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강대식목사

믿음의 확증 (고후 13:5)

새벽지기1 2017. 1. 12. 08:26


일본에 지진과 쓰나미가 몰려와서 수많은 인명살상과 엄청난 재산피해를 내는 것을 보았다.

재난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와서 우리를 경악케 한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갑작스런 재난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주님 오실 날이 가까우면 이런 일이 많이 있을 거라고 하셨다.

(마24:6-8)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노아의 때와 같이 주님의 임함도 그러하다고 하셨다.

(마24:38-39)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다 죽어도 나는 안 죽을 것 같고, 다 망해도 나는 안 망할 것 같은데,

살아보면 그렇지가 않다.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흥망성쇠를 증거하고 있다.

인간이 쌓은 도시 문명이 피해를 키우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도 언젠가는 가야 하고, 언젠가는 세상도 끝이 오고 만다.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셨고, 그 징조도 알려 주셨다.

우리가 우리의 일과 세상에만 코박고 살다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종말은 오고 만다.


지진과 쓰나미가 쓸고 가면 아무 것도 남는 게 없다.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던 일들과 소유들이, 그렇게 소중한 관계의 인간들이,

하루 아침에 파묻히고 쓸려가 버리고, 남는 건 슬픔과 회한 뿐이게 된다.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우리도 타산지석을 삼아야 한다.

주님 말씀하셨다.

(눅 13:4-9)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우리의 죄들을 회개할 줄 모르고.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데도,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하는 삶을 살면,

망하고, 찍어버릴 날이 오고야 만다.


어떤 재난이 갑자기 올지라도, 우리가 붙들 것은 오직 믿음이다.

믿음이 확실하다면, 두려워할 것도, 놀랄 것도, 걱정할 것도, 없다.

하나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으면, 강하고 담대할 수 있다.

(수1:9)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신약시대에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에 더하여,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있는 것을 믿는 믿음이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우리의 믿음을 확증하라는 말씀이다.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우리가 믿음 안에 있다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신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과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신다는 것을 믿지 못하면

교회를 아무리 오래 다녔어도 그리스도인은 아닌 것이다.

 

우리 주님의 말씀이다.

(요15:4-6)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이 관계가 우리와 그리스도와의 관계이다.

이 관계를 그리스도와 연합의 관계라고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분과 내가 연합되어 있음을 믿어야 한다.

 

우리가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순간,

우리는 창세 전, 우리를 택한 그리스도 안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십자가에서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여 보좌 우편에 함께 앉는 것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분과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 함께 고난을 받는, 공동상속자의 운명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엡2: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롬8:17) 자녀이면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바울서신들이 증거하는 계시된 이 말씀을 믿으시기 바란다.

지진과 쓰나미에 휩쓸려갈, 소유와 관계들을 믿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붙들고, 견고하게 서시기 바란다.

 

오늘 우리가 처해 있는 환경 때문에, 초라한 내 모습 때문에 낙심할 것 없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상속자로서, 그분과 함께 그 영광을 받기 위해,

오늘 우리는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고 있는 것이다.

 

(갈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고 있다면, 곧 하나님과 은혜의 말씀을 사랑하고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지금의 열악한 처지 때문에, 낙심할 것이 없다.

우리가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둘 날이 올 것이다.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들 모두가 한 사람도 빠짐 없이,

극심한 고난과 인내의 과정을 거쳐 영광의 결말에 이르렀다.

 

문제는, 지금 우리가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별로 가진 것도, 내세울 것도, 없는 것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믿음 안에 있는가,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는 것을, 확실히 알고 확증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알지 못하면 너희는 버리운 자니라”

그 사실을 알고 확증하지 못하면, 우리는 버리운 자가 될 수 밖에 없다.

지진과 쓰나미에 휩쓸려간 것들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것들은 잠시지만, 버리운 자가 되는 것은, 영원한 형벌과 지옥으로 사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믿음 안에 있는지,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신지를 알 수 있는 시금석들이 있다.

