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서 하늘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손해를 보더라도, 오해를 받더라도, 수치를 겪더라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과 계시 앞에 순종하는 용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십시오.
요셉은 크리스마스 스토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자주 잊히는 인물입니다. 하나님은 메시야를 언제 어디로 보내실 지와 누구를 통해 보낼지를 미리 준비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 육신의 아버지로 선택된 사람이 바로 요셉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크리스마스 스토리에서 자주 잊힙니다. 마치 결혼식에 참석한 신부의 아버지와 비슷합니다. 신부의 아버지는 딸의 결혼식을 위해서 가장 많은 희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는 관심을 받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신부를 주목하고 신부의 아버지에게 환호와 박수를 주지 않습니다. 크리스마스카드도 마찬가지입니다. 마리아와 예수님이 함께 있는 그림, 목자들의 경배하는 그림, 동방박사들의 경배하는 그림이 있는 카드는 많이 있지만 예수님의 아버지였던 요셉과 예수님이 함께 등장하는 카드는 드뭅니다. 그만큼 사람들에게 요셉은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에 누구보다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
당시 유대 문화에서는 남편 없는 여자가 혼자 자녀를 양육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은 요셉과 마리아의 보호와 사랑을 받으며 안전하게 자랐습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출생을 마리아의 관점에서 기록하고 있고,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출생을 요셉의 관점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장 1절부터 17절까지 족보가 나옵니다. 족보에는 예수님의 혈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혈통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민족이었습니다. 족보에는 예수님이 어떤 역사를 통해서 이 땅에 오셨는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족보의 핵심은 예수님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유대 민족에게 가장 인정을 받고 존경을 받은 다윗왕의 후손입니다. 예수님은 왕의 후손이었지만 아버지의 직업은 목수였습니다. 왕의 후손이 목수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왕권이 몰락했다는 의미입니다.
영국은 왕정시대가 끝났지만 지금도 왕궁이 있고 어느 정도 왕족으로써의 권위를 인정해줍니다. 그러나 유대는 달랐습니다. 왕족들에게 특별대우를 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왕의 후손이었지만 목수 일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학자들은 다윗의 왕손들이 목수 일을 하게 된 것을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을 때부터라고 추정합니다. 아마 요셉도 아버지로부터 목수 일을 배웠을 것입니다. 당시 나사렛 인근에 신흥도시들이 세워지고 있었기 때문에 목수였던 요셉은 나사렛에 살았습니다. 신흥도시를 세우고 있었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목수들이 필요했겠습니까. 당시 건축물을 짓는 데에 목수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당시 목수들은 나무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석공 일도 같이 했습니다. 목수의 역할과 석공의 역할까지 했기 때문에 건축물을 짓는데 목수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율법을 읽고 묵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히브리어를 할 줄 알았습니다. 유대 회당에서 히브리어를 배웠을 뿐만 아니라 헬라나 로마사람들에게 일을 의뢰받았기 때문에 헬라어와 라틴어도 할 줄 알았을 것입니다. 요셉은 예수님의 언어능력 발달에도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딜레마에 빠진 요셉
오늘 본문에서 요셉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마리아가 사람들 앞에 수치를 당하게 될까 봐 남모르게 파혼하려 했습니다”(19절). 오늘 본문은 요셉과 정혼한 마리아가 임신을 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으로 시작됩니다. 만약 여러분이 요셉이었다면 어떻게 반응했을 것 같습니까. 요셉과 정혼한 마리아가 자신과 상관없는 아이를 임신했을 때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까요. 두려움과 배신감, 상처와 분노가 생기지 않았을까요. 이것이 요셉이 크리스마스에 감당해야했던 사건이었습니다. 요셉에게 크리스마스는 충격이었습니다. 요셉은 세 가지 이해할 수 없는 사실 때문에 괴로웠을 것입니다.
첫째, 성령으로 잉태했다는 마리아의 말 때문입니다. 당시 유대 사회는 젊은 남녀가 자유롭게 교제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오랜 시간동안 대화하고 마음을 나눈 관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리아의 말을 믿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둘째, 처녀가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를 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이냐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로운 소식에 요셉은 고민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사야서에 처녀가 메시아를 잉태할 것이라는 예언이 있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과 그 예언을 연결한다는 것은 어려웠을 것입니다. 셋째, 무엇 때문에 요셉과 마리아에게 이런 일이 있어났느냐는 고민입니다.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요셉에게 이런 딜레마를 허락하셨을까요. 마리아는 결백했고, 하나님의 계시를 직접 들었기 때문에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입장은 다릅니다. 요셉은 마리아가 임신한 것을 곤란했고,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를 통해 오신 예수님
하나님은 당시 결혼제도 중 정혼관계를 통해서 예수님을 보호하셨습니다. 유대의 결혼문화에는 정혼이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정혼이라는 제도는 오늘날 결혼을 하겠다는 약속을 확실하게 하는 단계가 아닙니다. 당시 정혼은 법적인 구속력이 있었습니다. 약혼과 결혼식 사이에 1년 동안 기간을 보내는 것을 정혼이라고 하는데 결혼한 것과 동일한 법적 구속력이 있었습니다. 정혼기간 동안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남편과 아내라고 부릅니다. 아직 합하지는 않은 단계입니다. 이 기간에 성령의 능력으로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한 것입니다.
