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강대식목사

전제와 같이 부어지고 (딤후 4:6-8)

새벽지기1 2017. 9. 3. 07:2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전제’는 지난 번역에서는 ‘관제’로 번역되었다.

‘전제’(drink offering,헌주)는 구약에서 행해진 제사의 하나이다.

번제 소제와 같이 드려진 제사이다.

 

‘전제’는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를 붓는(쏟는) 의식을 취했다.

희생 제물처럼, 소제의 제물처럼, 정해진 양의 포도주를 다 부어드림이 전제로 부어짐이다.

바울은 이 ‘전제’를 자신의 순교의 죽음과 관련시켜 말하고 있다.

 

그래서 다른 번역은 ‘전제’의 뜻을 풀어서 번역하고 있다.

공동번역) 나는 이미 피를 부어서 희생 제물이 될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표준새번역) 나는 이미 부어드리는 제물로 피를 흘릴 때가 되었습니다.

 

빌립보서에서는 성도들의 믿음의 제물에 덧붙여 그 자신의 피를

전제로써 붓는데도 마다 하지 않을 것을 말하고 있다.

(빌2:17)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바울은 순교하였지만, 그의 회심후 전 생애가 전제로 부어지는 생애였다.

이제 순교로 전제의 포도주가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부어질 때가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가 세상을 떠날 때인 것이다.

 

바울을 위시한 사도들의 순교는 바로 우리 주님의 전제를 본받은 것이었다.

우리 주님이 자신을 십자가에 희생 제물로 드려서 전제의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다 흘리셨다.

(마26:27-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전제물은 어디에 붓느냐가 또한 중요하다.

유대인들은 타락하여 전제물을 우상에게 드려 책망과 진노를 받았다.

(사65:11-12) '나 여호와를 버리며 나의 성산을 잊고 갓(운수신)에게 상을 베풀며 므니(운명신)에게 섞은 술을 가득히 붓는 너희여, 내가 너희를 칼에 붙일 것인즉 다 구푸리고 죽임을 당하리니'

(렘7:31)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도벳 사당을 건축하고 그들의 자녀들을 불에 살랐나니(몰렉에게)'

 

전제물을 붓는 것은 창세기에 처음 나온다.

야곱이 메소포타미아로 도망가는 길에 하나님을 만나고서 전제물을 세운 돌 기둥에 붓는다.

(창35:14-15) '야곱이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 곧 돌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더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전제물로 부으신 후

아버지께로 가셔서 받아 전제물처럼 부어주신 것이 성령이시라 할 수 있다.

(욜2: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이 예언은 오순절 성령 부어주심에서 이루어졌다고 베드로가 첫 설교에서 증거한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자신의 피를 전제물로 부어드리신 후

우리에게 아버지의 영을 전제물처럼 우리에게 부어주시고서

그 성령을 의지하여, 우리 자신을 산 제물로, 전제물의 포도주로, 드리라고 하신다.

(롬12:1)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바울은 우리에게 자기가 주님을 본받은 것 같이 우리는 자기를 본받으라고 한다.

(빌3: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바울은 전제와 같이 부어질려면, 세 가지를 본받아야 한다고 오늘 본문에서 말씀한다.

(딤후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1. 전제와 같이 부어질려면,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우리가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할 대상은 육체와 세상과 마귀이다(3대 원수).

이것들이 우리를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들고 죄를 짓게 하기 때문이다.

육체에 죄가 거하고, 그 육체는 세상에 속해 있고, 그 배후에 영적 세력으로 마귀가 있다.

 

1) 우리는 마귀와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대로 사는 것, 그 배후에 마귀가 자리 잡고 있다.

(엡2:2-5)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나이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6:10)

 

베드로도 야고보도 요한도 이 마귀를 대적하라고 한다.

(약4:7)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벧전5:8-9)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고난의 배후에 마귀가 있다고 함)

 

(요일4:1,6)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2) 세상과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세상과 벗하는 것이 간음한 여인이 되는 것이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약4:2)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세상과 너무 친해지지 마세요!)

 

세상에 살되, 세상에 속하지 말고,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신다.

(요일2:15-17)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3) 우리는 육체와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롬6:12-13)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육체의 일은 분명하다고 하였다.

(갈5:19-21)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죄의 목록들이다, 성령의 열매가 아닌 것들은 다 육체의 열매로 보면 된다.)

