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학단상

혼전순결

새벽지기1 2018. 9. 4. 07:29


혼전순결

 

일전에 대학 2학년 여학생이 대구성서아카데미 사이트의 쪽지로 긴 글을 나에게 보냈다. 질문이기도 하고 상담이기도 하다. 이름을 밝히지 않으면서 자신의 아버지가 내 설교를 들어보라고 해서 매주 설교를 듣는 중이라고 한다. 아버지를 꽤나 신뢰하고 있는 딸인가 보다. 질문의 핵심은 혼전순결이 절대적인 규범인가, 하는 것이다. 자신은 남자 친구와 종종 성관계를 나누고 있는데, 그럴 때마다 죄책감이 들어 불편하다고 한다. 남자 친구는 자신이 결혼까지 생각할 정도로 믿을만하고 자기를 정말 소중하게 여겨준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 문제가 자신만이 아니라 자기 또래의 기독교 청년들에게 절실하다면서 내 대답을 듣고 싶다 했다. 당장 대답하기가 어려워서 그 주제에 대해 생각해보고 정리가 되면 대구성서아카데미에 공개적으로 글을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어제 서울에 다녀오면서 기차 안에서 정리한 글을 여기 올린다.


이런 문제는 목사가 아니라 성상담 전문가에게서 답을 들어야 할 것이다. 평생 목회와 신학공부만 해서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이 현실감 있게 대답하기에는 너무 민감한 주제다. 그래도 질문한 학생은 나름 기대를 했을 것이고, 나도 평소 신학이 단순히 관념이나 이론이 아니라 삶의 능력이라고 말했으니 용감하게 대답에 나서야겠다. 영남신학대학교에서 여러 번에 걸쳐서 강의한 여성신학’(feminist theology)이 도움이 될 것 같다.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는 성경에 혼전순결이라는 말은 없다. 당시에는 이걸 당연한 것으로 보고 아예 말을 꺼내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성에 관계된 다른 이야기는 제법 많다. 성경에는 지나치다싶을 정도로 노골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어린 자녀들과 성경을 함께 읽을 때는 그런 대목을 건너뛸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야 한다. 주로 율법을 다루고 있는 레위기에 나온다. 근친상간, 동물과의 교접, 간음, 동성애 등등이다. 그 외에도 많다. 아버지의 아내를 범한 사람이나 아들의 여자를 범한 사람 등에 대한 규정도 나온다. 정말 이상한 상황도 나온다. 결혼한 남자가 자식 없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결혼해야 한다. 동생이 원하지 않을 때는 아주 복잡한 절차를 거쳐서 해결해야 한다. 요즘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게서 가끔 보듯이 명예살인이 레위기에 나온다. ‘어떤 제사장의 딸이든지 행음하여 자신을 속되게 하면 그의 아버지를 속되게 함이니 그를 불사를지니라.’(21:9). 불륜의 당사자도 다 죽이라고 한다. 무당도 죽이고, 우상에게 자식을 바친 자도 죽여야 한다. 이런 대목을 비기독교인들이 읽으면 뭐라 할는지.


성경의 성 윤리는 당시의 시대정신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당시는 가부장제가 절대원칙이었다. 아버지를 중심으로 가족이 구성된다. 여자와 아이들은 남자의 소유물이다. 여자와 아이들은 인구수에 포함시키지도 않았다. 여자와 아이들의 처분은 전적으로 남편이자 아버지에게 달려 있다. 유부녀와 성관계를 갖는 것은 재산권의 침해였다. 그래서 이를 엄중하게 다뤘다. 지금의 윤리적 관점은 이와 다르다. 여자가 남자의 소유가 아니기에 불륜은 도덕적인 문제는 될지언정 법적인 문제는 안 된다. 오늘날 성 결정권은 아무에게서 침해받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부부 사이에도 상대가 원하지 않는 상태에서 강제하는 건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 이런 문제가 앞으로 어떻게 변화될지는 전혀 감을 잡기 힘들다. 예컨대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과 성관계를 나누게 되는 시대가 오지 않는다는 말을 할 수도 없다. 더 궁극적으로는 더 이상 남녀 성관계를 통해서 자식을 낳지 않는 시대가 오면 인간의 성욕과 성 능력은 점차로 쇠퇴할 것이다. 성이 생물학적이고 사회학적인 진화의 산물이었다는 사실을 너무 길게 설명했다. 이것이 혼전순결 문제와 간접적으로 연관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두 가지 에피소드를 말하겠다. 들은 이야기다. 어느 여고에서는 혼전순결 서약을 단체로 시킨다고 한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그런 보도가 신문에 종종 나왔다. 사춘기 여학생들이 그런 서약을 맺고 결혼하기 전까지 순결을 지키게 한다는 것이다. 코미디다. 지금이 19세기도 아니고 21세기에 순결서약이라니, 아프리카 어느 부족에게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이런 서약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마음 약한 아이들의 마음만 불편하게 하고, 나에게 질문한 학생처럼 죄책감만 늘어나게 할 것이다. 성 엄숙주의에 떨어져 있는 우리나라보다 오히려 개방적인 네덜란드에서 성폭력이 훨씬 적고, 낙태율도 훨씬 적다고 한다. 남고에서는 그런 세리모니가 없다. 남자 아이들에게는 그게 아예 불가능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순결이라는 단어가 여자들에게만 해당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청년들이 군 입대 통지서를 받으면 친구들에 의해서 홍등가에 가서 총각딱지 뗀다고 한다. 남녀 포함해서 결혼 전에 성관계 경험이 없는 젊은이들을 요즘은 찾아보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야기가 너무 옆으로 퍼졌다. 이제 그만 뜸을 들이고 사랑하는 이성과의 혼전순결이 과연 지킬만한 가치인가에 대한 질문에 직답을 해야겠다. 혼전순결이라는 말은 아예 성립되지 않는다는 게 내 대답이다. 순결은 지키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예수는 실제로 간음한 것만이 아니라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것을 이미 간음한 것이라고 말했다. 간음 자체를 평가했다기보다는 사람의 이중성을 짚은 것이다. 성 관계는 두 사람의 가장 내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이기에 서로 간에 억압적이지 않고, 또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아니라면 자신들이 판단할 문제다. 그 청년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남자 친구와의 관계에서 죄책감을 느끼지 말라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서로 더 깊이 뜨겁게 사랑하라는 것이다. 다만 아직 아이를 키울 준비가 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피임을 철저하게 할 것이고, 실수로 임신했을 경우에는 정말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낙태하지 않을 각오를 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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