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이재훈목사

내게로 돌아오라 (스가랴 1:1-6)

새벽지기1 2017. 5. 21. 07:04


백성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로,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한 백성으로 변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목적은 회개를 통해 이룰 수 있습니다.

 

청교도들은 천국으로 날아가기 위해서는 두 개의 날개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첫 번째 날개는 믿음의 날개입니다. 믿음은 은혜의 선물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셔서 우리에게 믿음의 씨앗을 심어주셨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두 번째 날개는 회개의 날개입니다. 회개도 은혜의 선물입니다. 믿음의 씨앗이 마음  속에 들어올 때 회개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회개는 하나님의 은혜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회개하라는 명령이 있는 것입니다. 회개는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되지만 회개하라는 명령에 순종하려는 결단과 의지, 그리고 행함이 있어야합니다. 믿음은 회개하게 만들고, 회개는 믿음을 더욱 거룩하고 견고하게 합니다. 크리스천들은 날마다 믿음과 회개의 두 날개를 경험해야합니다.

 

회개할수록 기쁨 샘솟아

 

한국 교회가 믿음을 강조한 것에 비해 회개를 강조하지 않았다는 반성이 있습니다. 지난 주일설교에서 주선애 교수님도 한국 교회가 회개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무너지고 있다고 지적하셨습니다. 회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이번 주부터 스가랴서를 강해하는 이유도 회개함으로 새로워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스가랴서의 주제는 회개와 회복입니다. 죄에 대한 지적과 심판에 대한 경고를 듣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죄에 대한 회개 없이는 진정한 기쁨을 맛볼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회개를 강조하면 기쁨을 잃어버린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회개할수록 마음속에 더 깊은 기쁨이 샘솟아 오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죄책감으로 인해 진정한 기쁨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날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 진정한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회개를 강조하는 예언서의 말씀을 사랑할 필요가 있는데 예언서 말씀을 읽는 것을 불편해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언서의 말씀을 사랑하고 예언서의 말씀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알게 된다면 더욱 기쁘고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성전에 대한 백성들의 사랑

 

스가랴는 이스라엘의 포로 귀환 시대에 사역했던 선지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 번에 걸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고, 세 번에 걸쳐 귀환했습니다. 첫 번째 귀환은 주전 538년에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의 명령으로 귀환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정치 지도자가 스룹바벨이라는 지도자였고 대제사장은 여호수아였습니다. 이 두 사람의 이름이 스가랴서에 종종 등장합니다. 두 번째 귀환은 주전 458년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 왕 때 있었습니다. 세 번째 귀환은  주전 444년 때에 성벽을 재건한 지도자 느헤미야의 인도로 귀환이 이루어집니다.

스가랴는 어린 시절에 귀환한 젊은 선지자입니다. 이사야서에 보면 주전 538년에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칙령을 발표했을 때 고레스 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포로로 잡혀 왔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되돌려 보내면서 성전을 재건할 수 있는 금품을 제공하고, 성전재건에 필요한 물품을 돌려주면서 성전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랑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강제적인 명령이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모든 백성들이 귀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벨론에 자리를 잡고 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에스라서에 보면 귀환한 사람들이 종까지 포함해서 49,697명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람들입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백성들이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성전을 재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성전의 기초를 세웠습니다. 연세가 많은 분들은 과거 솔로몬의 영광스러운 성전과 비교해 지금의 성전이 너무나 초라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한편으로 초라하지만 성전을 재건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동역자 학개와 스가랴

 

그런데  사마리아인들과 주변 민족들은 성전을 재건하는 것을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페르시아 왕에게 반역을 꾀하고 있다고 거짓 상소를 올리기도 했고 위협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위협 앞에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릎을 꿇고 성전 재건을 중단했습니다. 그 후로 약 16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예언자 학개와 잇도의 자손인 예언자 스가랴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사는 유다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언했습니다. 그러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가 일어나 예루살렘 하나님의 집을 다시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예언자들이 그들과 함께하며 도왔습니다”(스 5:1~2). 스가랴와 학개는 동역자였습니다. 16년 동안 방치되었던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도록 하는 것이 이들의 사명이었습니다. 연대를 계산해보면 학개가 먼저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학개가 두 번 메시지를 전한 다음 스가랴가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또 스가랴가 메시지를 전하고 학개 선지자가 두 번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렇게 몇 달 간격으로 학개와 스가랴는  함께 동역을 했습니다. 학개의 메시지는 짧고 단도직입적이었습니다. 그는 백성들을 책망했습니다. 스가랴는 학개와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스가랴서에는 성전 재건과 이스라엘의 회복의 모습을 아름다운 환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예언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로하고 격려했습니다. 그렇게 그들을 회복시켰습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뜻

