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현수:조직신학

신현수 박사의 조식신학 (81)

새벽지기1 2016. 7. 5. 07:03


21절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이방인에게 제시되었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는 것이 이방인에게 요구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리스도가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시기 오래 전에 이방인에 의해 거절되었다. 만약 바르트의 주석이 옳다면, 이방인의 우상 숭배와 도덕적 부패가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를 배척하기까지는 시작되지 않았다는 불합리한 결과가 도출될 것이다.


바르트는 주장한다, ‘이 모든 것(하나님을 아는 것)은 이방인들이 복음을 듣기 전에 이미 갖고 있는 지식에서 이끌어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유대인에게 그들이 결코 율법을 지키지 않고 언제나 그것을 범하여 받을 심판과 똑 같이 새로운 것이다. 그것은 유대인에게 새로운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선포한 계시의 진리다.’


복음은 사람이 죄가 있음을 드러낸다. 이 일은 복음이 아니고서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복음은 사람이 죄가 있음을 드러내려고 이전에 그에게 준 빛을 어긴 행위와 죄를 강제로 고백하게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기 전에 이방인이 죄를 의식하게 한 어떤 실제적 지식이나 아니면 적어도 그럴듯한 하나님 지식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지식이 전혀 없다거나 있을 수도 없다면, 어떠한 죄의식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특별 계시가 사람이 죄가 있음을 드러낸다면, 그것이 호소할 수 있는 일반 계시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특별계시는 사람이 죄가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분명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바르트는 로마서의 첫 두 장을 이전에 어떤 학자도 하지 않은 방식으로 주석하게 되었다. 한 구절에서 그는 이방인이 언제나 객관적으로 판단을 받았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 이방인은 하나님을 안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의 사고의 주된 경향이 아니다. 이 경향은 다른 구절에 나타난다. 이곳에서 그는 이른바 자연신학의 하나님이 참된 계시의 하나님이 아니라고 말한다. 자연신학에서 말하는 신 혹은 신들에 관한 지식은 참된 하나님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것은 사람이 그러한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할 뿐이다. 사람이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계시 밖에서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책임은 자신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책임일 뿐이다. 그와 같이 자신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참된 하나님과 대면하는 것을 피하게 된다.


이 구절을 비롯한 다른 많은 구절을 근거로 바르트의 신학적 입장을 분석하면, 그에게는 도덕적 의무를 신학적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 왜냐하면 사람이 하나님과 보편적인 대면을 하는 것이 전혀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폭력적인 방식으로 일반 사람을 하나님과 분리시키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하지 않다. 바르트의 이러한 주장은 구약의 정신과 거리가 멀다. 구약 선지자들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이방 나라 사람들도 하나님을 거역한 죄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고 가르치지 않는가? 하나님은 이방 사람들에게 자신을 계시하셔서 하나님을 실제로 알게 하거나 알 수 있게 하셨다, 비록 그들이 아무리 자신들의 눈을 막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타락하여 신이 아닌 신을 섬겼을지라도 말이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죄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더구나, 바르트처럼 일반 계시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인간론의 영역뿐만 아니라 신론의 영역에서도 신학적인 어려움이 있게 된다. 만일 하나님이 바르트가 말하는 ‘우주에 있는 사람’에게 자신을 계시할 수 없거나 기꺼이 계시하지 않았다면, 믿음에 심각한 어려움이 따르게 된다.
사람은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기꺼이 계시하지 않았거나 계시할 수 없었던 하나님의 땅에서 살아왔다.<계속>


출처j...복음신문....피어선신학전문대학원 조직신학 교수...신 현 수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