1) 내 믿음을 시험하고 확증하는 첫 번째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요일 5:10-11)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성경에서 증언하신 증거들을 믿는 사람들은

자기 안에 증거가 있는 사람들이다.

“그의 증언(진리의 증언)을 받는 자는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것을 인쳤느니라”(요3:33).

 

내가 믿지 않으면 하나님은 거짓말쟁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증언들을 믿는 자들은 이미 영생이 있고 심판이 없다.

 

그런데 이 말씀의 증거들만을 가지고 믿음을 확신하는 사람들은 위험할 수 있다.

요한 일서는 한때는 교인이었으나 진정으로 속한 자가 아니었기에

지금은 떠나버린 사람들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많이 있다.

 

2) 믿음의 확신의 두 번째 근거가 있다. 생명의 증거라고 부른다.

내 안에 계신 성령의 증거이다. 성령의 내적 역사이다.

성령이 계시니까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된다.

성령이 계시니까 그리스도가 내 안에, 아버지가 내 안에 있는 것을 믿게 된다.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성령이 계시니까 형제를 사랑하게 된다.

성령이 계시니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다.

 

3) 믿음의 확신의 세 번째 증거가 있다.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증거이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의 명확하고 득특한 작용이다. 성령의 외적 역사이다.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하시는 증거이다.

(롬8: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우리 주님은 말씀하셨다.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주목하십시오-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21절)


주님을 사랑하는 자를 주님도 사랑하여 자신을 나타낸다고 하신다.

이 사람에게 주님은 자신을 영적인 방법으로 나타내시는 것이다.

이 일을 하실 분이 성령이시다.



성령의 독특한 작용을 통해 살아계신 주님을 깨닫고 의식하게 만든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우리에게 보이시고,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실재가 되신다.

허드슨 테일러는 이렇게 기도했다.

주 예수여, 당신을 내게 생생한 실재가 되게 하소서

바깥의 다른 어떤 것보다도 믿음의 눈으로 더 생생하게 보도록

세상의 가장 달콤한 인연보다도 더 귀중하고 친밀한 가까움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처음부터 이 체험들을 증언해 왔다.

이것이 믿음의 확신의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근거이다.

주님이 우리에게 실재가 되시기 때문에,

약속대로 우리에게 자신을 나타내시기 때문에, 이것은 확실한 증거이다.

 

많은 성도들이 이 사실을 증언했다.

루터, 조나단 에드워즈, 휫필드, 웨슬리, 피니, 무디--

그들은 압도적인 방법으로 이 체험들을 하였다고 증언하였다.

성령이 친히 자신들의 영과 더불어 증거하신 것이었다.

 

우리도 믿음의 최종적인 증거가 되는 이러한 성령의 체험을 할 수 있기를 구해야 한다.

이 체험이 없다고 구원을 못받는 것은 아니지만, 이 체험 이후에

성도들의 생애와 사역은 놀랍게 달라졌다.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는 주님의 말씀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씀이다.

오순절 성령세례도 바로 믿는 자들에게 주신 믿음의 확증과 증언의 능력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자에게, 성령이 안에 계셔서 믿는 자에게, 그에 더하여,

성령의 독특한 작용으로 우리 주님께서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다.

성령께서 친히 우리 영과 더불어 우리의 믿음을 확증하시는 것이다.


거짓 확신도 있다.

나쁜 가르침, 잘못된 복음전도, 사람들에게 결정을 하도록 압력을 가함으로 생긴 확신들이다.

(마7:22-23)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25장의 어리석은 처녀들, 달란트를 묻어 놓은 사람, 염소의 무리들이 이에 해당한다.

우리의 믿음의 확신이 거짓된 것인지 참된 것인지 아는 특징들이 있다.

참된 확신의 특징은 처음부터 끝까지 겸손이다.

 

확신이 여러분을 겸손하게 만들지 않는다면, 다시 한번 그 근거들을 검토해 보시기 바란다.

그 확신의 체험은 언제나 성품과 삶에 실제적인 영향을 끼친다.

여러분에게 주님께서 자신을 나타내 주셨는가? 이 체혐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