 

여러분, 사람을 회개하게 만드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책망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격려를 통해 스스로 뉘우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학개서의 메시지가 남성적이고 부성적(父性的)이라면 스가랴서의 메시지는 여성적이고 모성적(母性的)인 메시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스가랴서에는 학개서에 나와 있지 않는 메시지가 있는데 그 메시지는 성전을 재건하는 것 자체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전이 완성되면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백성들이 있을까봐 하나님은 스가랴를 통해 자신의 뜻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보이지 않는 성전 즉,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의미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학개와 스가랴의 협동 사역으로 16년 동안 방치되었던 성전이 재건되었습니다.


회개를 통해 이뤄지는 목적


“그리하여 유다 장로들은 예언자 학개와 잇도의 자손 스가랴의 예언에 힘입어 건축을 성공적으로 진행해 나갔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페르시아 왕 고레스, 다리오, 아닥사스다의 칙령에 따라 드디어 성전을 완공했습니다. 성전이 완공된 것은 다리오 왕 6년 아달 월 3일이었습니다” (스 6:14~15). 학개와 스가랴의 사역을 통해서 사명이 완성되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성전 재건 사업이었지만 하나님의 깊은 뜻은 보이지 않은 하나님의 성전을 완공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한 백성으로 변화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회개를 통해서 이뤄지는 것이었습니다.

스가랴가 말씀을 전한 사람들은 포로에서 귀환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바벨론에 남아 있어도 문제가 없었지만 돌아오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아마도 바벨론에 남아있던 사람들보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는 열망이 있었기 때문에 예루살렘에 도착하자마자 성전 재건하는 일을 가장 우선시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외부의 방해가 시작되자 그들은 우선순위를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열정은 점점 식어갔습니다. 첫사랑이 식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우선순위가 바뀌어 하나님은 그들의 삶에서 점점 밀려나가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식어가는 백성들

 

여러분,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우선순위가 바뀐 채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 재건을 중단하고 하나님을 우선순위에서 제외시키고 16년이라는 시간을 흘려보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믿음도 방치된 채로 오랜 시간이 흘러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믿음생활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매너리즘입니다. 매너리즘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빠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슴이 식을 때 생깁니다. 

매너리즘에 빠지면 발생하는 두 가지 현상이 있습니다. 첫째 착각과 망상에 빠집니다. 종교적 의식과 행사에 참여하면 모든 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의 마음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지 않거나 진심이 담겨있지 않으면 하나님은 예배를 받지 않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망상뿐만 아니라 반항까지 합니다. 말라기서에 보면 하나님께 반항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우리가 언제 하나님을 괴롭게 했습니까?”이 말은 참 뻔뻔합니다. 이렇듯 회개가 없으면 종교적 망상과 반항에 까지 이르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귀환할 때 그들의 최우선 순위는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러나 점차 하나님이 그들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게 되면서 그들의 마음은 식기 시작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친구로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호와의 집을 지을 때가 되지 않았다’라고 이 백성들이 말한다.”(학 1:2) 우리는 ‘때가 되지 않았다’는 말을 얼마나 자주 쓰는지 모릅니다. ‘언젠가 나의 믿음도 좋아질 때가 있겠지’, ‘아직 때가 아니야’ 이런 막연한 기대로는 절대 믿음이 좋아지지 않습니다. 다른 모든 계획들은 신속하고 철저하게 실행하면서 유독 믿음에 관해서는 실천하지 않고 미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로 이것이 회개가 필요하다는 증거입니다.

학개서는 말씀을 통해 강한 책망을 하지만 스가랴서에서는 “내게로 돌아오라” 고 말씀하십니다. 똑같은 책망이고, 똑같은 도전이지만 스가랴에 나오는 말씀이 얼마나 사랑이 가득한지 모릅니다. 내게 돌아오라는 말씀은 받아주겠다는 의미입니다. 은혜의 초청인 것입니다. 똑같은 회개지만 돌아오면 받아줄 준비가 되어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납니다.

“다리오 왕이 다스린 지 2년 여덟째 달에 여호와께서 잇도의 손자이며 베레갸의 아들인 예언자 스가랴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 여호와가 너희 조상들에게 몹시 화가 났다.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말하여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내게 돌아오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다. ‘그러면 내가 너희에게 돌아갈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한다” (1~3절).