이 기간 동안 태어난 아기는 법적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만약 정혼기간이 아닌 시기에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았다면 예수님은 사생아가 되었을 것입니다. 사회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아버지 없이 자라는 자녀는 생명을 유지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마리아도 보호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결혼을 하고 난 이후에 예수님이 태어났다면 동정녀에게서 태어난 예수님이라는 신비스러운 일에 문제가 생깁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하나님은 정혼관계에 있는 마리아와 요셉을 통해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당시의 문화와 관습을 뛰어 넘는 결정이었습니다. 또 이러한 딜레마를 믿음으로 극복할 수 있는 요셉과 마리아를 통해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예수님을 언제, 어디로 보낼 것인지를 준비한 것뿐만 아니라 누구를 통해서 보낼 지도 미리 준비하신 것입니다.
남모르게 파혼하려는 요셉
하나님은 다윗의 수많은 자손 중에 목수의 일을 하면서 율법에 순종할 뿐만 아니라 의로운 사람이었던 요셉을 택하셔서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만약 요셉이 배신감과 분노 때문에 마리아를 공개적으로 버렸다면 마리아는 돌로 쳐 죽임을 당할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마리아가 임신한 사실을 모른척하고 받아들이면 그 모든 수치는 요셉이 담당해야만 했습니다. 의로운 사람 요셉은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요. 요셉은 결정하기까지 세단계 과정을 거칩니다. 첫째, 마리아를 보호하기 위해 남모르게 파혼하려고 합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마리아가 사람들 앞에 수치를 당하게 될까 봐 남모르게 파혼하려 했습니다”(19절). 요셉이 마리아와 파혼하려고 한 것을 보면 처음에는 요셉도 마리아를 믿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마리아를 믿지 못해 파혼하려고 했지만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남모르게 파혼하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그런데 결혼하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임신하게 된 사실이 알려졌다고 했습니다”(18절). 마리아가 성령의 능력으로 임신했다는 소식이 마을에 알려졌기 때문에 남모르게 파혼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요셉은 마리아를 보호하기 위해 고향을 떠날 결심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요셉의 신중하고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요셉이 배신감과 분노에 차 자신의 마음을 공개적으로 말하면 마리아가 자신을 아프게 한 복수는 하겠지만 요셉은 마리아를 사랑했고 신중했기 때문에 마리아의 비밀을 지켜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요셉을 메시야의 육신의 아버지로 선택하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선택하신 요셉이 신중하지 못하고 쉽게 분노했다면 마리아와 아기 예수님은 심각한 위험에 처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중하고 배려있는 남자 요셉을 택해 마리아와 아기 예수님을 보호하셨습니다.
요셉의 입장에서는 최선의 결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최선위에 하나님의 최선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딜레마나 위기에 처했을 때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최선이라는 결정도, 여러 사람들이 지혜를 모아서 내놓은 대안도 하나님의 판단보다 뛰어 날수는 없습니다. 나의 최선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하나님의 결정을 기대하며 살아가야합니다. 요셉의 최선은 남모르게 파혼하는 것이었지만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그것 이상이었습니다.
명령에 순종하는 신앙
둘째, 요셉은 주저하지 않고 마리아를 받아들였습니다. “요셉이 이런 생각을 할 때에 주의 천사가 꿈에 나타나 말했습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네 아내로 맞아라. 마리아가 가진 아기는 성령으로 임신된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예수가 그의 백성을 그들의 죄로부터 구원할 것이다’”(20~21절).잠에서 깬 요셉은 천사가 명령한 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았습니다.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평소에 율법에 순종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살았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순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율법에 순종하지 않았던 사람에게 계시가 주어진다고 해서 순종하겠습니까. 못합니다.
