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이재훈목사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요한복음 6:11-13)

새벽지기1 2017. 6. 19. 06:51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기적이 얼마나 많은지를 헤아려보십시오. 배부름의 축복 속에  교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현실감각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병이어의 축복 속에서 아름다운 절제와 경건한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지난 한해를 돌아보면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시간을 얼마나 많이 버렸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일부를 얼마나 많이 버려졌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엄청난 가능성과 잠재력을 얼마나 많이 버려졌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이사를 할 때를 생각해보십시오. 버릴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당시에는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샀지만 쓰지 않는 물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또한 한국의 음식문화에서 고쳐야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버려지는 음식물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많은 반찬이 버려지는 것을 보면서 아쉽다는 생각을 한 적이 많습니다. 이렇듯 사람들에게는 버려지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어느 것도 버리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가을에 낙엽이 떨어지면 치우느라 고생할 생각이 먼저 떠올라 낙엽을 쓰레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낙엽을 그대로 두면 거름이 됩니다. 눈이  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이 오는 모습은 아름답지만 군인들에게 눈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쓰레기입니다. 눈은 녹으면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생수가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만드신 것 중에는 어느 것 하나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인생도 하나님이 만드신 것처럼 아무 것도 버릴 것이 없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일의 우선순위 


오늘 말씀은 오병이어 기적이야기입니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오병이어 기적이야기는 예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많은 사람이 자기에게로 몰려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빵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요 6:5).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이 무척 당황했습니다. 모인 사람이 오천 명이라는 것은 엄청난 숫자입니다. 당시에는 남성들의 숫자만 세었기 때문에 여인과 자녀들까지 합하면 오천 명을 훨씬 넘는 인파가 모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먹일지를 고민하지 않고 빵을 어디에서 살지를 빌립에게 질문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빌립에게 던진 질문은 그를 시험하기 위한 말씀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빌립은 벳세대 지역사람으로 계산이 빠르고 현실적이었습니다. 아마도 빌립은 예수님에게 오천 명에게 빵을 먹이는 데는 엄청난 비용이 들기 때문에 현실적이지 않다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주목해 보십시오. 예수님이 빌립에게 던진 질문은 오천 명의 사람들을 먹일 빵을 구입하는데 얼마의 비용이 필요한지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빌립에게 던진 질문은 어디에서 빵을 살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빌립은 질문의 요지에서 벗어난 대답을 했습니다. 여러분, 빌립의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에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먹이는데 얼마가 들지에 대한 생각을 먼저 한 것입니다. 사실 빌립의 대답은 현실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해야 하는 일인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 다음이 ‘얼마가 드는가’가 중요합니다. 


사람들을 앉히는 예수님

 

빌립은 현실성이 있었지만 믿음이 부족했습니다. 지식적인 판단에서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지만 믿음에 있어서는 낮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습니다. 마가복음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에 대해 기록할 때 예수님이 먹을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찾아보라고 했다고 했습니다. 안드레가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한 어린아이의 오병이어를 가지고 예수님께 왔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예수님 앞에 올려드리는 순종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믿음이 부족해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두 번째 말씀을 하십니다. 이 두 번째 말씀은 더욱 큰 긴장을 일으키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을 모두 앉히라.’ 그곳은 넓은 풀밭이었는데, 남자들이 둘러앉으니 5,000명쯤 됐습니다”(요 6:10). 예수님은 사람들을 모두 앉히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더 당황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얼마나 자신감이 넘칩니까. 빵을 어디서 살 것인지에 대한 대답이 더이상 필요가 없었습니다. 제자들이 기대했던 말씀은 어떤 말씀이었을까요. 사람들을 돌려보내라는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들을 모두 앉히라고 했습니다.

 

배부름이 가져 오는 영적 위험

 

