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생각해도 겸손을 미덕이라 칭송하는 것은 몸에 안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기 그지없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인간은 근본적으로 부분적인 존재요 일시적인 존재다.
너 없이는 존재하거나 생존할 수 없는 지극히 의존적인 존재요 불안정한 존재다.
자기 안에 자기 존재의 이유가 있지 않은 비주체적 존재다.
이뿐 아니다.
인간은 가장 중요한 창조자와의 관계를 저버림으로써 이런 인간됨마저도 잃어버렸다.
인간됨의 면류관인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고, 하나님을 대리하는 세계 통치자로서의 영광도 상실했다.
하나님께 받은 고결한 성품과 충성스러운 자질은 완전히 부패하였고, 이성 또한 깊은 어둠에 잠겨버렸다.
그 결과 인간의 앎은 근원적 앎에 이르지 못한 채 부분적이고 피상적인 앎에 머무르고 있다.
아니, 인간의 앎에는 거짓이 난무하고 왜곡된 것투성이다.
진실로 그렇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탄식이나(렘17:9),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는 바울 사도의 진술은(롬3:23)
인간됨의 근원 현실이 어떠한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이런 인간됨의 근원 현실에 비추어볼 때 겸손을 미덕이라 칭송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어 보인다.
지나치게 낭만적인 인간 이해라고 생각된다.
물론 사람에게 겸손처럼 어려운 건 없다.
심히 비루하고 삐뚤어진 자존심 하나로 버티는 인간이
자기를 낮추고 뒤에 세운다는 것은 죽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모방욕망과 인정욕구로 가득한 인간이 자기를 상대화하여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 배치한다는 것은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사실이다. 겸손은 누구나 취할 수 있는 삶의 양식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겸손을 미덕이라 칭송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
어거스틴의 말대로 겸손은 최고의 미덕인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겸손을 미덕이라 칭송하는 것은 지나치게 낭만적인 인간 이해라고 생각된다.
인간의 근원 현실을 정직하게 들여다보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인간은 근본적으로 부분적인 존재요 일시적인 존재다.
너 없이는 존재하거나 생존할 수 없는 지극히 의존적인 존재요 불안정한 존재다.
자기 안에 자기 존재의 이유가 있지 않은 비주체적 존재다.
이런 인간에게 겸손이 미덕일 수 있을까?
겸손이 미덕이 되려면 겸손하지 않더라도 자기 존재에 하등의 흠이 되지 않아야 하는데,
과연 인간이 겸손하지 않더라도 흠이 되지 않을까? 결코 아니다.
하나님은 겸손하지 않아도 흠이 되지 않지만, 인간은 겸손하지 않으면 즉각 흠이 된다.
그것도 커다란 흠이 된다.
때문에 겸손을 미덕이라고 칭송하는 것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기 그지없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겸손을 의무라고 하는 것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다.
겸손이 의무라면 겸손하라고 윽박질러도 이상하지 않아야 하는데,
겸손하라고 윽박지르는 것을 보면 매우 겸연쩍다.
마치 숨을 쉬라고 윽박지르는 것을 보는 것처럼.
정말이다. 숨을 쉬는 것이 의무가 아니듯 겸손도 의무가 아니다.
겸손은 미덕이나 의무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근원적인 어떤 것이다.
즉 인간됨의 토대요 조건이다. 인간됨의 기본 형식이다.
숨을 쉬는 것이 공기 중에 사는 포유류의 존재 형식이듯이 겸손은 인간의 존재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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