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로이드 존스

마틴 로이드존스와 함께 한 예기치 못한 행로/Sinclair B. Furguson / 서문강 역

새벽지기1 2016. 2. 5. 07:11



제가 제 개인의 간증을 하는 것을 용서하시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어느 날 밤 워싱톤 시에서 강의(講義) 약속을 지키고 늦게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저의 집에 당도하기 한 시간 전쯤 해서 남은 마지막 행로에 힘을 북돋아줄 벗을 만날 수 없을까 하는 기대감에서 라디오를 켜 기독교 방송 채널에 맞추었습니다. 그런데 아니 이게 웬일입니까! 대번에 알아 볼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겠어요! 그것은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목소리였습니다. 아, 글쎄 1996년 미국에서 말입니다! 마치 저는 그저 대단치 않게 생각하고 산을 올랐다가 그만 앞에 펼쳐진 장엄하고 감동적인 장관 앞에 어쩔 줄을 모르는 사람과 같은 그런 심경이었습니다. 아니면 오랫동안 잃어버리고 있던 진귀품(珍貴品)을 전혀 예기치 못하고 있다가 발견한 사람 같이 느꼈습니다. 

제가 흥분하는 것을 좀 설명해 드릴 필요가 있겠네요. "흔들리는" 60년대에 아이였던 제가 로이드 존스 박사님의 설교를 처음 들은 것은 16세 때 였는데, 그 때 저는 어린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두 친구가 글래스고의 성 앤드류 홀(St. Andrew Hall)에서 그 분이 설교하는 것을 들었는데, 용(Dragon)의 멸망에 대한 설교였다고 합니다. 그 친구들이 제게 이런 말을
들려주었지요. 설교를 하는 동안에 자기들은 마치 그 건물 자체가 자기들 옆에서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는 거예요. 저는 그 때 그러한 설교를 들을 기회가 앞으로 주어진다면 다른 일이 무엇이라도 미루어 놓고 그 설교를 들어야겠다고 결심했지요! 로이드 존스 박사님의 설교를 듣는 것이 다른 여러 특권들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제가 어떻게 상상이나 했겠어요. 

목사님과 제가 개인적으로 교제를 가지게 되었는데 그 일을 제 편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목사님이 먼저 시작하신 것이에요. 제 생각으로는 바로 그것이 다른 이들을 격려하시는 목사님의 전형적인 방식이 아니었나 합니다. 목사님으로부터 처음 편지를 받았을 때에 어찌나 예기치 못한 일이었던지 어안이 벙벙하더군요! 그리고 나서 후에 저는 그 분을 만나 뵈었어요(제가 수줍게 그 분 앞에 신분을 밝히니 온화한 미소를 제게 보내셨어요 만난 후에도 그 미소가 제 기억 속에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있어요). 그 후에 그 분과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들이 여러 차례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위압적으로 그러면서 감격적인 체험이 제게 주어졌는데, 제가 하는 강론을 듣는 이들 속에 그 분이 끼여 계셨던 것입니다(마치 그 분은 갈증난 사람 같이 성경강해를 들이키는 것 같았어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터득한 웅변을 가지고 듣는 이들에게 그렇게 자연스럽게 설교하는 이를 저는 만나 본 적이 없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그를 설교자로 지으신 것이 분명합니다. 그가 소천하기 아주 얼마되지 않는 때에 글라스고에서 시편 2편에 대하여 설교하는 것을 들었는데, 얼마나 감사한지요 마치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진해 가는 힘을 다 동원하여 우리더러 "아들에게 입 맞추라"고 외치게 하신 것 같았습니다. 저는 언제나 감사합니다. 저 보다 젊은 분들이 그가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것을 듣는 이 마지막 체험을 하게 된 것을 말입니다. 

저는 차를 몰고 가면서 내내 에베소서 3:18-19의 그의 감격적인 강해를 들었는데, 내 마음에 여러 가지 추억들이 한꺼번에 용솟음쳐 홍수같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글래스고에서 그의 설교를 듣던 그 날 밤 이후 그의 목소리는 지나간 과거의 추억에 불과하였었습니다. 물론 녹음 테잎으로 된 것은 들었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 95번 고속도로 상에서 (지상에서 제가 가장 싫어하는 곳 중 하나임) 그리스도의 사랑의 그 압도적인 부요함을 누리고, 그러한 설교를 듣는 예기치 않는 감격을 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롤스 로이스를 타고 가는 사람이 느끼는 그 승차감도 그 보다 더 행복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로마서와 에베소서의 강해들을 읽은 지가 너무 오래되었군요!

(진리의 깃발 1997년 2월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