깨끗한 양심’은 바로 ‘거룩한 삶’을 말하며, ‘믿음의 비밀을 가진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죄사함과 구원을 얻은 성도를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성도의 가장 기본이 되는 지표는 ‘거룩함’입니다.
'거룩'이라는 원어는 히브리어 ‘코데쉬’입니다.
직역하면 ‘분리하다’, ‘구분하다’는 뜻입니다.
즉, 하늘에 속한 성도가 세상에 살면서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거룩’이라는 말은 다른 표현으로 ‘성별된’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 한국교회가 이렇게 무너진 것은,
저와 여러분이 세상에서 불신자와 구별되이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거룩하게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우리에게 ‘너와 내가 다른 것이 무엇이냐?’ 반문하는 것입니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사도 바울은 명쾌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4: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학원복음화협의회(약칭:학복협)에서 지난 해 ‘2017 한국 대학생 의식과 생활에 대한 조사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 결과를 보면, 1주일간 성경읽기와 개인기도에 사용한 시간은 합쳐서 1시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지난 1주일 동안 성경을 읽은 시간은 평균 24분에 그쳤습니다.
2012년(64분) 조사 때보다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수치입니다.
1주일간 기도한 시간 역시 2012년(59분)의 절반 수준인 31분이었습니다.
아예 성경을 읽지 않거나(63.7%) 기도를 하지 않는 비율(38.3%)도 5년 전 조사보다 높게 나타났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떨까요?
성도 여러분께서는 일주일에 공예배 시간을 빼고 성경 묵상하는 시간과 기도하는 시간 합쳐서 얼마나 되십니까?
지난 해 유행했던 말이 있습니다.
‘이게 나라냐?’
우리 모두가 많이 공감했던 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 세상은 우리에게 이렇게 물을지 모릅니다.
‘이게 교회냐?’ ‘당신이 목사냐?’ ‘당신이 장로냐? 당신이 권사냐? 당신이 성도냐?’
우리가 지금 스스로 자문하고 반성해야 할 때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성도에게 거룩이 힘입니다.
거룩한 몸부림으로 무너진 우리 대한민국교회를 세우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참된 성도의 지표는 무엇일까요?
둘째, 가정에 대하여-자기 집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4절)
다같이 4-5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지며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
본문에서 믿음의 성도는 ‘가정을 잘 다스리는 자’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저에게 설교하기에 심히 부담스러운 말씀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가정을 잘 다스리는 것일까요?
저는 가정을 잘 다스리는 요체는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부부간 화목이며, 하나는 자식을 신앙으로 잘 양육하는 것입니다.
참 쉽지요? 그렇습니다. 쉬울 것 같은데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저는 종종 이런 질문을 합니다. 성도님들께 묻겠습니다.
하나님? 남편(아내) 부모? 자녀?
이 중 여러분은 세상에서 누가 가장 두려우십니까?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는 바로 우리 아이들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못된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아십니다. 그리고 용서도 해주시지요.
하지만 자식들에게 부모가 불신을 안겨주고, 존경을 잃어버리면 회복이 불가능합니다.
저는 군에 있을 때 몇몇 가정을 보면서 자식 교육에 타이밍을 놓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다행이 지금까지는 네 아이들이 원만히 커줘서 얼마나 감사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제게도 위기가 있었습니다.
벌써 수십년 전 일입니다.
중3된 아들이 지방 어느 고등학교에 가겠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이를 지방으로 유학 보내며 기숙사 책상 앞에 걸어놓으라고 액자 하나를 써줬습니다.
-우선 순위! 자기 관리!-
이 두 단어입니다.
우선순위의 핵심은 공부도 중요하지만 ‘예배 중심’생활을 하라는 뜻이고,
자기 관리는 ‘시간관리’ ‘재정관리’ ‘체력관리’를 잘 하라는 의미였습니다.
하지만 자식들에게 그렇게 강조했던 ‘자기 관리’ 그리고 ‘신뢰’
바로 지금 목사인 제게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관리에 충실하고 가정 관리에 충실한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님이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그러면 참된 성도의 지표는 무엇일까요?
