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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주의 5대 교리

새벽지기1 2016. 7. 12. 23:18


제6장 칼빈주의 5대 교리

'칼빈주의 5대 교리'(five point of Cavinism)라는 말은 세 가지 점에서 오해의 소지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는 5대 교리라는 말 때문에 많은 이들이 칼빈주의를 다섯 가지(五大)

교리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 다섯가지 교리가 칼빈주의 입장을

드러내는 것은 분명하지만 칼빈주의는 5가지 교리만 가진 것도 아니며

칼빈주의는 5대 교리보다 더욱 광범위하며 더욱 포괄적이다.

 

둘째는 '칼빈주의 5대 교리'를 칼빈주의의 가장 중요한 다섯 가지

교리로 생각하는 경향이다. '칼빈주의 5대 교리'를 말하게 된 것은

아르미니안들의 다섯 가지 주장에 대항하여 칼빈주의적 견해를 밝히다

보니 5가지 교리를 말하게 되었을 따름이다.

 

셋째, 칼빈주의 5대 교리는 '예정론'이 칼빈주의의 중심교리이며,

그 외의 것은 부수적인 교리라는 인상을 준다. 칼빈주의 5대 교리의

중요한 사상은 예정론이지만, 이 예정론이 칼빈주의의 기본교리라고

볼 수는 없다. 예정론을 거부하는 아르미니안들의 저항 때문에 이 교리가

강조 되었을 뿐이다.

 

칼빈이 작성한 최초의 제네바 신앙문답서(1537)에는 예정론이 단지

짤막하게 언급되었을 뿐이었고, 같은 해에 작성된 신앙고백서에는

언급조차 없었다. 또 그의 기독교강요에서도 예정론은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았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논쟁이 있은 후에 나온

기독교강요 후기 판에서 예정론이 취급되었을 따름이다. 칼빈주의는

'5대 교리' 뿐만이 아니라 '오직 성경'과 '모든 성경'의 사상을 나타내려고

노력한다. 그러므로 칼빈주의를 5대 교리로 제한시키거나 다섯 가지

교리가 칼빈주의의 가장 중요한 교리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역사적으로 칼빈주의라고 일컫는 신학체계가 왜, 그리고 어떻게 이런

이름을 얻게 되었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5대 교리 혹은 5대 강령이란

이름으로 공식화되었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17세기 초 네덜란드에서

일어났던 신학 논쟁을 이해해야만 한다.

 

1. 아르미니우스와 예정론(생략)

2. 아르미니우스파의 항의(생략)

3. 도르트회의(생략)

4. 칼빈주의 5대 교리

 

도르트회의에서 선언된 5개조를 간단히 요약하면,

A. 선택은 '창세전부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루어졌다.

B. 그리스도의 속죄의 효과는 택자에게만 미친다.

C. 타락으로 인간은 부패와 무능력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D. 중생은 영혼과 의지의 내적 변화이며, 하나님의 놀랍고도

    신비로운 역사이다.

E. 하나님은 택자들을 보존하셔서 궁극적으로는 은헤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신다.

로 요약될 수 있는데, 아르미니우스의 주장에 반대하여 5가지 교리,

전적 타락, 무조건적 선택, 제한된 구속, 불가항력적 은혜, 그리고

성도의 견인 등으로 정리될 수 있다.

 

'칼빈주의 5대 교리'란 이름 그대로 5개의 교리이지만 사실 이것은

오직 하나의 교리일 따름이다. 즉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으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

하신다'는 교리가 그것이다. 우리는 단지 편리하게 하기 위해 5개로

구분하여 설명할 뿐이다.

 

이제 5대 교리에 대해 좀 설명해 보고자 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이 5가지가 '5대 교리'가 되었는가 하는 점이 아니라,

이 교리들이 성경적 지원을 받고 있는 타당한 교리인가 하는 점이다.

5대 교리를 기억하기 편하도록 네덜란드의 국화인 튤립(TULIP)의

영어 문자 순서로 살펴보고자 한다.

 

전적 타락(Total Depravity)

 

전적 타락이란 인간은 선을 행할 의지나 능력이 없으며 인간의 공로가

전혀 불가능하도록 전적으로 부패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사람은 가능한

모든 죄를 범하는 것도 아니고, 최악의 죄를 범하는 것도 아니며 어느

정도 상대적 선을 행할 수도 있지만, 사림이 행한 모든 것은 다 죄악된

것뿐이다. 사람은 참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단 한 가지도 행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적 타락은 완전한 타락을 의미하지도 않고, 상대적 선의 결핍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람이 이 보다 더 악한 죄를 범할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간이 행하는 모두가 악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을

증거해 주는 본문으로는 창2:17, 고전2:14, 고후1:9, 엡2:12 등이 있다.

 

 

타락에 대한 로마 카톨릭, 성공회, 그리고 장로교의 입장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1. 로마 카톨릭교회: 트랜트회의(1546)에서 채택한 문서에서 타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담 전부가 허물의 죄로 말미암아

   육신과 영혼으로 인해 더 나쁘도록 변화되었다."

 

2. 성공회(영국교회): 영국교회의 신조인 '39개조' 제6항에 보면,

   아담이 죄로 인하여 "인간이 원래 의에서부터 멀리 떠나 있다."고

   했다. 이 영어 본문은 라틴어 원문의 번역본인데, 라틴어문에는

   "원래 의에서부터 할 수 있는 되로 멀리 떠났다"고 되어 있다.

