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학단상

하나님 경험(3)

새벽지기1 2017. 5. 14. 07:53


하나님 경험(3)


이런 상상을 해보자.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설사를 만났다. 이 사람의 눈은 오직 공중 화장실만 찾을 것이다. 몸의 느낌은 훨씬 화급해지는데 화장실은 눈에 뜨이지 않는다. 평소에 짝사랑하던 사람이 데이트 신청을 해도, 제비뽑기로 집 한 채를 준다고 하더라도 거들떠보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자기 자식이 달려와도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이 사람에게 현재 구원은 화장실을 찾는 것이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오직 한 가지 사실에 집중하는 것,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경험이 아닐는지.


이런 경험은 도박판에서도 일어난다. 도박에 중독된 사람들은 밥도 싫고, 가족도 싫고, 오직 도박에만 마음을 쏟는다. 마약중독자들도 역시 마약에 취하는 그 기분만을 향해 돌진한다. 내용은 다르지만 도박이나 마약은 하나님과 비슷한 현상으로 나타난다. 차이가 있다면 전자는 사람의 영혼을 병들게 하는 반면에 후자는 영혼을 윤택하게 한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 경험이 화장실, 도박, 마약처럼 절실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이에 대해서는 긴 설명이 필요 없다. 오늘의 그리스도교 신앙이 거의 교양과 동아리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바로 이에 대한 반증이다. 물론 겉모양은 경건하지만 능력은 없다. 여기서 능력은 교회를 부흥시킨다거나 전도를 많이 했다거나 신유의 능력을 나타낸다는 게 아니다. 생명의 신비에 돌입함으로써 그 이외의 것들에 의해서 흔들리지 않는 삶의 능력을 말한다.


다시 설사 이야기로 돌아가자. 삶의 능력은 현재 자기에게 실존적으로 다가오는 것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바로 설사 만난 사람의 태도와 다를 게 하나도 없다. 그는 오직 한 가지 사실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다. 밥을 먹을 때 다른 생각하지 않고 흡사 설사 만난 사람이 화장실을 찾아 배설에 집중하고 있듯이 먹는 것만 집중할 수 있는 것이 삶의 능력이다. 그럴 때만 인간의 영혼은 자유롭다. 아무리 많은 돈을 벌거나 사회적인 지위를 확보했다 하더라도 이런 집중력을 상실하면 그는 불행하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화장실에 들어가서 배설을 해결하고 난 다음에는 그런 갈급한 마음을 송두리째 망각하듯이 우리가 삶에 마음을 두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온갖 잡동사니가 우리의 영혼을 소란하게 만든다. 우리의 인생은 이런 삶의 반복일지 모른다. 하나님을 향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가 어느 순간에 많은 걱정으로 정신이 혼란해지곤 하는 그런 반복 말이다.


이건 소위 목회를 하는 목사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목회에 성공하면 좋을 것 같지만 그것은 곧 자기의 영혼이 혼란해지는 지름길이다. 그렇다고 해서 가난한 삶이나 자립할 수도 없는 작은 교회를 예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신이 어떤 형편에 처했든지 설사 만난 사람처럼 영적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게 관건이다. 우리가 어떻게 그런 영적 경지에 들어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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