셋째, 교회에 대하여-충성된 성도로 사는 것입니다.(11절)
다같이 11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여자들도 이와 같이 정숙하고 모함하지 아니하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여러분 중에 여기 나오는 ‘여자들’이란 말을 ‘여자들도’라고 읽고 ‘나’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 충성된 자’에 주목하기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운 하나님의 교회 공동체의 일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직분은 교회 공동체를 잘 섬기도록 직분자들에게 책임을 맡긴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교회 직분이 계급이 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서리집사 때 열정적으로 교회를 섬기다가도,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면
일부 직분자들은 교회에서 어른 노릇하려고 합니다.
성도들을 섬기라고 세웠는데 어느 새 섬김 받는 것에 익숙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10:45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우리가 섬김을 받으려합니까?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딤전1:12절말씀에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충성스러워서’ 직분자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충성스럽게 여겨주셔서’ ‘충성된 직분자’로 살라고 부르셨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충성의 의미는 원어로 ‘피스토스’로서
‘충실한’, ‘독실한’ ‘헌신적인’(faithful)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도로서 ‘충성됨’이란?
믿음 안에서 ‘신실’해야 하며,
직분을 수행함에 있어서 ‘충직’해야 하고,
교회를 섬김에 있어서 ‘헌신적’이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를 충성 되이 여겨 부르신 하나님 앞에 그리스도의 충성된 직분자로,
성도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헌신적 삶을 살기로 결단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참된 성도의 지표는 무엇일까요?
넷째, 세상에 대하여-선한 증거를 얻어야 합니다.(7절)
본문 7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여기서 외인의 선한 증거를 얻은 자란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바로 ‘세상에서도 인정받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세상과 타협하라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느혜미야는 예루살렘 성이 황폐화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깊은 시름에 잠김니다.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니산월에 왕 앞에 포도주를 왕에게 드렸는데
이전에는 내가 왕 앞에서 수심이 없었더니
왕이 내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느2:1-2)‘
느혜미야는 묵도하고 즉시 왕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왕에게 아뢰되 ...나를 유다 땅 나의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느2:5)’
정말 놀라운 믿음의 용기입니다.
왕은 느혜미야의 요청에 즉석에서 두 달간의 휴가를 허락을 합니다.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요?
그것은 평소 느혜미야의 삶을 통한 선한 영향력때문이었습니다.
성경은 에스라에 대해서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왕(페르시아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이더니(스7:6)'
이렇게 세상에서도 인정을 받은 믿음의 성도는 많습니다.
그러면 이들이 세상에서 어떻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그들이 세상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신앙의 타협이 아니라,
그들의 신앙의 아름다운 향기를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제가 학생들에게 자주 쓰는 말이 있습니다.
-온실의 화초가 아니라, 광야에서 믿음이 거목이 되어야 한다!-
이 말은 교회생활이나 선교단체 활동은 그야말로 ‘온실의 화초’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예배만을 위해 부름 받은 성도들이 아닙니다.
우는 사자가 우굴거리고 굶주린 늑대가 활보하는 광야에서 치러질 영적 전투에서 승리해야 할 성도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갑옷인 말씀과 기도로 무장해도 치열한 영적 광야에서 싸우기가 버거운 세상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주일 예배 한번 드리고 세상에 나가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은 성도인 나를, 우리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믿음의 광야에서 치러질 영적 전투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려분!
우리는 세상과 타협하기를 거부해야합니다.
우리는 세상이라는 광야에서 믿음의 정면돌파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 광야에서도 인정받는 하나님의 신실한 사람으로 인정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이 우리를 보고 예수를 믿지 않겠습니까?
이제 결론을 맺겠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겠만 오늘 날 한국교회가 매우 위기입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교회가 아니라 성도의 위기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성도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위기입니다.
우리는 이제 결단해야 합니다.
첫째, 자신에 대하여-거룩한 삶을 결단해야 합니다.
둘째, 가정에 대하여-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성도이어야 합니다.
셋째, 교회에 대하여-충성된 성도로 헌신해야 합니다.
넷째, 세상에 대하여-선한 증거를 얻어야 합니다.
이런 참된 성도의 삶을 실천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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