 

3. 장로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6장 '인간의 타락과 죄와

   형벌에 관하여' 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의 시조들은

   .... 죄로 죽게 되었고, 영과 육의 모든 기능들과 기관들이 전적으로

   더렵혀지고 말았다. 그들이 온 인류의 시조이기 때문에, 그들이

   범한 이 같은 죄책은 모든 후손들에게 전가 되었고, ....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을 전혀 가질 수 없고,

   전적으로 악을 행하는 성향만이 남아있다. ..."

 

정리하면 로마 카톨릭은 "더 나쁘도록 변화되었다"고 했고, 장로교는

"절대적으로 부패되었다"고 했으나, 성공회는 "아주 멀리 떠났다"고

하여 중도적 입장을 취했다. 인간의 타락에 관한 입장은  교파의

신학과 구원관에 심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선택의 교리는 구원문제에 대한 예정론의 특수한 적용인데

인간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한다.

무조건적 선택이란, 하나님은 창세전에 자기의 기쁘신 뜻에 따라

인간을 선택하거나 유기하시도록 예정해 두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선택받은 자와 멸망 받을 자 사이에는 아무런 윤리적 차이가 없다.

그의 윤리적 행위를 보고 선택하는 것도 아니고 그의 믿음을 보고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무조건적 선택이다.

무조건적 선택은 인간의 전적타락의 논리적인 귀결이다.

 

제한적 구속(Limited Atonement)

 

그리스도의 속죄는 전 인류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선택자만을

위한 것인가? 이 점에 대한 설명이 제한된 구속인데, 제한된 구속이란

말은 오직 선택된 자 만이 그리스도의 속죄에 의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달리 말하면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은 오직

구원에 이르도록 예정된 자에게만 효력을 지닌다는 의미이다.

그리스도는 만만을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라 선택된 자만을 위해

속죄의 죽음을 죽으신 것이다.

 

이 점에 대해 칼빈은 "속죄는 모든 사람의 구원에 있어서 충분하지만,

선택된 사람에게만 유효하다"고 말했다. 이 교리는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속죄의 가치와 능력이 어떤 한계를 지니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속죄의 가치는 전 인류를 구원하기에 족하지만

그 목적과 적용에 있어서 제한되어 있음을 말 할 뿐이다.

우리가 이 교리를 보통 '제한된 구속'이라고 말하지만'한정된 구속'

이라는 말이 더 적절할 것이다.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

 

불가항력적 은혜란 중생은 전적으로 선택을 기초로 한 하나님의

효과적인 사역의 결과이며,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질 때 인간은

이를 거부할 수 없다는 점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그 본래의 상태에 있어서는 근본적으로 부패되어 자력으로는

도저히 거룩하여 질 수도 없고 구원에 이를 수 없다.

중생은 하나님께서 피택된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의 산물이다.

 

불가항력적 은혜란 이 하나님의 은혜를 거역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교리는 은혜란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 호의인데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주권적으로 일하신다는 점을 강조한다.

불가항력적 은혜를 보통 영어로 Irresistible Grace로 부르지만

Invincible Grace라는 말이 더 적절할 것이다.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

 

성도의 견인이란 성도의 보전이라고도 불리는데, 한번 선택받은

성도는 한 때 타락할 수 있어도 궁극적으로 반드시 구원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의 효과적인 부르심을 받은 자는 인간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구원이 보장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성령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여기셨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나 내세에서도 우리들을

하나님의 손에서부터 떼어놓을 자가 없음을 가르친다.

 

선택이란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어떤 사람을 구원하기로 택하신

것을 의미하는데, 아르미니안주의자가 말하는 것처럼 만일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이라도 믿음에서 떨어져 나갈 수 있다고

한다면 선택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성도의 견인교리는

그리스도인에게 죄가 없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범할 수 있고 어떤 경우에는 크게 타락할 수도 있지만

택함 받은 자는 종국에는 구원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의 선택이 인간의 행위에 의해 무효화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성도의 견인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근거로, 하나님의

영원하신 무조건적 선택에 기초한다. 신자는 이미 영생을 얻었

으며, 영원한 생명을 소유함으로 한번 구원함을 받은 사람은

계속해서 구원받을 사람이다.

 

여기서 칼빈주의 5대 교리를 보다 선명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간단하게 칼빈주의와 아르미니안주의를 비교해 보고자 한다.

 

교리

아르미니안주의(Arminianism)

칼빈주의

(Calvinism)

예정

예지예정(조건적 선택)

무조건적 선택

속죄

만인을 위한 속죄

(보편구원설)

택자만을 위한 구속

(제한적 구속)

인간

자유의지 인정

전적 타락과 전적 무능력

은총

거절할 수 있음

거절할 수 없음

성도의

견인

의심함

인정

 

 

칼빈주의와 아르미니안주의 간의 차이점에 대해

제임스 패커(James Packer)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칼빈주의와 아르미니안주의의 차이점은 근본적으로

강조점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 내용에 관한 것이다.

하나는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선언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은 인간으로 하여금 그 자신을 구할 수 있도록 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칼빈주의는 잃어버린 인류의 회복을 위한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세 가지 위대한 사역을 말해주고 있는데

그것은 성부에 의한 선택, 성자에 의한 구속, 성령에 의한 부르심이다.

 

그러나 아르미니안주의는 구속의 대상은 모든 인류이며,

선택의 대상은 그것을 듣고 응답하는 자들로 보며,

소명의 대상은 복음을 듣는 자들로 보고 있다.....

 

전자는 구원은 하나님의 사역에 의존하지만

후자는 인간의 일에 관한 것으로 설명한다.

전자는 믿음을 하나님의 구원의 선물로 간주하지만,

후자는 구원을 향한 인간의 노력으로 생각한다.

 

 

개혁주의란 무엇인가?, 이상규 (고신대학교 출판부) 149~171p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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