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강대식목사

질그릇에 가진 보배 (고후 4:7-11, 16-18)

새벽지기1 2017. 1. 4. 07:43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다고 말씀하신다.

보배는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질그릇은 누구인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다.

우리는 흙으로 만들어진 질그릇이다.

(창 3:9)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욥 34:5) 모든 육체가 다 함께 죽으며 사람은 흙으로 돌아가리라

 

우리는 영원한 세상을 향해 가는 순례자인 것을 기억하고 사는 것이 은혜롭다.

결국 흙으로 돌아갈 인생인데, 그리고는 심판이 기다리고 있는 인생인데,

우리는 인생에 너무 많은 기대를 걸고, 우리 자신들을 너무 혹사시키고 있다.

 

아웅다웅 하다가도 한번쯤 우리가 흙인 것을, 흙으로 돌아가고 만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아마 많은 것을 양보하고, 손에 쥔 것을 내려놓고 이웃과 나눌려고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사람들은 죽는 날까지도 자기가 흙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잊고 산다.

 

은혜롭게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셔서

때가 되니까 예수 믿는 믿음을 주시고 자녀 삼아주셨다.

그렇지만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연약한 질그릇이다.

그런데 그 안에 보배이신 예수를 모시고 가지게 하셨다.

 

예수님이 보배인 것을 가장 잘 표현하는 사도가 베드로이다.

(벧전 2:04-8)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돌이 예수님이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산 돌이신 예수님과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져야 한다고 하신다.

그를 믿는 자는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하신다.

그래서 믿는 우리에게는 그분이 보배이지만,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부딪치는 돌이 되고 걸려 넘어지는 바위가 된다고 하신다.

 

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라고 하신다.

이 보배로운 산 돌과 같이, 그리스도인은 신령한 집,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의식이 없다면,

세상 염려와 여러 걱정으로 온통 하루 하루를 속을 끓고 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의 많은 고난들을 보면, 그것을 염려하고 해결하라고 주신 것들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부르시는 신호들이다.

 

우리를 주리게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며 고난의 광야길을 걷게 하시는 것은

우리 마음에 있는 것들을 내려놓고, 이제 그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새기고

그 말씀을 따라 살게 하기 위함이라고 신명기는 강조하신다.

 


그래서 바울도 염려로 가득차 있는 성도들에게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한다.

빌 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고난의 해결도 중요하겠지만, 우리 구할 것은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고,

하나님의 평강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때가 되면 필요한 것을 주님은 채워주실 것이다.

 

예수님도 염려하지 말고 그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라고 하신다.

(마6:31-34)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우리 안에, 보배로운 산 돌,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 그것을 우리는 확증해야 한다.

(고후 13:0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우린 질그릇에 지나지 않지만 우리 안에는 보배이신 그리스도가 계신 것을 믿으라.

우리 영혼육의 중심에 보배이신 그리스도를 모신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이다.

질그릇 안에 이 보배를 가진 이유와 목적을 오늘 본문은 세 가지로 말씀하고 있다.

 

1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다.

 

우리 질그릇들은 능력이 있어 봤자 이다. 자랑해 봐야 도토리 키재기 하는 것 뿐이다.

심히 큰 능력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

우리 가진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 일 하는 것이 아니다.

 

삼년 반동안 예수님이 직접 훈련시킨 제자들에게도 그것으로 안된다고 하셨다.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받아야 한다고 하셨다.

받기까지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다.

 

성령을 구해서 능력을 받으라고 하셨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우리는 구하지를 않고 내 능력으로만 어떻게 해볼려고 안간 힘을 쓴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 바울은 삼층천까지 올라간 경험을 하였으나 그것을 자랑하지 않고

자신의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그것은 그가 약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온전해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고후 12:9-10)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약한 데서 온전하여진다는 것은 놀라운 신비이다.

믿음 없이는 받아들일 수 없는 진리이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고 온전하여지기 위해서는 우리는 약해져야 한다고 하신다.

 

그래서 우리에게 능욕과 궁핍과 곤고를 주셔서 약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한 고난과 환난이 올 때 기뻐하고 자랑하라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왜, 그 약한 지경에 처해 있을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온전해지고 강해진다는 것이다.

