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어거스틴

[어거스틴 참회록141] 기억력

새벽지기1 2017. 8. 24. 07:35



제10 권 고백




8.기억력

나는 나의 본성에 갖추어진 이러한 능력을 넘어서
단계적으로 나를 창조해 주신 분께로 올라갈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마침내 기억이라는 광대한 궁정에 들어갈 것입니다.
거기에는 감각에 의해 반입된 여러가지 사물에 대한 수 없는 영상의 보고가 있습니다.
또한 거기에는 감각에 의해서 접촉한 것을 사유에 의해 증감하고
또는 무슨 방법으로든지 바꿈으로써 얻어진 것이 모두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밖에도 망각속에 삼켜지고 매몰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들도 역시 모두 거기에 숨겨져 있고 보관되어 있습니다.

내가 그 보고 속에 들어가서 무엇이고 내가 원하는 것을 내놓도록 한다면
어떤 것은 즉시로 발견됩니다.
그러나 어떤 것은 발견하는데 무척 시간이 걸려서
비밀스런 창고에서라도 끌어내는 것처럼 발견됩니다.
그런데 어떤 것은 떼를 지어 나타나서 다른 것을 찾고 있는 한 복판에 뛰어들어
'혹시 우리를 찾으려는 것이 아닌가?'하고 외치면서 기억 속에 떠오릅니다.
내가 마음속의 손을 흔들어 내 기억의 눈앞에서 그것을 쫓아 버리면
내가 원하던 것이 안개 속에서 어렴푸시 나타나 결국 뚜렸하게 보입니다.
그런데 어떤 것은 요구대로 순서적으로 떠올라 앞서 온 것은
뒤에 온 것에 자리를 양보하고 사라지는데
사라질 때도 내가 원하면 언제나 나타날 준비를 하고 사라집니다.
내가 기억을 더듬어 이야기할 때에는 언제나 이같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이 기억이라는 곳에는 모든 것이 저마다 제 통로로 들어와
각기 종류에 따라 보존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빛과 색채와 물체의 모습은 눈을 통해서 들어 오고
모든 종류의 소리는 귀를 통해서 들어 오며, 모든 냄새는 코를 통해서,
모든 맛은 입을 통해서 들어 오는 것입니다.
또 신체의 안에 있건 밖에 있건간에 단단한 것,부드러운 것,
차가운 것, 뜨거운 것, 매끈매끈한 것, 거친 것, 무거운 것, 기벼운 것 따위의
영상은 전신에 분포되어 있는 감각에 의해서 들어 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기억이라는 광대한 창고와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밀실에 간직되어
언제든 필요할 때면 꺼내 쓸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은 각기 저마다의 문호를 통해서 들어와 그곳에 보관된 것입니다.
그러나 사물 자체가 들어 오는 것이 아니고
오직 감각된 여러 사물의 심정이 거기 있어서
떠오르는 생각에 언제나 응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있는데 불과합니다.

이들 심정이 어떠한 감각에 의해서 포착되고 내부에 보관된 것은 분명합니다만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는가 하는 것은 아무도 설명하지 못합니다.
어둡고 조용한 속에서도 나는 마음만 먹는다면 색갈을 기억할 수 있고
흰색과 검은색 그외에 마음대로 생각해낸 어떠한 색도 구별할 수 있습니다.
이때 비록 감추어진 상태로 보관되어 있어서 겨우 기억이나 하는 정도일 지라도
정신의 눈앞에 그려져 있는 것을 결코 중단시키거나 방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회상하고 싶을 때에는 언제나 그것이 기억에 떠오릅니다.
혀도 놀리지 않고 목청이 울리지 않아도 얼마든지 하고 싶은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비록 색갈의 영상이 나타나 있을 경우라도 귀를 통해서 들어와
보고에 쌓였던 다른 부분이 작동할 때 중간에 끼어들거나 방해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다른 감각에 의해서 들어와 쌓여 있는 다른 영상 까지도
마음대로 기억해 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백합향기와 오랑캐꽃 향기를 아무 낸새를 맡지 않고도
구별할 수가 있으며 포도즙보다는 꿀이 더 달다든가
매끈매끈한 것이 거친 것 보다 좋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구별할 수가 있습니다.

나는 그러한 일들을 내 마음속, 즉 기억의 거대한 방속에서 행합니다.
거기에는 하늘이나 땅, 그리고 바다도 그것들 속에서 감각할 수 있었던
모든 것과 더불어 단지 잊어버린 것을 제외하고 보관되어 있습니다.
나는 또 거기서 나 자신을 만나서 나의 행동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어났으며
그 행동을 했을때 어떤 기분이었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거기에는 내가 겪었던 것이든지 남이 겪었던 것이든지
내가 상기하는 모든 것이 있습니다.
동일한 것에서 나 자신이 새로 겪은 형상이나
남이 겪은 사물의 과거의 것과 결부시켜서 그것들로부터 미래의 행동,
그것이 어떻게 돨 것인지 무엇을 바랄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되는데 
이 모든 것은 다시 정신앞에 실재하는 것 처럼 보입니다.

나는 이러한 사물의 영상으로 가득찬 나의 마음이라는 거대한 밀실 속에
'이것을 하자, 저것을 하자.' '그러면 이러한 결과가 생기겠지.'
'제발 이러저러 했으면 좋겠는데.'
'주님이시여, 이일, 또 저일이 생기지 않게 해주십시오.'하는 따위의 말을 합니다.

내가 이같이 독백을 하는 동안에
기억의 보고에서 모든 것의 영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만약 영상이 없었다면 나는 그것 중에 무엇 하나 들추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이시여, 기억력은 위대합니다. 실로 위대합니다.
그것은 광대무변한 속 마음입니다.
누가 그 속마음을 규명해 낼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이것은 내 영혼의 힘으로써 본성에 속하는 것인데
나는 그 나라는 것의 전체를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정신은 어떻게 자기 자신을 파악할 수 없을까요?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정신이 얼떨떨해지며 매우 놀라게 됩니다.

흔히 사람들은 높은 산, 거센 파도, 넓은 강, 광막한 바다,
별 운행 따위를 보고 놀라지만 자기 자신의 일은 소홀히 합니다.
내가 이러한 일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아무것도 보지 않고 말한다는 것을 알고도 젼혀 놀라지 않습니다.
내가 보았던 산천과 넓은 바다와 별, 그리고 내가 말로만 들었던 대양을
마치 외계에서 보는 듯이 내 기억속에 뚜렷이 자리잡고 있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거기에 대하여 내가 아무 말도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그것들을 보았을 때 그것들을 내 안에 흡수해 버리지는 않았으며
다만 영상이 내 속에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나는 어떤 것이 육체의 어느 감각을 통해서
내게 어떤 인상을 주었는가를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