여러분, 위기 상황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 이유를 아십니까. 평소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훈련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위기가 닥치면 말씀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살피려고 해도 음성은 쉽게 들리지 않습니다. 평소에 말씀과 친숙하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사람만이 위기가 닥쳤을 때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순종은 천사가 와서 소식을 전한다고 해도 갑자기 되는 것이 아닙니다. 평소에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며 경건한 삶을 사는 사람이 순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요셉에게 이러한 신앙이 없었다면 천사의 소식은 사라져버린 꿈이 되었을 것입니다. 배신감과 분노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과 계시를 듣지 못했다면 요셉은 마리아를 버렸을 것입니다.
내려놓음 … 용기 있는 믿음
용기가 있는 믿음은 어떤 모습입니까. 자신의 감정보다 하나님의 뜻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용기 있는 믿음은 의심도 뛰어넘어야합니다. 요셉이 마리아에게 가진 모든 의심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계시에 순종하는 것이 용기 있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요셉의 의심을 이해했습니다. 요셉의 감정을 이해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서둘러 천사를 보내신 것입니다. 요셉은 자신의 감정과 의심을 내려놓았습니다. 또한 앞으로 자신이 당하게 될 수치도 감당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요셉이 당하게 될 수치는 사람들의 소문을 참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이 그 수치를 감당해냄으로써 예수님이 출생할 수 있었습니다. 요셉이 이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진정한 용기였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수 있었던 것은 믿음의 사람 요셉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요셉 덕분에 이 세상에 안전하게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요셉이 얼마나 멋진 남자입니까. 우리의 믿음에도 요셉처럼 진정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용기 없는 믿음은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 자신의 감정을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 자신의 의심을 버릴 수 있는 용기, 자신이 겪을 수치나 오해를 감당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요셉과 마리아의 희생
셋째, 요셉은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때까지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았습니다. 학자들은 당시 요셉의 나이를 20세 전후로 추측합니다. 청년 요셉이 자기 절제로 예수님을 맞이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요셉과 마리아는 부모로써 예수님을 책임 있게 보호했습니다. 사실 요셉이 생각했던 신혼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을 것입니다. 요셉은 만삭인 마리아를 데리고 베들레헴으로 가야만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하고, 만삭의 몸으로 베들레헴으로 갔고, 헤롯의 명령을 피해 도망가는 여정이 매우 힘들었을 것입니다. 마리아도 힘들었겠지만 옆에서 챙겨주는 요셉이 더 힘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난 직후 천사가 와서 헤롯이 아이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으니 빨리 도망가라는 계시를 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새벽에 짐을 싸 갓 태어난 예수님을 데리고 애굽까지 갔습니다. 오늘날처럼 이동수단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애굽에서는 살아본 적 없었던 요셉과 마리아는 그곳에서 2년 동안 이민생활을 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혈혈단신으로 애굽에 와서 예수님을 키웠습니다.
이 땅에서 하늘을 사는 삶
요셉이 직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나사렛에 살았다면 얼마나 행복하고 달콤한 신혼생활을 보냈을까요. 그런데 지금 상황은 요셉이 꿈꾸던 신혼생활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마리아에게 잉태시킴으로 인해서 요셉은 자신이 꿈꿨던 신혼생활을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신실하게 마리아를 보호했고, 예수님을 양육했습니다. 예수님은 요셉을 본받아 목수일과 율법을 잘 아는 신실한 사람으로 양육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요셉처럼 용기 있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의 비난과 오해를 뛰어넘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감정과 의심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줄 아는 믿음이 생길 때 예수 그리스도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증거 되는 일에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내가 네게 명령하지 않았느냐? 강하고 담대하여라. 두려워하지 말고 낙심하지 마라. 네가 어디를 가든 여호와 네 하나님이 너와 함께할 것이다”(수 1:9).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당부한 담대한 용기가 무엇일까요. 담대한 용기는 싸우는 용기가 아닙니다. 바로 율법에 기록된 것을 지키는 용기입니다. 이 땅에서 하늘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손해를 보더라도, 오해를 받더라도, 수치를 겪더라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과 계시 앞에 순종하는 용기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요셉이 맞이한 크리스마스는 용기 있는 크리스마스였습니다. 이 시대에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우리도 요셉의 용기 있는 믿음을 본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데 쓰임 받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예수님을 육신의 아버지로 맞이했던 요셉의 믿음을 보았습니다.
우리에게도 삶속에서 하나님의 뜻과 계시 앞에 순종할 수 있는,용기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때로는 감정이 용납하지 못할지라도, 이해되지 않는 일이 있더라도,
사람들이 오해할지라도 하나님의 뜻 앞에 순종하며 내려놓는 용기를 주옵소서.
이 시대의 모든 남성들이 요셉과 같이 의로운 남편과 아버지가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뤄가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일러스트 윤종은 janehom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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