그때 예수님이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기도하고 오병이어를 앉은 사람에게 나눠주기 시작했습니다. “예수께서는 빵을 들고 감사기도를 드리신 후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원하는 만큼씩 나눠 주셨습니다. 물고기를 가지고도 똑같이 하셨습니다”(11절).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원하는 만큼 나눠줬습니다. 나누고 또 나눠도 기적은 계속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배고픈 사람들이 원하는 만큼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배고픈 이들이 배불리 먹는 것을 경험하도록 하게 해주셨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병이어 사건을 여기까지만 묵상합니다. 배고픔이 해결되었고, 배고픈 사람들이 풍성히 빵과 물고기를 먹은 기적이 나타났기 때문에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묵상을 끝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병이어 사건에 대해 세 번째 하신 말씀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들이 모두 배불리 먹은 뒤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남은 것은 하나도 버리지 말고 모아 두라’”(12절).예수님은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난 이후에 여기저기 먹다 남은 빵과 물고기들이 널려져 있는 것을 보시고 버려지는 음식들이 하나도 없도록 모아두라는 말씀입니다. 먹다 남은 음식을 싸가는 것은 중요한 습관입니다. 그런데 조금 전에 오병이어를 가지고 엄청난 기적을 일으키신 예수님과 지금의 예수님의 모습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또다시 먹을 것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분이 남은 음식을 모아두라는 것이 왠지 어색해보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을 먹인 것 이상의 위대함이 먹고 남은 음식이 버려지지 않게 모아두라는 말씀 속에서 드러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 배부름으로 인해 영적인 긴장감을 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은 배부름이 가져오는 영적 위험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배불리 먹게 되면 영적 긴장감이 느슨해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교만을 부르는 ‘배부름’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에서 마지막 열매가 절제의 열매입니다. 원 없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고 축복입니다. 그러나 배불리 먹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이후에 영적 긴장감을 잃어버린 사건들이 생겼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장소는 에덴동산이었습니다. 그곳은 배고픔의 장소가 아니라 배부름의 장소였습니다. 무엇이든지 먹을 수 있어 배고픔을 채울 수 있는 축복의 동산에서 타락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외에도 성경은 우리에게 배부름 이후의 영적 위험에 대해 여러 번 경고를 했습니다. “너희가 채우지 않은 여러 종류의 좋은 것들로 가득 찬 집들과 너희가 파지 않은 우물과 너희가 심지 않은 포도나무와 올리브 나무가 있는 땅에서 너희가 먹고 배부를 때 스스로 삼가서 너희를 이집트에서, 그 종살이하던 땅에서 이끌어 내신 여호와를 잊지 않도록 하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분만을 섬기고 그 이름을 두고 맹세하라”(신6:11~13). "내가 광야에서, 그 가뭄의 땅에서 너를 알았다. 내가 그들을 먹이자 배가 불렀고 그들이 배가 부르자 교만해졌다. 그래서 그들이 나를 잊어버렸다"(호 13:5~6). 배부름은 교만을 부릅니다. 배고픔이 악을 부르듯이 배부름도 악을 부릅니다. 배부름의 악은 교만입이다. 교만은 영적 긴장을 잃어버리고 겸손을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만듭니다. 배부름은 그만큼 영적 위험입니다.

 

영적 긴장감을 잃지 마라

 

예수님이 베풀어주신 기적으로 배부름을 경험한 사람들의 반응이 요한복음 6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반응이 어땠습니까. 그들이 배부름을 통해서 예수님을 올바로 알게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만 다녀도 굶어죽지 않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언제든지 필요할 때마다 기적을 베풀어주시기 때문에 그가 왕이 되면 자신들이 굶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자신들의 목적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라다닌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들을 피하셨습니다. 그들은 끈질기게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들과 예수님이 가버나움에서 만났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까닭은 표적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먹고 배가 불렀기 때문이다’”(요 6:26). 예수님은 끈질기게 자신을 쫓아다니는 그들의 목적이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고 그들을 꾸짖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배부름이 가져온 영적 위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배부르게 먹는 것을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 긴장감을 잃어버리면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배부름을 갈망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절제의 영성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영적 교만과 영적 긴장감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버리지는 음식이 없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축복 