 

하나님께서 돌아오라고 요청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백성들을 찾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이 만군의 여호와를 강조하는 이유도 선택사항이 아니라  반드시 행해야 되는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만군의 여호와와 적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만군의 여호와와 대적하고 싶습니까. 아니면 친구가 되고 싶습니까. 이 명령에 순종해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았든 지간에 만군의 여호와의 친구로 맞이해 주십니다.


음성 듣고 관계회복 경험

내게로 돌아오라는 말씀은 전혀 새로운 메시지가 아닙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수많은 예언자들을 통해서 수없이 반복되었던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듣지 않았습니다. 

“너희는 너희 조상들을 본받지 말라. 일찍이 예언자들이 너희 조상들에게 ‘부디 너희는 악한 길과 악한 행위에서 돌아오라’고 하시는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을 외쳐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내 말을 듣지도 않았고 귀 기울이지도 않았다. 나 여호와가 하는 말이다” (4절).

회개하기 어려운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듣지 않는 사람입니다. 귀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은 ‘회개할 일이 없어’고 생각합니다. 살아있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항상 귀 기울여 듣고, 마음을 열고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매너리즘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은 회개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고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바로 그런 사람들이 회개해야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금속을 녹여서 제련을 해야 되는데 금속이 녹지 않는다면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말씀과 성령 안에 있다면서, 예배 가운데 있다면서 마음이 녹지 않는다면  그만큼 마음이 단단해져 있는 것입니다. 회개가 필요합니다.


두 번째 회개가 어려운 사람은 너무 많은 죄를 지어서 말씀과 성령에 거슬리고 양심의 소리에 거역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양심이 무뎌져 있습니다.  “빛을 거역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들은 그 길을 알지 못하고 그 길에 머물러 있지도 않는다” (욥 24:13). 빛을 거역하는 사람들은 말씀의 음성, 성령의 음성, 자신의 양심의 소리를 거역하고 죄를 반복해서 짓기 때문에 회개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에 성령이 임하면 ‘내게로 돌아오라’는 말씀에 귀 기울이고,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돌같이 단단하게 굳었던 마음이 부드럽게 풀립니다. 회개는 어렵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내게로 돌아오라는 음성을 생명의 음성으로 듣고 주님 앞에 나오고자 한다면 돌같이 단단한 마음이 온유해 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다시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는 관계가 될 줄로 믿습니다.

 

내게로 돌아오라!

 

회개의 여섯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첫째, 죄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죄를 슬퍼해야합니다. 세 번째는 죄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넷째 죄를 부끄러워하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는 죄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여섯 번째는 죄에서 돌이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말하여라. ‘내 삶을 두고 맹세한다. 나는 악인의 죽음보다는 오히려 그들이 자기의 행동으로부터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한다. 돌이키라! 너희의 악한 행동으로부터 떠나라!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왜 죽으려 하느냐? 주 여호와의 말이다’” (겔 33:11). 하나님은 우리가 심판받아 흘리는 피보다 눈물을 원하십니다. 우리가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을 원하십니다. 우리가 만약 돌아가면 하나님도 우리에게 돌아오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돌아오시면 하나님의 천군천사가 우리 편이 될 것입니다. 그들이 모든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시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됩니다. 심지어 고난조차도 축복이 될 것입니다. 때로는 건강해질

수도 있습니다. 어떤 형편에서도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얼굴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예정된 진노가 사라질 것입니다. “너희 조상이 어디 있느냐? 예언자들이 영원히 사느냐? 내가 내 말과 내 규례들을 너희 조상들이 듣도록 내 종 예언자들에게 말하라고 명령하지 않았느냐? 그러나 그들은 듣지 않고서 이제야 돌이켜 보며 이렇게 말한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 길과 우리 행위를 따라 우리에게 하기로 작정하신 그대로 우리에게 이루셨다’” (5~6절).


여러분, ‘돌이켜 보니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이뤄지는구나’라는 후회가 우리 삶에 나타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금 바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고 오래 끌면 끌수록 위험합니다. 초목은 쉽게 뽑히지만 뿌리가 깊으면 깊을수록 뽑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뿌리가 깊게 내리기 전에 죄악의 초목단계에서 뿌리를 뽑아 버리십시오. 얼음도 오래 얼릴수록 잘 녹지 않습니다. 깨지지도 않습니다. 죄 가운데 오래 얼어 붙어있으면 깨지지 않는 심령이 됩니다. 속히 회개할수록 빨리 회복될 수 있고 책임을 적게 지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네가 너희에게 돌아갈 것이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죄로부터 돌이켜 하나님 앞에 영광 올려 드리는  삶이되기를 바랍니다./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