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찔레에서 포도를 딸 수 없다.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다.
매우 당연한 말 같은데 여기에 깊은 의미가 있다.
못된 나무인지 좋은 나무인지는 그 열매를 보고 알아야 할텐데 우리는 그렇지 않다.
열매는 보지 않고 외관과 모양만 보고 우리는 잘 넘어간다.
세상에 사기꾼들이 성하고, 세상이 날로 더 악해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백성들은 정치인들이 표를 얻기 위해서 약속을 했는데, 그에게 속아 나라를 맡기기도 한다.
교인들은 거짓 선지자들의 사탕발림에 속아 세월과 재물을 쏟아붓기도 한다.
오늘 본문에서 못된 나무의 특징을 살펴 본다.
그 특징을 알고서, 스스로도 속지 말고, 남에게도 속지 않기를 바란다.
1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는 사람이다.
눅 6:41-42)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자기 잘못은 못 보고 남의 잘못만 잘 보는 사람이 바로 못된 나무이다.
그가 내놓는 말과 행동을 보면, 그 열매를 보면, 그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남의 말하기 좋아해서 함께 어울리고 같은 열매를 맺고 만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자기들이 아는 지식을 가지고
자기 성찰과 자기 성숙을 위해 쓰지 않고, 남을 옭아매고 때려 잡는 데 썼다는 것이다.
내 잘못은 로멘스 쯤으로 여기고 같은 남의 잘못은 불륜으로 정죄하는 것과 같다.
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을 보고 죽일려고 하였다.
그들은 예수님이 죄를 사해주시는 권세를 보고 죽일려고 하였다.
그들의 눈에는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보이지 않고 이단의 괴수로 보였다.
백성들은 그분의 열매를 보고 그분이 그리스도인 것을 알아보는데
그들은 그분의 열매를 보지 않고 그들의 잣대인 율법의 지식으로만 판단했다.
남의 티만 잡을려고 했지, 내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였다.
예수님은 그들이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하셨다.
겉으로만 가장 종교적인 사람들처럼 보였고 속은 아니었다.
그들 속에는 탐욕과 방탕이 죄악과 위선이 가득하였다.
입술은 하나님과 가까웠지만 마음은 하나님과 멀었다.
자꾸 옳은 소리를 하면서 흠을 잡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한다.
남의 티는 보면서 자기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한다.
그런 사람들의 입에 휩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고전 4:6-7)
적은 누룩이 들어가면 온 덩어리에 퍼지게 된다.
묵은 누룩들이 문제일 때가 많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도 있다.
우리는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살기를 힘써야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우리를 구원하여 자녀 삼아주신 것은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기 위함”(엡 5:26-27) 이라고 하셨다.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은 남의 눈에 있는 티를 뺄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는 것이다. 그것이 좋은 나무가 되는 길이다.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에서 들보를 빼라 그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2 못된 나무는 마음에 쌓은 악에서 악을 내는 사람이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딸 수 없고, 찔레에서 포도를 딸 수 없다고 하신다.
마음에 가시와 찔레가 있는데, 거기서 무화과와 포도의 아름다운 열매를 딸 수 없겠지요.
45절)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악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잔과 대접의 겉을 아무리 깨끗이 하여도 속을 깨끗이 할 수는 없겠지요.
그렇지만 바리새인들은 겉으로만 깨끗한 척하고 안으로는 더러운 것들로 가득 채웠다.
회칠한 무덤과 같다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우리 마음에 악한 것들이 쌓이지 않도록 수시로 청소하고 걸러내야 한다.
우리의 마음이 심히 악하고 부패할 수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지, 외양과 외식을 보지 않으신다.
렘 17:9-11)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의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마침내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
욥기에도 이런 말씀이 있다.
욥 15:14-16) 사람이 무엇이관대 깨끗하겠느냐 여인에게서 난 자가 무엇이관대 의롭겠느냐
하나님은 그 거룩한 자들을 믿지 아니하시나니 하늘이라도 그의 보시기에 부정하거든
하물며 악을 짓기를 물 마심 같이 하는 가증하고 부패한 사람이겠느냐
우리 마음 속에서 나오는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하셨다.
막 7:21-23)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우리가 주님을 닮아가는 성화의 길, 우리의 성숙의 길은
우리 마음에 악이 쌓이지 않도록 하고, 쌓인 것들은 몰아내는 것이다.
