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 로마서강해

롬1:1-2 [로이드존스-로마서 강해]

새벽지기1 2016. 2. 20. 04:46

1장 1~2절 :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1. 그리스도의 중심성

① 바울이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란 말로 표현함으로서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관심과 삶의 중심, 그리고 자신의 사명으로 주어진 가장 중요한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사실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바울의 전 존재는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고 있어서 그분을 떠나서는 자신을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증거하는 일이 전부였기 때문에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자신의 신분을 너무나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② 그의 서신서들은 모두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인도하지 않는 것이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는 처음과 끝으로서 모든 것 중의 모든 것이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③ 사도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자기의 주님에 대하여 말하고 있으며, 자신에게 있어서 자랑할 만한 여러 가지 조건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소개하며, 오직 주님에 대하여만 자랑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④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께 바쳐진 사람으로서 그의 종이라고 자신을 묘사합니다.

그런데 종은 자기의 생각에 따라 스스로 어떠한 일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언제나 주인의 뜻에 따라 행하며, 그의 명령에 철저히 순복해야 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주님께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노예가 되기를 즐거워하며 기뻐했습니다.


⑤  이제 우리는 자신에게 이것을 적용 시켜 보아야 하는데, 우리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 앞에 서 계시는지와 우리의 삶 중심에 계시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2. 바울사도의 사도적 자격

: 사도는 한 특별한 사명을 위하여 선택받아 파송된 자로서 자기를 보내는 자를 대표할 충분한 권위를 입은 자를 말합니다.


① 바울은 행26:16에서 주님께서 직접 사명을 맡겨 주셨으며 자기에 관한 진리를 전파할 위대한 목적을 위해서 특별히 부르심을 받았다고 합니다.


② 바울은 갈1:11~12에서 자신은 다른 사도들로부터 복음을 배운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직접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고전 11:23에서와 15:3에서 바울은 자신이 다른 사도들과 절대로 동등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으며, 자신은 참된 사도라고 주장합니다.


③ 롬11:13과 행26:18에서 그는 자신이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며, 그 직분을 크게 영광스럽게 여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께로부터 직접 부르심을 받은 사도”라고 말합니다.


④ 사도의 직분은 계승되거나 사람들에 의해서 선출되는 직분이 아닌데, 그런 의미에서 사도로 추천을 받았던 맛디아를 보아서도 잘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워지게 된” 기독교는 이제 더 이상 터를 세우는 일이 있을 수 없으며, 계속해서 세우거나 확장해서 세우는 일은 더 이상 있을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서 신약의 정경이 형성된 후에는 사실상 사도가 전혀 필요 없게 되었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합니다.


택정함을 받았다고 하는 말은 구별되었다는 의미로서 선이 그어지고 사람들이 따로 구별 되어진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처럼 자기는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 따로 구별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창세전에 하나님의 목적에 의해서 이루어진 일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구원도 사명도 모두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창세전에 계획된 일이라는 것입니다.


3. “복음”이란 말의 의미

여기서 바울은 자기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 택정함을 입었다고 말 합니다.

우리가 “복음”이라는 말과 너무 친숙한 나머지 그 복음의 깊고 엄청난 의미를 인식하지 못할 때가 너무나도 많은데, 우리가 다 알다시피 복음은 “좋은 소식”입니다.

그러나 문자적으로만 살펴보고 끝나서 영적인 의미에 도달하지 못해서는 안 됩니다.

진정으로 중요한 문제는 이 복음이 우리에게 좋은 소식으로 왔느냐 하는 것과 그 복음에 대하여 참된 이해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① 율법에도 은혜의 요소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율법이 들어온 것은 죄를 튀어 나오게 하기 위함이며 구원의 방도로 주어진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구원 받을 기회를 주기 위해서 율법이 주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② 그렇다고 해서 복음이 율법이 실패한 뒤에 사후처리적인 방식으로 들어온 것은 결코 아니며, 단순히 하나님께서 죄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자 선포하시는 것으로 끝나도 안 됩니다.

구약에서도 죄 사함에 대한 진술들이 풍성하게 있지만, 그것들도 복음은 아닙니다.


③ 복음은 우리에게 어떤 것을 행하라고 호소하지 않으며, 도덕적이며 선한 삶을 영위하라고 호소하지도 않습니다.

만약에 그렇게 선해지기 위해서 대단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좋은 뉴스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그 반대의 소식이 될 것입니다.


④ 그렇다면 복음이 무엇입니까?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복음은 사람들에게 스스로 구원하라고 권면하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의 방식으로 주어지며,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⑤ 복음은 우리가 들었던 것 중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좋은 소식입니다.