 

육체로 행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원수로 행하는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빌3:18-19)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선한 싸움을 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와 징계가 내릴 것이다.

(롬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하나님의 참으심을 멸시하고 회개하지 않는 자들은 그 날에 임할 진노를 쌓는다고 하셨다.

(롬2:4-5)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진노와 징계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우리의 평안과 축복을 항상 누리기 위해서

우리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다.

 

세상의 떡만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사람의 품위를 우리는 지켜야 한다.

이를 위해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하늘에 시민권이 있는 사람답게, 하나님의 자녀답게, 품위와 인격을 세우고 살기 위한

선한 싸움을 우리는 싸워야 한다.

 

2. 전제와 같이 부어질려면, 달려갈 길을 마쳐야 한다.

 

바울은 사도행전 20:24에서 “내가 달려갈 길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한다”고 말한다.

믿음의 경주를 마치는 데는 생명을 걸어야 한다는 말씀이기도 하다.

 

생명을 걸지 않고 얻을 수 있는 선한 것은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자기 십자가를 매일 지고 주님을 따르라 하심도 생명을 걸라는 말씀일 것이다.

십자가는 생명을 걸고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믿음은 경주로 비유된다.

(고전9: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달려갈 길을 마치기 위해서는 게으르지 않고 열심을 다하여 주를 섬겨야 할 것이다.

(롬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달려갈 길을 마치기 위해서는 목표를 분명히 정하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야 할 것이다.

(빌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3. 전제와 같이 부어질려면, 믿음을 지켜야 한다.

 

우리의 믿음을 지킬려면, 환경과 고난에 흔들리지 않고 견실하여야 할 것이다

(고전15:58)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믿음을 지킬려면 무엇보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어야 한다.(믿음과 인내는 항상 한 쌍이다)

(약1:2-5)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속들을 자신의 기업으로 받는 사람들의 특징은 믿음과 오래 참음이다.

(히6:12)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믿음을 지킬려면 항상 말씀 안에 풍성하게 거하고 말씀을 항상 묵상하고 지켜야 한다.

(골3: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수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믿음을 지킬려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뿌리를 박고 세움을 받고 행해야 한다.

(골2:6-7)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였다.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고 하였다.

우리는 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고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그분을 영화롭게 할 수 없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의 삶을 산 사람들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히브리서 11장은 말씀한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다.

믿음으로 노아는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였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순종하여 갈 바를 아지 못하고 나아갔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이삭을 드렸다.

믿음으로 모세는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더 좋아하였다.

 

4. 전제와 같이 부어질려면,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아야 한다.

 

선한 싸움은 싸울 뿐 아니라 이겨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을 힘입어 우리는 넉넉히 이길 수 있다고 하였다.

선한 싸움을 싸워 이기는 자에게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이 계 2장, 3장에 있다.

이기는 그에게는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계2:7).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2:1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돌을 주리라(2:17).

이기는 자는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2:26).

 

이기는 자는 흰 옷을 입을 것이요(3:5).

이기는 자는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라(3:12)-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리라(3:21)

 

바울은 기쁨으로 이후에 자신이 살게 될 삶을 바라보고 있다.

(딤후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우리 앞에 의의 면류관이 있게 된다는 이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으로서 시련을 견딜 수 있게 해 준다.

그것이 '의의 면류관'으로 불려지는 것은

이제 우리가 주님 앞에서 거룩함과 의가 완전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의의 면류관은 사도들과 순교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있게 될 것이다.

모든 성도들의 특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바울은 기쁨으로 죽음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는 죽음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

그는 그것을 떠나는 것으로 혹은 놓임 받는 것으로 표현한다.

 

그에게 죽음이란 곧 이 세상의 속박으로부터 놓임 받아, 저 세상의 즐거움으로 떠나는 것이다.

그는 삶을 마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전제물로 부어 드린 사람에게 죽음은 즐겁고 기쁜 것이다.

 

바울은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 기쁨으로 자신이 살아온 삶을 돌아보고 있다.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켜온 삶을 돌아보고 있다.

 

우리도 우리의 남은 생애를 바울처럼 전제와 같이 부어지도록 살고,

죽어가는 순간에 기쁨으로 자신이 살아온 삶을 돌아보며,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고 기대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