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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견인의 의미 / 존 오웬

새벽지기1 2016. 7. 6. 07:24


성도의 견인의 의미 (존 오웬)

 

한번 구원받은 성도의 그 구원은 영원히 보장되는가? 아니면 구원으로부터 멀어져 멸망의 길로 떨어질 수 있는가? 도대체 성경은 우리 구원의 안정성과 영원성에 대하여 무엇이라 말하고 있는가?

 

성도의 견인(the perseverance of saints)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강한 소망과 안위(히6:17,18)가 바로 이 성도의 견인에 대한 성경적 초석이라고 믿는 반면, 또 어떤 소수의 사람들은 성도의 견인은 복음적인 가르침과는 전혀 상관없는 교리로서 인간이 지어낸 허구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사람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성도의 견인을 오히려 죄를 범하도록 부추기는 강력한 요인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므로 성도의 견인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경외 또한 성도들의 영적 풍요로움은 성도의 견인에 대한 바른 이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던 사람들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타락하는 경우들을 보게 되는데, 이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적잖은 장애물로 다가온다. 스스로 믿는다고 하는 자들도 그 사랑이 식어 떠날 것이라고 예수님은 예언하셨다(마24:11,12).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선택된 자들은 미혹을 당하거나 믿음에서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제자들을 안심시키고 위로하셨다. 사도 바울은 그 당시에 있었던 후메내오와 빌레도의 배교에 대해 말했다. 그들의 사악한 가르침을 따른 자들은 믿음에서 완전히 멀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의 소유자들에게는 위로를 주는 견고한 터가 있는데, 이는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딤후2:19)는 말씀이다. 사도 요한도 그 당시의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에 대하여 이와 비슷하게 서술했다. 그는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요일2:19)라고 말했다. 주님의 길을 가다가 단념한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진정한 성도들의 믿음이 흔들려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지만 진정한 성도들은 그것을 그리스도가 진정으로 자기 속에 거하시는지 점검해 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만약 지옥으로 떨어진 자들의 믿음이 진정한 믿음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면, 그 누구도 자기가 진정한 믿음의 소유자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다."라고 반박하는 자들도 있다. 하나님은 이런 경우들로 믿는 자들을 시험하신다고 우리는 대답할 수 있다. 이런 시험을 통해서 우리는 더욱더 깊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 들어가게 되고 또한 믿음이 더욱 강해질 것이다. 이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게 됨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7)는 말씀에 우리는 분명히 의존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의 타락에 대한 소식이, 초대교회 성도들 안에 있었던 믿음의 형용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을 결코 우리에게서 빼앗아가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을 기뻐하니"(벧전1:8)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잇는 근거는 오로지 자신이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음을 증거하는 양심밖에 없다고들 말한다. 틀림없이 많은 성도들이 양자의 영을 받았고, 그로 인해 성령께서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신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롬8:16). 초대 교회 성도들이 가졌던 이 충만한 기쁨을 결코 맛보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다. 우리 구원의 확신은 양심의 증거보다 더 확실하고 굳건한 터 위에 세워져야 할 것이다. 우리 양심의 증거에 의존한 구원의 확신은 종종 우리 자신들의 실수로 인하여 약해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말하는 "성자들"(saints)이란 어떤 사람들을 의미하는가? 간단히 말해서 "거룩한 자들"이라고 할 수 있지만, 성경에서는 "거룩한"이라는 단어가 여러 가지 뜻으로 쓰이고 있다. 본질적으로 유일하신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시다. 피조물의 거룩함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다르다. 아담이 창조되었을 때 원래 그에게도 거룩함이 있었지만 죄로 인해 소멸되었다. 타락한 천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진정한 성도들은 비록 죄를 짓고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거룩함이 있다. 이것이 바로 "부여받은 거룩함"(imparted holiness)이다.

 

특히 구약성경에서, "거룩한"이란 말은 종종 "하나님과 그분의 섬김을 위해서 구별된"이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언약궤 같은 물건뿐만 아니라 악한 사람들까지 섞여 있는 이스라엘 전체 백성을 가리켜 거룩하다고 하셨다. 이런 것들을 가리켜 성도의 견인이라 하지 않는다. 신약성경에서 "거룩한"이란 말은 종종 "내적인 순결을 가지고 있는"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들이 생각할 때도 거룩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 중에는 결코 진정으로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이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성령께서 주시는 일반 은혜의 선물이 그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쳐 거듭난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그 속에 그리스도가 거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성자 혹은 진정한 성도들은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아래 열거한 글들은 이를 구별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1. 한때 그들은 영적으로 죽어 있었지만, 하나님이 그들에게 구원을 얻게 하는 믿음을 주셨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들을 선택하신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의 결과가 바로 성도들의 거룩함이었다(엡1:4). 


2. 허물로 인해 죽었던 그들을 성령께서 다시 살리시고 새로운 생명을 주셨다. 성령께서 그들을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리실 때 그들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믿음이란 귀한 선물을 받게 된다(엡2:5).


3. 그리스도 예수의 죽음과 중보로 말미암아 영원토록 그들과 함께 할 성령 하나님을 그들에게 보내 주셨다(요14:16). 


4. 그들 속에 거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그들은 하나님의 원수가 아닌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종으로 살게 된다. 

 

또한 성도의 견인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위해서 성령은 여러 가지 표현들을 사용하신다. 그 예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1.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골2:6)

2. 죽도록 충성하라(계2:10). 

3.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히3:6).

4.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벧전1:5).  

