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학단상

사명(使命)

새벽지기1 2017. 5. 20. 08:29


사명(使命)


사명을 받아야 한다는 말을 교회 안에서 종종 들을 수 있습니다. 좋은 말입니다. 이 말은 교회 안만이 아니라 정치나 경제나 학문, 또는 예술 세계에서도 통용됩니다. 일제치하에서 독립 운동에 나선 이들은 나름으로 사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자기 일신을 보존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더 큰 부름에 응답하는 것을 사명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교회에서 사명을 받았다는 말은 특별한 뉘앙스를 풍깁니다. 여기서 사명은 목사나 선교사가 되는 것을 주로 가리킵니다. 심지어 목사 부인이 되는 것도 사명을 받은 걸로 말하기도 합니다. 좀 웃기는 주장입니다. 한 남자의 아내로 살아가는 것으로 충분하지 목사 부인으로의 사명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도, 한국교회에서는 그런 식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셀 리더나 구역장, 또는 총회장과 노회장에 나서는 것도 사명으로 해석됩니다. 교회에서는 모든 신앙적 행위를 사명으로 취급합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이나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에서 사명을 하나님의 일과 일치시키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사명을 성속 이원론적 차원에서 접근한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의 직업을 포기하고 신학교를 가는 게 마치 사명의 모든 것처럼 생각합니다. 사명을 받은 사람은 철저하게 신앙적인 일에만 자신의 운명을 던져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주장은 사명을 좁은 의미로만 보는 것입니다. 사명의 넓은 의미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성속이원론의 극복에서 시작됩니다. 이것이 바로 종교개혁자들이 말하는 소명이기도 합니다. 소명과 사명은 똑같은 의미입니다. 루터나 칼뱅 모두 기독교인의 모든 직업을 소명이라고 보았습니다. 영어의 vocation이나 독어의 Beruf 모두 소명, 직업이라는 뜻입니다. 어원적으로 ‘부르심’을 의미합니다. 세속의 직업이 모두 사명, 또는 소명이라는 뜻입니다. 변호사, 엔지니어, 구두수선공, 유치원 교사, 목사 등, 모든 직업은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교사를 하다가 부르심을 받았다고 해서 목사가 되겠다고 나서는 건 뭔가 큰 착각입니다. 교사 자체가 사명입니다. 물론 적성이 맞지 않아서 직업을 바꿀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성직자가 되는 것만이, 교회의 일을 하는 것만이 사명이라는 생각은 잘못입니다. 오히려 적성이 맞지 않는 사람이라면 목사를 그만두고 보험 설계사가 되는 것이 사명을 바로 발견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위의 설명을 조금 이상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세상일과 하나님의 일은 분명히 구분되는 거 아니냐 하고 말입니다. 돈을 벌고 명예를 얻는 목적인 세속의 직업을 어떻게 사명으로 취급할 수 있느냐 하고 말입니다. 예, 옳은 이야기입니다. 이기심에 치우친 직업은 분명히 사명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는 방식의 삶은 사명이 아닙니다.


종교개혁자들이 말하려는 바를 오해하면 곤란합니다. 그들은 세속의 직업을 사명의 차원으로 끌어올려서 살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구두수선공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 일을 행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일은 성직입니다. 그가 받은 사명입니다. 그렇게 못할 수도 있습니다. 손님들을 속이면서 자기 이득만 추구한다면 그것은 사명이 아닙니다. 모든 이들이 여기서 예외가 아닙니다. 판사도 철저하게 자기만을 위해서 그 일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사명이 아니라 호구지책에 불과합니다.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기독교인의 직업은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즉 기독교인은 모두 자기의 자리에서 사제로 살아야 합니다. 교사도 사제이고, 자동차공장 노동자도 사제입니다. 자기의 행위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으로 고양시킬 수만 있다면 그는 사제입니다.


가정주부들의 경우를 예로 들겠습니다. 어떤 이들은 집을 돌보는 일을 하찮게 여기고 교회에 나와서 기도하고 교회 행사에 참여하는 것만을 하나님의 일로 생각합니다. 큰 착각입니다. 살림살이가 곧 사명입니다. 아니 그것보다 더 큰 사명은 없습니다. 그것이 가족 이기주의를 강화하는 것이라면 곤란하겠지만 가정의 생명을 풍요롭게 함으로써 세상으로 그 생명이 확장될 수만 있다면 살림살이는 목회보다 더 중요한 성직입니다. 먹고, 숨쉬고, 배설하고, 대화하고, 서로 의지하고, 사랑을 나누는 일이 가정에서 시작해서 결국 세상에까지 확장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창조 사건과 나눌 수 없이 직결되어 있으니까요.


결론적으로 사명은 생명을 향한 부르심입니다. 우리는 생명을 풍요롭게 하는 일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사는 자리가 어디이든지 거기서 하나님의 생명을 풍요롭게 느끼고 서로 나누는 일에 솔선해보십시오. 그는 사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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