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함을 받은 자! 택함을 입은 자!
(마22:1-14: 혼인잔치 비유)
▶본문
1.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이르시되
2.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3.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4.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5.그들이 돌아 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6.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7.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8.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9.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10.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11.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13.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14.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해석과 설명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1절)
‘천국은 마치’ 이런 표현은 마태복음에서 자주 등장하는 형식이다.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마20:1)’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마13:45)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마13:47)
본문은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 비유’다.
여기서 ‘혼인잔치’는 헬라어 기무스라는 단어인데 복수로 기록되었다.
이는 혼인 잔치가 단회로 끝나지 않고 여러 날에 계속되었음을 반영한 것이다.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을 임금이 그 아들을 위하여 베푼 혼인잔치에 비유하고 있다.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3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
고대 근동에서의 잔치를 배설할 때 몇일 전 종들을 보내어 미리 초대를 했다.
그런데 정작 찬치 날 초청을 하자 초청자들이 ‘오기를 싫어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초청자는 하나님이며, 초청을 받은 사람들은 유대인들을 의미한다.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4절)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어’
임금이 배설한 잔치에 불응한 초청자들에게 다시 종들을 보냈다는 것이다.
‘이르기를 내가...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또한 이처럼 임금이 간청하다시피 손님을 초청했다.
◦‘들이 돌아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5-6절)
하지만 반응은 최악이었다.
임금의 초청을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 중 한사람은 자기 밭으로 일하러 나가 버렸고,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버렸다.
이들은 유대인들 가운데 예수의 천국 복음에 대해 무관심했던 자들이다.
심지어 그 남은 자들은 임금이 보낸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기까지 했다.
여기서 ‘남은 자들’은 문맥과 역사적으로 볼 때 천국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적극적으로 박해한 유대인들을 가리킨다.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7절)
‘임금이 노하여’
잔치의 주관자인 임금이 당연히 노할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말한다.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이 부분은 두 가지로 해석되어야 한다.
구속사적으로는 마지막 날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을 거부한 자들에게 있을 것이라는 것과
역사적으로는 AD70년 로마의 티토장군에 의한 예루살렘 멸망 사건을 말한다.
성경은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를 ‘진노의 막대기(사10:5)’라고 하셨고,
예루살렘을 멸망시킨 바벨론을 ‘하나님의 철퇴(렘51:20)’라 하셨다.
당시 로마도 ‘하나님의 진노의 막대기’였다.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 대‘(8-9)
‘혼인 잔치는 준비 되었으나’
이는 여전히 천국 찬치는 배설하고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합당하지 않았다’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여기서 ‘교차로’는 지방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많은 교통로를 의미한다.
이는 잔치에 초청되지 못했던 다른 사람들에게 참여할 기회가 넘어갔다는 말이다.
구속사적으로 처음 초청되었던 ‘유대인들’에게서 ‘이방인들’로 그 대상이 옮겼음을 의미한다.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10절)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이는 초청 대상자의 제한이 철폐되었음을 의미한다.
좁게는 예수님 당시 ‘고넬료’ ‘가버나움의 백부장’ ‘가나안 여인’등을 가리킨다.
역사적으로는 모든 이방인이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11-12절)
이제 천국 잔치는 열렸다.
주빈인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나왔다.
그런데 거기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여기서 이 예복은 무엇인지?
이 예복을 어떻게 입을 수 있는지?에 대하여는 언급이 없다.
하지만 마태는 그 과정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기록했다.
하지만 성경의 구속사적 관점에서 볼 때 이는 ‘예수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을 의미한다.
이는 사도 바울의 서신서에서 분명히 들어 난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13:14)”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3:27)”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13절)
여기 이 모습은 ‘하나님의 최후 심판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본 절에서 ‘어두운 데’는 ‘천국’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복음을 듣지 않은 자!
복음을 거부한 자!
더 나가 복음을 박해한 자!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 날 이런 심판을 피할 수 없다.
▶교훈과 적용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14절)
본문은 예수님의 이른 바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 비유’다.
앞 21장의 ‘악한 농부의 비유’는 백성의 의무와 책임 준수에 대한 메시지라면,
이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 비유’는 백성에 대한 권리를 보장해 주려는 ‘하나님의 사랑’이 메시지다.
본문에는 우리가 꼭 집어 봐야 할 부분이 있다.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어’(4절)
임금이 배설한 잔치에 불응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금이 이처럼 간청하다시피 손님을 여러 번 초청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향하여 사랑하시는지,
그리고 얼마나 오래 참으시는지를 보여 주시는 장면이다.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13절)
이 장면은 보통의 ‘잔치’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왕궁에서의 잔치’라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더구나 본문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목적을 가지고 드신 비유다.
이 모습은 ‘하나님의 최후 심판 장면’을 묘사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복음을 듣지 않은 자!
복음을 거부한 자!
더 나가 복음을 박해한 자!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 날 이런 심판을 피할 수 없다.
그 누구도 말이다.
그럼 누가 하나님이 심판을 받는가?
바로 11절의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이다.
이 ‘예복’은 성경의 구속사적 관점에서 볼 때 ‘예수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을 의미한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14절)
이는 본 비유의 결론에 해당하는 말씀이다.
이는 본 절은 최후의 심판 때 있을 실제 상황의 현재적 표현이다.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계20:14-1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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