만일 복음이 세상에 임한 것 중에서 최대의 좋은 소식이거나 사람이 받은 것 중에서 가장 좋은 소식이 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자신의 죄에 대한 바르지 못한 인식을 가지고 있거나 현제의 자신의 모습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처럼 선하고 또 선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에게는 복음이 좋은 소식이 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떤 도움의 필요성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복음을 들어도 감격해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쁨이 부족하다면 우리는 먼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기쁨이 부족한 이유는 죄의 결과들을 인식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죄에 따른 형벌을 인식할 때에만 복음의 좋은 소식의 위대함과 영광을 알고, 그 복음의 충만함으로 인도되기를 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⑥ 복음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신 것으로서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하여금 우리를 대신 하여 죄를 삼으셨습니다.

복음은 성부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그에게서 나왔으며, 그것을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이루셨으며, 성부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⑦ 우리가 구원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본능적으로 성부의 영광의 차원에서 생각하는 것은 마땅합니다.

우리는 구원으로 말미암아 더 기쁠 수도 있고 어떠한 죄를 짓지 않을 수도 있으며, 이런 상태가 된다는 것은 매우 훌륭한 일이며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들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만일 구원을 거기에서만 머물러 생각하고 아버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구원의 개념은 잘못된 것입니다.

구원의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상태와 조건으로 인도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구원의 결과로 주어진 영광이나 체험과 같은 간증거리들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4. 거룩한 글 - 하나님의 말씀

바울은 2절에서 복음은 전에 “약속된” 것이라고 말하며, 자신은 그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로 부르심을 입은 자라고 말합니다.


①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으로, 그런 의미에서 보면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② 바울은 행13:23과 행17:2에서 설교할 때에 복음은 하나님께서 수세기 전부터 약속해 오셨고, 성경에서 미리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③ 복음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처음으로는 창3:15에서 진술하셨고, 창세기 17장에서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에서, 그리고 그 약속은 계속하여 야곱을 통하여 되풀이 되어지며(창49:10), 그리고 민24:17에서와 삼하7장, 그리고 말라기 3:1에서 그런 다음 세례 요한에 관하여도 예고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 상세한 예언의 내용들은 매우 놀라운 것입니다.

그리고 다니엘서에 나오는 상징들을 잘 종합하여 따져보면 예루살렘 도성의 멸망과 회복의 때를 지시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데 다시 말하면 정확한 시기가 예언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렘23장, 삼하7장, 이사야7장, 미가5:2, 신18:15, 사53,42,49,52장, 단9:24, 슥9:9,12:10, 시16,22편에서 다 그 예언을 말하고 있습니다.


5. 복음의 계속성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일들을 하기 위해 미리 약속하신 자기의 아들을 보내셨는데, 하나님께서는 즉각 단번에 이 모든 일을 하실 수 있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이러한 모든 구약의 역사가 필요했는지에 대해 최종적으로 완전한 답을 찾아내려는 시도를 할 수는 없으며 그것에 대하여 완전한 답을 알 수는 없지만 그에 상당하는 답변이 제시 될 수 있습니다.


① 죄의 깊이를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방식이며 인간을 폭로시키시는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죄는 단순히 어떤 가벼운 불순종의 행동이나 실수가 아니라 무섭고 끔찍한 결과를 가져오는 실로 무서운 영혼의 질병이 되는 죄의 실상을 가르치시는 하나님의 방식입니다.(요5장, 고후3장)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할 수 있는 대로 자신을 구원하도록 모든 기회를 제공하시지만, 그들이 아무리 애쓴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이룰 수 없음을 최종적으로 입증하십니다.(율법이 그 예)


③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만물에 대한 자신의 주권을 보여주고, 자신의 절대적 통제권과 자신의 최종적 권위를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④ 이제 우리는 또 다른 문제로 나아가게 되는데 사도는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복음을 말하고자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는 말을 합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새롭고 이상한 과거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 아님을 증거하고, 에덴동산에서부터 발원한 하나님의 장엄한 목적임을 보여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 내내 그것을 해 오셨으며 복음은 같은 연속극에 등장하는 극 중의 주인공 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공로를 근거로 해서 의롭다고 하신 적이 단 한번도 없으시며, 언제나 믿음에 근거하여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도 같고, 목적도 같고, 구원도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식대로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구약의 모든 역사는 그 방면에서 참 놀랍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구약 성경에 익숙해지는 것처럼 위안을 주고 용기를 주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방식에 우리를 절대적으로 복종시키고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의 상태로 인하여 고민하지 말아야 합니다.

구약성경으로 돌아가서 성경의 위로와 위안을 받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날 세상에서 일어났던 어떤 일들 때문에 괴롭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은 판단할 수 없고 측량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수세기 동안 잠들고 계신 것 같지만 여전히 존재하셔서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오직 그분께 감사함으로 존귀와 영광을 돌릴 일 밖에 다른 것은 없습니다.

출처 :skdmltkfkdwnsla님의 플래닛입니다. 원문보기 글쓴이 : 하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