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순절묵상

사순절 묵상(1)

새벽지기1 2017. 3. 7. 07:06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5:20()-21)

 

우리는 앞으로 마흔 번에 걸쳐 사순절 묵상을 시도할 것이다. 교회력에 따라서 여러 성경 본문이 제시되는데, 그 가운데 한 구절이나 서너 구절을 택해서 묵상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오늘은 고후 5:20-21절이다.


하나님과 화목하라.’는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이 한 문장에서도 우리가 생각할 것은 많다. 일단 이것은 지금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지 않다는 걸 전제한다. 이것은 곧 우리가 생명으로부터 분리되었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이런 걸 실감하지 못하고 산다. 연봉과 건강과 가족 등의 조건이 갖추어지면 생명이 완성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조건이 우리에게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이런 조건들이 파괴되면 우리의 영혼도 크게 상처를 받는다. 그러나 이런 조건들은 생명 현상의 한 부분일 뿐이다. 부분만으로 생명의 총체가 저절로 완성되는 건 아니다. 예를 들자면 밥 고프지 않게 잘 먹으면 만족스럽기는 하지만 그 만족이 계속 유지되지 못한다. 그 외의 다른 것을 갈구한다. 다른 것이 채워지지 않으면 생명의 빈곤에 떨어지곤 한다.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려면 죄가 해결되어야 한다. 죄는 생명을 파괴하는 존재론적 세력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죄가 무엇일까? 이것은 단순히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행위를 가리키는 게 아니다. 자기 스스로 생명을 성취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하나님을 거부하는 생각과 행위다. 그런 생각과 행위는 우상숭배로 나타난다. 피조물을 신으로 높이는 것이 우상숭배다. 그게 사람들에게는 매력적이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사람이 남에게서 존경받으려고 얼마나 애를 쓰는지만 봐도 이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게 성취되면 만족해하고, 안 되면 불안해한다. 완전하게 존경받는 것도 사실은 불가능하다. 이런 일련의 생각과 행위는 자기 절대화다.


죄의 기원에 대한 창세기 기자의 설명은 소위 선악과 전승에 잘 나타나 있다. 뱀으로 상징되는 악이 이브를 유혹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이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에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3:5). 아담과 이브는 결국 선악과는 취한다. 그 동기는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이었다. 피조물이 창조자 역할을 하는 게 바로 타락이요, 죄다. 지금도 우리는 그런 유혹을 받고 있고, 반복해서 거기에 넘어간다. 자기를 높이려는 의지는 우리의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이런 의지가 요즘에는 오히려 최고의 가치로 선전되고 있다. 그 결과는 자기 파멸이다. 최선의 경우로 본다 하더라도 그것은 허무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죄는 어떻게 해결될 수 있을까? 우리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개인이 수양을 통해서 착하고 정의로운 사람이 되는 수준이나, 이 세상이 좀더 민주적으로 달라지는 수준이라면 우리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생명의 완성이라는 수준이라면 우리 능력 밖의 일이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만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해결의 길을 마련하셨다. 예수님을 우리를 대신해서 죄로 삼으시는 것이 바로 그 길이다. 우리를 대신해서 죄로 삼았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가리킨다. 당시에 십자가 처형은 가장 악독한 죄인에게 내려지는 형벌이었다. 예수님은 죄와 전혀 상관없는 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십자가에 처형당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의에 이르게 되었다. 죄가 우리의 능력을 넘어서는 존재론적 세력인 것처럼 의도 역시 우리의 능력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배타적 사건이다.


위의 설명은 기독교의 초보다. 세례 문답에서 나올만한 교리다. 그러나 그런 초보 교리를 실제로 이해하는 건 쉽지 않다. 더 많은 질문과 대답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지,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사실에 대한 근거는 무엇인지, 우리가 하나님의 의에 이르렀다는 증거는 무엇인지,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왜 여전히 죄를 짓는 것인지 등등,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기독교 교리는 창조와 구원과 교회와 종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들이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한 부분으로가 아니라 총체적으로 깨달을 때까지 구도적으로 공부하는 게 신앙의 세계에 이르는 최선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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