아직도 우리 몸과 마음에 남아 있는 옛사람의 사고방식과 습관들을 씻어내야 한다.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고 하신다.
“우리의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신다.
우리는 복음을 마음으로부터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다.
“이제는 우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고 하신다.
이 권면과 명령들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우리 신분과 특권을 알고
우리가 행해야 할 일들이다.
우리가 하는 만큼 좋은 나무가 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하지 않는 만큼 우리는 좋은 나무가 되지 못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자꾸 실패하니까 우리는 내려놓고 주님이 내 안에서 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가르침이 우리를 게으르게 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게 하고,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게 하고 마는 것을, 우리는 경험했다.
잘못된 십자가 복음에서 우리가 청교도의 길을 가야 하는 것은
더 이상 우리의 행하지 않는 것을 합리화하지 않고, 좋은 나무가 되는 길을 가고자 함이다.
우리는 여호수아처럼 일어나 가나안을 향해 가야 한다.
야곱처럼 우상들을 버리고 벧엘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모세처럼 여호와의 구름을 따라 머물 줄도 알고 나아갈 줄도 알아야 한다.
바울처럼 어떤 환경에서도 자족하는 일체의 비결을 배우면서도
하나님이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 마음에 이런 자세가 있어야 우리는 좋은 나무가 되어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사람들의 선을 쌓아가야 우리는 좋은 나무가 될 수 있다.
선은 말씀에 있는 하나님의 뜻이고, 악은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탐욕들이다.
우리는 말씀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함으로써 우리 마음에 선을 쌓아가야 한다.
그 약속들과 소망들을 붙잡고 하늘을 보며 소망이신 하나님을 붙들고 견고하게 서야 한다.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우리도 우리의 최선을 다해 부지런하고 인내해야 한다.
3 못된 나무는 듣고 행하지 않는 자이다.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성경은 주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로 인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들을 말씀하고 있다.
그리고 아울러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권면하고 명령하고 있다.
우리의 신분과 특권들을 말씀을 통해 알고
우리는 말씀이 명하는 일들을 우리 삶 가운데서 실천에 옮겨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왕들임을 알지 못하면 권하고 명하는 일들을 실천할 수 없다.
간디나 슈바이처 같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교훈을 실천했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예수님의 인격과 삶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의 신인의 인격과 사역을 믿지 않고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의지의 사람, 선한 사람은 될 수 있어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는 없다.
간디는 실제로 힌두교도였고, 슈바이처는 가장 큰 이단인 자유주의 신학자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인 예수가 십자가에 피흘리지 않고도
스스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받은 사람들이지
소위 선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말씀을 듣고 믿고 행하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의 책망은 왜 듣고도 행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왜 바리새인들의 의보다 못하느냐 하는 것이다.
마 5:19-20)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믿음은 행위를 포함하는 것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관념적으로만 지적으로만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듣고 믿었으면 행함이 따라야 한다.
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성경에서 믿음과 함께 행함을 강조하는 것을 우리는 보아야 한다.
행위로 구원을 받지 않지만, 행위 없는 믿음을 성경은 결코 말씀하지 않다.
우리는 믿음으로 은혜로 구원을 받지만, 그 믿음에는 행함이 따라야 하고
그 구원에는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어가는 구원이 따라야 한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 그것을 의로 여기셨지만
아브라함은 순종하여 가나안 땅으로 가는 믿음의 행위를 보였고,
이삭까지도 하나님의 명을 따라 번제로 바치는 순종의 행위를 보였다.
믿는다고 하면서 행함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모독을 받고
교회와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 것이다.
믿고 행해야 한다. 몸에 남아 있는 가시와 찔레들을 제거해야 한다.
좋은 나무가 되어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야 하나님이 영광을 받는다.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눅 6:47-49)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되 잘 지었기 때문에 능히 요동하지 못하게 하였거니와,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이전 번역 주초는 주추의 잘못이다. 기둥 밑에 괴는 물건이다.)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은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다.
마태복음은 이 사람을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다고 하였다.
듣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다.
마태복음은 이 사람을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다고 하였다.
둘 다 집은 지었지만, 큰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딛칠 때 결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한 집은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고, 한 집은 능히 요동하지 않는 것이다.
집이 아니고 우리의 인생이 그렇게 결론이 나고 만다는 것이다.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좋은 말씀 > 강대식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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