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기타

갈대는 무엇이며 상함은 무엇인가 / 리차드십스

새벽지기1 2015. 12. 3. 11:30

 

예언의 영을 날개 삼아 그 자신의 시대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하신 시대로, 시간을 초월하여 옮겨간 선지자 이사야는 예언의 눈으로, 그리고 믿음의 눈으로 현존하시는 그리스도를 생생하게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로써, 하나님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들의 영적 시야에 그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사42:1)

 

이 부분은 마태가 그의 복음서에서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된 것으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2장 18절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첫째, 그리스도의 소명(召命)

둘째, 소명의 수행

 

1. 그리스도의 소명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여기서(마12:20) 그리스도를 그의 의로운 종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그 어느 사역보다도 위대한 사역을 감당하신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리스도는 선택되고 발탁되신 종입니다. 그는 아버지께로부터 부여받은 임무에 대해 모든 일을 수행하고 감당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한 우리의 구원 사역을 그의 가장 위대한 일로 여기신다는 사실, 그리고 그 일에 자신의 사랑하는 독생자를 주셨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달콤한 사랑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주의와 감탄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 올리기 위해 본문 초두에 '보라'라고 외치십니다.¹시험의 때에 불안한 마음은 현재 그들이 당면한 목전의 상황만을 바라보게 되는 까닭으로 상처 입은 심령의 안식처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보기 위하여 특별히 각성될 필요가 있습니다.

시험의 때에는 다른 그 무엇이 아니라 참된 놋뱀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그분은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참 어린 양이십니다(요1:29). 우리가 바라보는 바, 우리를 구원하는 이 대상(object)은 우리 영혼에 위로를 가져다 주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그리스도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 아버지의 권위와 사랑을 바라볼 때 더욱 그러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중보자로서 행하시고 고난당하신 모든 일들을 통해 우리는 그분 안에서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고후5:19).

우리의 죄로 인해 침해를 당하신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구원의 사역을 그처럼 기쁘게 여기셨다는 사실은 우리의 믿음에 얼마나 큰 힘이 됩니까!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이 그리스도에게 있고 그가 그리스도를 기뻐하시듯이,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생각하는 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됩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 자신뿐만 아니라 신비적 그리스도²에게도 있는 것입니다. 즉, 그 사랑은 그리스도 전부에게 베풀어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리스도와 우리를 동일한 사랑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영접하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입시다. 우리의 믿음을 우리의 구세주 위에 안전하게 건축합시다. 그분은 너무나 고상한 임무를 지니신 부이십니다.

여기서, 우리의 위안을 위한 삼위(三位) 하나님의 달콤한 일치를 봅시다. 성부께서는 그리스도에게 임무를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그것을 공급하시고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자신은 중보자의 직무를 수행하셨습니다. 우리의 구속은 삼위일체의 세 인격 모두의 연합에 근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소명의 수행에 대해서

 

그리스도의 소명을 시행하는 데 있어서, 그것이 왕자들이 흔히 그러하듯이 화려한 행차로 요란한 소리와 먼지를 일으키면서 가 아니라 겸손한 모습으로 이루어질 것임이 여기에 규정(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마12:19)

 

사실 그의 목소리는 들려졌습니다. 어떤 음성이었습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그는 소리높여 외쳤습니다. 무엇이라고 외쳤습니까?
"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사55:1)

 

그리스도의 임하심은 겸손하였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온유한 것이었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성경에 기록된 것입니다.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여기서 우리는 세 가지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 그리스도께서 다루셔야 할 자들의 상태

① 그들은 상한 갈대였습니다.

② 그들은 꺼져 가는 심지였습니다.

 

둘째, 그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태도.

그분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십니다. 여기에는 문자적인 뜻보다 더 큰 뜻이 담겨 있습니다. 즉 그분은 그들을 소중히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셋째, 그분의 이 같은 동정심 있는 돌보심은 '심판하여 이길 대까지' 변치 않고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즉, 그들의 심령 속에 시작된 이 은혜의 역사는 그것이 완성에 이를 때까지 모든 저항하는 죄의 부패성을 극복할 것입니다.

 

[본문의 첫째 주안점]

 

그리스도께서 다루셔야 할 사람들의 상태는, 그들이 상한 갈대이며, 꺼져 가는 심지라는 것입니다. 나무가 아니라 갈대입니다. 그것도 온전한 갈대가 아니라 상한 갈대입니다. 교회는 약한 것으로 비유되고 있습니다. 즉, 새들 중에서는 비둘기요, 나무 중에서는 포도나무요, 들짐승들 중에서는 양떼요, 사람 중에서는 더 연약한 그릇인 여자에 비유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상한 갈대와 꺼져 가는 심지에 비유되고 있습니다. 회심하기 이전에 그들은 상한 갈대입니다. 또한 회심한 후에도 종종 그렇습니다.

 

1) 상한 갈대는 일반적으로 예수님께 도움을 받고자 나아왔던 사람들처럼 어떤 비참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2) 그는 그 비참함 때문에 그 비참함을 야기시킨 죄를 깨닫게 된 사람입니다. 죄가 아무리 자신을 위장하려고 해도 상함과 부서짐은 죄의 결과로 나타나고 말기 때문입니다.

3) 그는 죄와 비참함으로 상하기까지한 민감한 사람입니다.

4) 그는 스스로를 구원할 힘이 없음을 알고, 다른 이로부터 도움을 받고자 하는 끊임없는 욕구에 이끌리게 됩니다. 그가 가진 어떤 희망은, 비록 그가 담대하게 자비를 요구하지는 못하지만, 그를 일으켜 자신을 그리스도에게로 향하게 합니다.

 

이 희망의 불씨는 타락된 본성에서부터 나오는 의심과 도루염에 의해 저항을 받으면서 그로 하여금 연기를 내며 타는 불꽃이 되게 합니다. 그래서 이 두가지 '상한 갈대'와 '연기를 내며 타는 불꽃'이라는 표현이 함께 쓰여 영적으로 가난하고 고통당하는 사람의 상태를 묘사해 주는 것입니다.

 

역자주 ) 한글 개역 성경의 번역으로는 '꺼져 가는 심지'인데 영어로는 smoking flax 즉 '연기를 내며 타고 있는 불꽃'을 의미합니다. 한글 번역은 그 심지가 꺼져 가는 것을 주로 의미하는 것으로 느껴지지만 영어로는 비록 연기를 내며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불꽃이 아직도 피어 있다는 점에 강조를 두고 있습니다. 한글 번역과 영어가 담고 있는 뉘앙스가 반대되고 있어 여기서 한글 그대로의 번역이 곤란합니다. 그러하기에 이하에서 '연기를 내며 타는 불꽃'이라고 번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