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존 오웬

세상 것에 대한 애착과 집착을 버리지 못하면 영적인 생각을 할 수 없다 / 존 오웬

새벽지기1 2016. 7. 5. 14:29


교회 안에서나 가정에서 영적인 의무들을 감당하고, 영적인 것들에 대한 강화를 맡고 있고, 세상에 만연하는 무절제를 피하여 자신들을 단속하는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속한 것들에 대한 애착과 집착을 버리지 못하여 시험 받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바라보는 일은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그들의 노력이 어떠하였던 간에 그들도 여전히 합당한 방식으로 영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자기의 양심과 종교적인 행습을 지키며 살아온 젊은이를 시험하시기 위하여 “네가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젊은이에게 큰 근심거리가 되었습니다. 자기가 세상에서 누리던 것을 포기하고 싶지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누리고 있는 것들 중에서 백의 하나라도 버리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자기들이 해야 할 마땅한 의무를 포기하면서까지 말입니다.

 

저는 모든 이들에게 사도와 같이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히6:9).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환난의 많은 사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고후8:1-3).

 

하나님께서는 핍박과 여러 환난 속에서 영광을 드높이십니다. 그들은 풍성하고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을 때보다 오히려 환난과 핍박으로 인해 그들이 가졌던 재물을 잃고 나서 더 넘치는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세상이 만약 궁핍과 가난 속에 맺히는 복음의 영광의 열매를 알기만 한다면 자기들이 세상적으로 성공하는 것만을 최고의 만족으로 여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내면적인 은혜를 통해서 뿐 아니라 자기들에게 당면한 외적인 처지로 인해 위에 있는 것들을 더욱 상기하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하늘 위에 있는 것들을 바라봄으로 자신들이 처해있는 궁핍의 고통 속에서 위로를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땅에 속한 것들을 충만하게 누리는 사람들은 그 마땅한 도리를 정면으로 가로막는 두 가지의 악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중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욕심’입니다. 사람이 땅에서 누리는 것이 많아지면 세상적인 욕심은 더욱 늘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재물이 증가하는 만큼 그것들에 대한 애착도 함께 자라나는 것입니다. 잔잔한 물줄기는 보통의 방축으로 간수할 수 있지만, 홍수가 일어나 물이 한정 없이 밀려들어오면 방축은 더 이상 물을 간수하지 못하고 무너져 내릴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지혜와 근신함과 안전함의 한계를 넘어서는 거대한 풍족함을 누리려고 합니다.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소유한 것을 더 늘리려는 강렬한 소원을 가지기 힘듭니다. 그러나 이미 많이 가진 자들은 더 많이 가지려고 합니다. 그래야만 그들의 직성이 풀릴 것입니다. 그렇게 직성이 풀리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또 다른 것을 향하여 두리번거립니다. 이들이 훌륭한 그리스도인들로 추앙을 받고, 선한 그리스도인같이 여김 받는 것은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가진 재물이 가난한 자들과 자기들을 서로 다른 종류의 사람으로 구분지어 주는 잣대로 여기기도 합니다. 그것은 영적인 생각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것입니다. 그런 식의 사고방식이 장악하고 있는 마음은 영적으로 생각하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 두 가지 생각은 절대로 공존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 속의 생각이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영광을 바르게 이해하는 일을 위하여 집중되어 있지 않는 한, 그들은 결코 그 악한 마음의 세력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리가 어떤 존재이든지 간에, 우리가 위에 있는 것들을 부단히 묵상하지 않으면 우리의 생각이 영적으로 돌아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기독교는 헛된 것입니다.

 

- 존 오웬, 「영의 생각, 육신의 생각」, pp 12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