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박윤선박사

말씀과 기도의 사람 박윤선 목사

새벽지기1 2016. 1. 8. 02:18

내가 물려받은 신앙유산 / 김명혁 목사 (강변교회) 3
2003년 07월 23일 (수) 00:00:00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김명혁 목사 / 강변교회

 

 

 

   
   ▲ 생전의 박윤선 목사
지난 10여 년 동안 나의 신앙생활과 교수 및 목회 사역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분은 박윤선 목사님이시다. 내가 총신대학의 교수로 봉직하고 있던 1979년 3월 박윤선 목사님께서 총신대의 신학원장으로 부임하셨다. 그 이후 나는 총신대에서 1년 7개월 간 그리고 합동신학교에서 7년 7개월 간 박 목사님을 가까이 모시고 함께 일할 수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특별한 은혜였다.

 

박윤선 목사님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가장 좋아하는 목사님이 되셨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나 박 목사님과 상의하곤 했다. 박 목사님도 나를 퍽 좋아하셨다. 박 목사님은 시간에 상관없이 나에게 전화를 거시고, 하시고 싶은 말씀을 하시곤 했다. 나는 박 목사님의 입장에 언제나 동조했다. 따라서 나는 박 목사님과의 친근한 관계 때문에 불필요한 오해를 받기도 하고 반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박 목사님이 언제나 좋았다. 신앙적 감화와 인격적 감화 때문이었다. 박 목사님은 한 마디로 하나님만 아신 분이었고 하나님께 붙잡혀 사신 분이었다.

박 목사님은 금욕주의자는 아니셨지만 다른 일에 시간과 마음을 빼앗기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별세하시기 얼마 전 안모 목사님이 박 목사님을 즐겁게 해 드리기 위해 서울대공원에 모시고 간 일이 있었다. 원숭이나 호랑이를 보여드렸지만 박 목사님은 그것들에는 별 관심을 나타내지 않으시고 다른 이야기만 하시는 것이었다. 교수님들이 함께 모일 때 피차 농담하는 것을 박 목사님은 별로 좋아하시지 않았다.

 

   
교수 세미나를 할 때도 언제나 기도원으로 가기를 원하셨다. 그의 마음이 항상 하나님께 가까이 붙어 있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미국 유학시절, 친구 되시는 방지일 목사님에게 편지를 하시곤 했는데 외로움 가운데 강한 우정을 느끼셨던 박 목사님은 이와 같은 편지를 쓰셨다. “…나는 웬일인지요. 방제(方弟)를 생각하고는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주님께 대한 회개의 고백으로 바뀌었다. “나는 우정에도 내가 주에게 끌리지 않고 한갓 우정이나 향정에 끌리었던 것입니다. 주를 떠나서 우정으로, 주를 떠나서 향정으로 이는 사탄의 유혹이었나이다.”

 

하나님께 붙잡힌 박 목사님의 삶은 자연히 기도생활과 말씀 연구 생활로 나타났다. 박 목사님은 기도를 생활화하신 분이었다. 기도를 쉽게 하신 분이 아니라 수고스럽게 하신 분이었다. 총신에 계실 때 매일 새벽, 택시를 타고 총신에 오셔서 뒷산에 올라가 2~3시간씩 기도하시는 모습을 한 6개월 동안 옆에서 목격한 일이 있다. 그때 나도 박 목사님을 따라 새벽에 총신 뒷산에 올라가곤 했다.

박 목사님은 어디에 가실 때나 또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시간에도 간간이 “주여, 주여!”라고 그의 영혼이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곤 했다. 영혼의 호흡소리와 같이 들렸다. 나는 마지막 1주일간 병상에 계신 박 목사님을 매일 뵙곤 했는데 그때야말로 기도로 일관한 기간이었다. 바로 그때 산에 가서 기도하다가 죽고싶다고 고백하시기도 했다. 그는 결국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소서”라고 부르짖으며 주님 품에 안기셨다. 박 목사님은 기도를 생활로 가르쳐 주신 분이었다.

 

하나님께 붙잡힌 박 목사님의 삶은 평생토록 말씀을 연구하는 주경신학자의 삶으로 나타났다. 박 목사님은 성경을 하나의 성경신학적으로 체계화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말씀 한 마디 한 마디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먹고 말씀의 깊은 뜻을 발견하는 것을 기쁨으로 삼았다. 따라서 그의 설교에는 항상 새로운 영감과 통찰력이 나타났다. 박 목사님은 말씀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임을 실제로 가르쳐 주신 분이었다.

하나님께 붙잡힌 박 목사님의 삶은 또한 겸손과 진실의 인격으로 나타났다. 그의 얼굴에는 항상 잔잔하고 순박한 소년의 미소가 깃들여 있었고 가식이나 꾸밈을 모르는 진실이 풍기고 있었다.

 

성역 50년 기념 논총을 증정받은 박 목사님은 “나는 83년 묵은 죄인이라”고 고백했고 임종 전에는 “세상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오해하는 소위 나의 의를 지워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호소하시기도 했다. 박 목사님은 종종 나의 손을 꼭 붙잡고 격려와 위로와 훈계의 말씀을 주시곤 했다.

“김 목사, 마음에 기쁨을 잃으면 안 돼!”, “힘을 내!”, “강의 준비를 더 잘해야 돼!”, “주님을 바라봐!”

겸손과 진실을 찾아보기 힘든 오늘날 그것을 몸으로 실천해 보여주신 분이 바로 박윤선 목사님이었다.

끝으로 박 목사님은 개혁주의적 삶을 몸소 실천하신 분이었다. 한국교회 안에 칼빈주의 또는 개혁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개혁주의라기보다는 근본주의 또는 보수주의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박 목사님은 한국교회 안에 개혁주의 신앙이 무엇이며 개혁주의적 삶이 무엇인지를 가장 분명히 보여주신 분이었다.

칼빈주의 신학은 하나의 신학 체계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 중심적 뜨거운 신앙의 원리로 나타남을 보여주셨고, 소극적 분리주의가 아니라 적극적 포용과 교제의 삶인 것을 보여주셨으며, 세상사에 무관심한 반문화주의가 아니라 구제사역 등에 적극적 관심을 나타내는 문화 변혁주의인 것을 가르쳐 주셨다. 나는 박 목사님 때문에 개혁주의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고, 개혁주의 때문에 박 목사님을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