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어거스틴

[어거스틴 참회록57] 히에리우스에게 바치다

새벽지기1 2017. 5. 3. 22:25


ugustinus 참회록 - 제4권 우울한 고백 

 


14. 히에리우스에게 바치다.

주님이시여! 나의 하나님이시여!
내가 로마시의 수사학자 히에리우스에게 그 책을 바친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나는 그의 얼굴도 모르면서
학식이 뛰어나다는 소문만 듣고 그 사람을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그를 좋아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남들이 그를 매우 칭송했기 때문이며
놀라운 일은 그가 시리아 사람이면서도 처음에는 그리스어 웅변술에 능통하더니
그 후에는 라틴어 웅변술에도 능통했을 뿐만 아니라
철학에 대해서도 여간 조예가 깊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그는 대단히 칭송을 받는 인물이었으며
처음 보는 사람에게조차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사랑은 칭찬하는 사람의 입에서, 듣는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간 것일까요?
결코 그런 일은 없으며 오직 사랑이 사랑에 불을 붙였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열렬해지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칭찬하는 사람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믿게 될때
즉 칭찬하는 사람이 사랑을 가지고 극구 찬양할 때
그 사람은 진정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당시 나는 그처럼 사람들의 판단에 의해서 사람을 사랑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시여!
당신의 판단에 의해서 사랑했더라면 아무런 잘못도 범하지 않았을텐데
사람의 판단에 따라 사람으르 사랑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그를 유명한 기수나
값싼 박수갈채를 받는 검투사처럼 칭찬하지 않고 다름 방법으로,
즉 나도 그와 같은 칭찬을 받고 싶었던 방식으로 칭찬했는데
그것은 대체 무슨 까닭이었을까요?
사실 나역시 배우를 칭찬하고 사랑하지만
나 자신은 그런 따위의 칭찬과 사랑은 받고 싶지 않습니다.
차라리 그렇게 유명해지기 보다는 은둔생활이 낫고
그렇게 사랑을 받기 보다는 차라리 미움을 받는 편이 훨씬 더 좋을 것입니다.
동일한 영혼 안에 있으면서도
갖가지 색다를 사랑으로 분리되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또한 사람은 다 같은데 내가 남에게 있는 무엇을 사랑하고
나에게 있는 무엇을 차 버리고 싶도록 미워지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말(馬)이 되는 것이 사람에게 가능하다 해도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배우를 사랑하는 것이 그와 같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배우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인간이면서 나 자신이 싫어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서 사랑하는 것일까요?
인간은 실로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입니다.
주님이시여! 당신은 인간의 머리털의 수까지도 알고 계시어
당신 안에서는 무엇 하나 잃어버리는 것이 없으나
실상 그 머리털도 인간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에 비하면
훨씬 헤아리기가 쉬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수사학자는 나 자신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허영에 들떠서 바람 부는대로 떠돌고 있었지만
당신은 아무도 모르게 나를 다스리고 계셨습니다.
그러면 그를 사랑한 것은 그가 칭찬 받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라기보다는
칭찬하는 사람들이 그를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지금 나는 어떻게 알고 당신에게 고백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만약 같은 사람들이 그를 칭찬하지 않고 비난했다면
나는 그에게 열광하거나 감격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다르지 않았고 그사람도 다른 것이 아니었으며
다만 얘기하는 이들의 기분이 달라진 것뿐입니다.

확고한 진리에 의지하지 않는 약한 영혼은 그처럼 비참합니다.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의 가슴으로부터 말이 흘러나오면
약한 영혼은 이리 끌리고 저리 밀리다가
어느덧 그 빛이 흐려져서 진리를 볼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진리는 우리 앞에 있습니다.

나는 나의 논설과 연구가 그에게 알려지는 것을 대단한 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가 인정해 주었다면 열심이었을 것이고
반대로 인정하지 않았다면 당신에게 의지하지 못하여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바친 <아름다움의 조화에 대하여> 라는 책을
칭찬해주는 사람이 없어도 혼자 뒤적이며 기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