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어거스틴

[어거스틴 참회록165] 식욕의 조절

새벽지기1 2017. 9. 29. 07:35


제10 권 고백




31. 식욕의 조절.

그밖에도 '그날의 고통'이라는 것이 있습니다만
그날의 고통은 그날로 충족되기를 빕니다.
즉 당신께서 음식과 위를 멸하실 때까지는
우리는 매일 시들어 가는 육체를 먹고 마시는 일로 보완시킵니디.
그때에 당신께서 충족하게 채워 주심으로써 우리의 욕망이 사라지게 해주시고
이 소멸할 것을 영존할 비소멸성으로 입히십니다.
그러나 지금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쾌락이므로
쾌락의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서 이 쾌락과 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단식하고 날마다 싸워서 이따금 육체를 굴복시키지만
그 고통을 멸하기 위해서는 쾌락을 이용합니다.
사실 굶주림과 갈증은 일종의 고통이며
만약 영양이라는 의약이 다시 도와주지 않으면
열병이 사람을 죽이듯이 나의 몸을 산화시켜 버리겠지요
그런데 그 영양이라는 의약은 당신의 위로에 가득찬 선물에 의해 준비되어 있어서
땅과 하늘, 그리고 물은 그 선물을 가지고 우리를 도와주므로
본래 재앙이어야 할 이 음식을 우리는 '맛'이라거 부릅니다.

당신은 영양을 섭취함에 있어 약을 먹는 자세로 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복의 고통에서 포식의 만족으로 옮기려 할 때
그 과정에는 육욕의 함정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실 그 통로 자체가 쾌락입니다.
필요에 의해 통과해야만 하는 통로는 없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지만
그때 어떤 위험한 쾌락이라는 동반자가 끼어들어
내가 말하기는 건강을 위해 먹고 마신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쾌락 이외에  아무것도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건강과 쾌락의 기준은 결코 일정하지가 않습니다.
건강에 있어서 충분한 것은 쾌락에는 불충분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육신을 돕기에 필요한 염려를 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쾌락으로 유혹하는 향락을 위해서 하는가를 묻게 됩니다.
가엾은 영혼은 이 불확실성을 만족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변명의 여지를 마련해 두고 건강이 필요로 하는 것이 어느 정도인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매우 즐거워하면서
육신의 필요라는 구실 아래 쾌락의 일거리를 감추어 둡니다.
나는 그러한 유혹을 물리치려고 매일 노력하고
당신의 오른손으로 나를 도와달라고 매일 부르짖고
내 마음의 불안을 당신께 맡깁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종류의 문제는 나로써는 확실한 판단을 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음식과 술로 몸을 둔하게 해선 안된다"고
명령하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술은 나 자신을 멀리하고 있습니다.
당신께서는 그런 것이 내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자비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식욕과도 같은 육욕은 당신의 종을 여러 번 사로잡았습니다.
당신께서는 그런 것이 내게서 멀어지도록 자비를 베푸실 것입니다.

만약 당신께서 보살펴 주시지 않는다면 아무도 절제할 수 없습니다.
당시은 우리의 기도에 응낙하시고
우리가 구하기 전에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나중에 가서야 그것을 깨닫게 된 것도 우리가 당신에게서 받은 것입니다.
나는 결코 애주가가 아니었으나
당신으로 인해 어떤 애주가가 금주가로 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래 애주가가 아닌 사람이 앞으로 금주가가 되는 것도
당신으로 인해서이며 그들이 그것을 깨닫는 것도 당신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나는 또 "육욕을 좇지말고 쾌락으로부터 멀리 떨어져라."
하시는 당신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선물이었습니다.
나는 그 음성을 무척 좋아합니다.
"우리는 비록 먹더라도 아무것도 얻지 못하지만 먹지 않더라도 잃는 것이 없습니다."
즉 그것은 어떠한 것도 나를 부하게 하거나 가난하게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나는 또 다른 말씀을 들었습니다.
"나는 풍부에 처할 줄도 알고 곤궁한 데서 인내할 줄도 압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분 안에서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하늘 나라의 병사이며 우리들과 같은 먼지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이시여, 우리는 먼지이며 당신은 먼지로부터 인간을 만드시어
인간은 일단 사라졌다가 다시 발견된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바울 역시 먼지였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당신께서 불어넣어 주신 숨결로 인해 그러한 말씀을 남겨 놓았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를 그처럼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그는 나를 능하게 만드시는 분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나를 능하개 하셔서 나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십시오
당신께서 명령하실 것을 내려보내신 후에 당신의 뜻대로 명령하십시오
바울은 받았다고 고백했고 자랑도 주님 안에서 했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받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는 "나의 배의 정욕을 내게서 취하소서." 라고 했습니다.
나의 거룩하신 하나님, 무엇이든 그렇게 되라고 명하게 된다면
그것은 당신께서 주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어지신 아버지이신 당신께서 내게 가르치시기를
'깨끗한 자에게는 무엇이든지 깨꿋하지만 사람이 먹는 것으로 인하여
마음에 
걸리면 악이 된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모든 피조물은 선하여 버릴 것이 하나도 없으며
사람은 모름지기 감사하는 마음으로 취해야 하고
하나님 앞에서는 음식이 우리에게 가치를 부여해 주는 것이 아니고
더구나 어느 누구도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 때문에 우리를 판단하지 못하며
그리고 모든 것을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판단하지 말고
먹지 않는 자도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이러한 것을 배웠습니다.
내 마음을 공평하게 하시고 내 마음 위에 빛을 비추신 나의 스승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신 당신께 감사하고 당신을 진정 찬양합니다.
모든 유혹에서 나를 구원해 주옵소서
내가 두려워 하는 것은 부패한 음식이 아니라 추잡한 식욕입니다.
노아는 먹어서 영양이 될 고기는 무엇이나 다 먹도록 허락받았고
엘리야는 고기를 먹고 기운을 얻은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한편 절제의 은사를 받은 요한은
짐승의 고기와 메뚜기를 먹었어도 더러워지지 않았고
에서는 죽 한 그릇에 넘어갔고
다윗은 물 한모금 마시려다가 실수하여 스스로를 책했고
우리의 왕 예수님도 고기가 아닌 빵으로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광야의 백성이 벌을 받게 된 것도 고기를 탐한 때문이 아니라
음식 투정으로 주님을 거스려 떠들어 댔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유혹에 처한 나는 매일 식욕과 싸우고 있는데
이것은 성경적인 교접처럼 한번에 끊어버리고 나면
다시 되풀이 되지 않는 경우와는 다릅니다.
위(胃)의 고삐는 적절히 조절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시여, 이같은 일에 있어서 꼭 필요한 분량만큼을
조금도 넘기지 않는 인간이 있을까요?
그렇게 할 수 있는 인간이 있다면 그는 훌륭한 인물이며
그 사람으로 하여금 주님을 찬양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위인이 아니라 죄인입니다.

그렇지만 나도 당신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이 세상에서 승리하신 분(그리스도)이 나의 죄를 도맡아
자신의 한 허약한 지체로 여겨 주십시오.
왜냐하면 이 완전하지 못한 것을 당신의 눈이 확인하시고
모든 것이 당신의 책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