 

약할 때 곧 강함이라.

우리가 말씀을 통해 깨닫고 고난의 환경을 통해 체험하고 붙들어야 할 진리이다.

연약하고 고난을 겪고 있을 때 그렇게 하기란 쉽지 않지만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인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2 예수의 생명이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다.

 

우리 질그릇 안에 이 보배를 가진 것은,

예수의 생명이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신다.

우리 영혼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가 되었지만

아직 우리 죽을 몸에는 죄가 남아 있어 그것과 싸워 이겨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영으로써 우리 옛사람의 몸의 행실을 죽여가는 것이 곧 성화의 길이다.

날마다 내 몸을 쳐서 복종시키고 날마다 내 몸에 대해 죽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여러 형태의 고난을 주셔서 이 성화의 길을 가게 하신다.

 

위로와 격려로 힘을 기른 다음에는 하나님은 다음 단계로의 성숙을 위해서

예수의 죽음을 우리 몸에 짊어지게 하는 것이다.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지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예수를 위해 채워야 하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다.

그것이 자기 십자가를 매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다.

그로 인하여 우리가 약해질 그 때에 우리는 곧 강한 것이고,

우리의 죽을 몸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나타나는 것이다.

 

어렵지요? 그렇지만 참된 그리스도인이 가야하는 길은 이 길인 것을 주님은 말씀하신다.

생명의 길, 참으로 복된 길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문이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다고 하셨다.

 

(마 7:13-15)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거짓 선지자들을 조심해야 한다.

그들은 감언이설로 유혹하고 설득해서 사람들을 멸망의 길로 인도한다.

양의 옷을 입고 노략질 하는 이리인 것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을 통하여 참으로 복있는 사람은

심령이 가난해야 하고, 마음이 청결해야 하고, 죄에 대해서는 애통해야 하고,

고난 가운데서도 온유해야 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라 하셨다.

번영신학과 믿음신학을 말하는 거짓 선지자들의 가르침과는 얼마나 다른 진리의 말씀인가?

 

우리로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게 하시고,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우리 죽을 몸에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신다.

 

그래서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는다.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로 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

예수의 생명이 우리 죽을 몸에 나타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작업이기 때문에 그렇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주시는 방법은 이렇게 세상과 다르다.

바울은 죽을 것 같은 고난을 주신 것은 오직 하나님만 의뢰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고후1:8-10)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항상 예수의 죽음을 짊어지게 하시고,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지게 하셔도,

우리 질그릇 안에 계신 산 돌이신 보배,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의지하시라.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건지실 것이며 이후에도 건지실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 못할 시련을 주시지 않음을 믿으시기 바란다.

 

고난이 크면 위로도 크다.

그 끝을 알고 목적을 알면 고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다.

우리가 받을 영광을 바라보면 고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다.

 

생명은 얻고자 하면 잃고 잃고자 하면 얻는다.

죽으면 죽으리라 하면 죽지 않고 오히려 사는 길이 열린다.

그러나 살고자 염려하고 발버둥치면 칠수록 그만큼 더 깊은 고난의 늪으로 빠져들어간다.

 

3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게 하려 함이다.

 

산 돌이신 보배,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질그릇 안에 계신 것은

능력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다.

또한 예수의 생명이 우리 죽을 몸에 나타나게 하기 위함이다.

 

질그릇 안에 가진 보배의 능력으로

우리 죽을 몸에 나타난 예수의 생명으로

하나님은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신다고 약속하신다.

 

우리가 겪은 환난들과 고난들은 그에 비하면 잠시 받는 경한 것이라고 하신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

이 모든 것은 우리 죽을 몸에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고 크고 중한 영광을 이루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뭘로? 예수의 생명과 능력으로이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기 위함인 것을 믿으시기 바란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보배를 가지고 있는 질그릇이 받을, 지극히 크고 영원하고 중한 영광이다.

 

지극히 크고 영원하고 중한 영광이 이 땅에서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기업일 것이요,

천국에서는 우리가 누릴 영원한 복락, 영광의 영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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