 

자, 그러면 가끔 제기되는 "성도들도 완전히 믿음에서 떠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성도들 안에 성령이 거하시면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에는 모든 사람들이 동의한다(갈5:22). 그렇다면 성도들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완전 소멸을 가능케 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어떤 것들이 성도 안에서 성령의 은혜의 역사를 완전히 마비시킬 수 있는 것일까? 죄일까? 죄를 마음에 품고 옹호한다면, 분명히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약화시킬 것이다. 성도들의 죄로 인해 성령께서 슬퍼하시는 것은 사실이지만, 죄가 성령을 정복하고 승리를 거둔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은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 피조물이 된 결과이다. 그 은혜는 그들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다. 먼저 뿌리가 견고해야 좋은 열매가 맺히는 법이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일으키신 그 능력으로 우리 속에 은혜를 심으셨다(엡1:19,20). 우리 쪽에서 죄를 지속적으로 범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던 은혜와 성령을 다시 거두어 가시는 것은 마땅한 일이겠지만, 과연 죄가 하나님의 자녀들을 이기고 마지막 승리를 거두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실까? 오히려 그 자녀들을 돕기 위해서 달려오지 않으시겠는가? 그 자녀들을 꾸중하고 혼내주실 망정 영원토록 쫓아내시지는 않을 것이다.

 

성도의 견인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은 종종 이런 가르침이 오히려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범하도록 부추긴다고 반박해 왔다. 이런 가르침은 그 자녀들의 삶이 얼마나 심각한 죄로 물들어 있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 그 자체만을 확신시켜 준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반박은 틀린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하시는 자비를 한번 맛본 성도라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그것을 귀하게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미리 준비하신 선한 일들을 하기 원한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 그들에게 지속적인 은혜를 부어 주셔서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선한 일을 함으로 거룩한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하실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이 은혜는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살게 한다(딛2:11,12).

 

성도의 견인에 대한 또 다른 견해는 바로 성도들이 믿음에서 완전히 떠날 가능성은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 자기 목숨을 끊을 가능성보다 크지 않다는 주장이다. 사람들은 자연적으로 자신들의 육체에 어떤 위험을 가하거나 위험에 노출시키는 것을 피한다. 이와 비슷하게,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자신들의 영혼을 파괴시킬 수 있는 죄를 멀리 하도록 하는 지혜와 명철을 부여하셨다. 이 지혜와 명철은 성도들에게 가해지는 악한 죄의 세력을 묵살시킬 수 있다. 이 원수 중 하나가 바로 우리 속에 거하는 죄이다(롬7:17,20).

 

바울은 이 원수를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이라고 부르고 있다(엡4:22). 우리 속에 거하는 죄의 힘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우리 자신을 완전히 믿음에서 떠나는 것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는 보통 명철보다 더 큰 힘이 필요함을 알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중보가 필요하다. 우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다"(벧전1:5).

 

이사야 4장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큰 격려와 위로를 주는 주장이다. 다른 구절들과 마찬가지로 4장에서도 영광스러운 주의 지파로 일컬어진 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이다. 약속을 받은 사람들은 "시온에 남아 있는 자"들이다.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은혜의 선택에 따라 남은 자들로서 창세 전에 어린양의 생명책에 녹명된 자들이다(엡1:4, 계13:8). 하마터면 새까맣게 타서 없어질 뻔한 활활 타는 불길 속에서 간신히 낚아챈 장작개비처럼 멸망해 가는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건짐 받은 자들이다. 이사야는 이들을 또한 "시온의 딸들," 즉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되고, 구원받고 그리고 부름 받은 자들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성도의 칭의, 성화 그리고 견인이 약속되어 있다. 

 

1. 칭의 
우리의 의로우신 주님께서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하도록 우리의 흠을 숨기기 위해 그의 영광스러운 의의 옷으로 친히 덮어 주신다.

 

2. 성화
거룩하도록 부름 받은 자들은 그들 속에 거하시는 그리스도 예수의 역사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된다.

 

3. 성도의 견인
광야 생활 중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그들의 보호막이었다. "그 모든 영광 위에 천막을 덮을 것이며"라고 말했을 때 이사야는 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말한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모형인 언약궤는 이스라엘의 영광을 상징한다. 우리의 영적 영광에는 두 부분이 있다.

그 하나는 우리의 외적인 부분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값없이 받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다.

또 한 부분은 거룩한 영으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서 이루어지는 성화이다. 


한번 성도들의 영혼 속에 거한 성령이 완전히 제거되는 일은 결코 없다. 거룩한 성령은 그가 한번 거한 자리를 세상의 영에게 내주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그의 손으로 성도들을 덮으시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값없이 구속하심으로써 다시는 끊을 수 없는 은총의 언약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성도들은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성령이 소멸되어 다시 악의 자녀들이 될 정도로 심각한 악에 빠질 수는 없다는 말이다. 이것은 그들이 거듭나기 전에만 가능하다(엡2:2,3).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관계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잘 표현하고 있다(렘31:33, 34, 32:28-40). 그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그의 백성이 될 것이라고 하나님은 약속하신다. 

 

1. 하나님은 그들을 조건없이 받아주신다.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렘31:34).

 

2. 그들의 성화와 거룩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어야만 한다.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렘31:33).

 

3. 하나님을 경외함이 그들을 전적으로 떠나지 않을 것이다.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렘32:40).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과 한 도를 주어.... 항상 나를 경외하게 하고"(렘32:39).

 

 

'성도의 견인' (7~20p에서 발췌) / 존 오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