둘째, 하나님이 베푸신 기적 속에서 현실감각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만드신 기적은 빵입니다. 오병이어로 빵과 물고기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는 버려지는 것이 없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남은 음식을 버리는 못하게 한 이유는 물고기와 빵이 썩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주신 물고기와 빵은 환상속의 음식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남은 음식을 버리지 말고 모으라고 하신 이유는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기적이 우리의 현실을 무너뜨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일으키신 모든 기적은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빵을 빵으로 만드셨고, 물고기를 물고기로 만드셨습니다. 사탄이 광야에서 예수님을 유혹할 때 ‘이 돌을 빵으로 만들어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연법칙을 깨드리는 것은 기적이 아니기 때문에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처녀인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셨습니다.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기적이고 하나님의 개입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마리아가 잉태한 다음날 출생하지 않으셨습니다. 한 여인의 몸 안에서 생명이 자라 출산하는 자연적인 출산의 과정을 모두 거치셨습니다. 알을 깨고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이 태어나는 것과 동일하게 사람의 몸에서 출생하는 모든 과정을 겪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일으키는 기적은 자연의 법칙을 깨뜨리지 않습니다. 자연도 하나님이 만든 질서이기 때문입니다. 기적과 자연은 충돌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만드신 빵도 버려두면 썩습니다. 그들은 버려지는 음식들을 주워 담으면서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현실감각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그들을 다시 현실 속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심지 않고 거둔 축복입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우리가 심지 않았지만 거두게 하시는 축복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심지 않았는데 주시는 축복과 은혜는 거의 없습니다. 정말 특별한 경우에만 주십니다. 아마도 이 축복이 매우 위험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용하는 법칙은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주워 담아 다시 그것을 양식으로 삼는 것이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심은 대로 거두는 법칙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도 기적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심은 대로 거두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이 너무 악해서 심어도 거두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심지 않고 거둔 것을 복이라고 말합니다. 심지 않고 거둔 것은 분명 축복이지만 심지 않고 거두는 축복을 기대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축복으로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겸손하게 추구해야하는 복은 심지 않은데서 거두는 복이 아니라 심은 대로 거두는 복입니다. 땀 흘려 일하는 것으로 얻은 자연의 법칙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축복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나 배부름을 경험한 사람들이 현실 감각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남은 음식들을 주어 담도록 하셨습니다.

 

버려지는 것이 없게 하라

 

셋째, 남은 음식들의 가능성을 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남은 것을 모아 보니 보리빵 다섯 개로 먹고 남은 것이 12바구니에 가득 찼습니다”(13절). 예수님이 베푸신 기적으로 남아있는 음식이 12광주리나 되었습니다. 그들이 경험한 이 축복은 오병이어로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오병이어 한 바구니만 있어도 감사하겠다던 사람들의 마음은 온데간데 없고 12바구니나 되는 음식이 남아 있었는데도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남은 음식 12바구니의 가능성을 버렸습니다. 이것 또한 기적이 가져온 위험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이렇게 쉽게 바뀝니다. 오병이어의 가능성을 하나님께 드렸을 때 수천 명을 먹이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만약 12바구니를 하나님께 드렸다면 얼마나 더 큰 축복이 있었겠습니까.


지난 주부터 장롱 속에 입지 않는 외투를 모으기로 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외투를 가져오셨습니다. 그 외투들은 모두 입을 수 있습니다. 그 외투들이 집안에 있으면 쓸모없는 것들이지만 누군가에게 전해지면 생명을 보호하는 오병이어의 기적이 됩니다. 삶속에 버려지는 것들이 엄청난 잠재력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구 사회에서 배출되는 음식물 쓰레기만 모아도 지구상에 굶주린 사람이 없어진다고 합니다. 여러분, 버려진 것이 없게 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면 세금을 걷지 않아도 복지국가가 될 수 있습니다. 버려지는 것이 없게 하라는 말씀에 불순종하기 때문에 불균형이 일어나고, 기근과 아픔이 세상이 존재합니다.

 

아름다운 절제와 경건한 삶

 

우리가 버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 드려지면 엄청난 가능성이 됩니다. 12바구니의 가능성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여러분, 한해를 보내면서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기적이 얼마나 많은지를 헤아려보십시오. 모든 것이 기적이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었고, 심은 대로 거두는 기적이었습니다. 기적과 축복 속에서 버려지는 것이 없기를 바랍니다. 배부름의 축복 속에 하나님에 대한 영적 긴장감을 잃어버리고 교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놀라운 기적과 축복 속에서 현실감각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의 법칙을 잊어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서 버려지는 것들이 없어짐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기적의 통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에게 전달되었을 때 또 다른 기적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무심코 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작은 것일지라도 하나님께 올려 드림으로 또 다른 기적을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의 가능성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남은 조각을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는 말씀을 통해 날마다 오병이어의 축복 속에서 아름다운 절제와 경건한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읽고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무리들처럼

우리들 또한 하나님이 베푸신 기적과 축복, 배부름 속에 교만하지 않았는지 돌이켜 보며 회개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낮은 마음, 경건한 마음, 절제된 마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버려지는 것이 없는 인생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여, 우리에게 버려지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 드려지고

우리 이웃에게 나눠줄 때 얼마나 큰 축복의 가능성이 있는지를 알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일러스트 윤종은 janehom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