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1장
by 김홍전
오늘은 우리가 이사야를 생각하려고 합니다. 구약의 시가들이나 예언서는 구약의 역사서나 신약의 복음서, 서신서에 비해 비교적 접하는 시간이 적고 그냥 읽고 지나가는 때가 많습니다. 이사야에 대해서도 비교적 다른 부분보다도 잘 아는 내용은 아닙니다.
구약 시대의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사람에게 전해 주는 임무를 맡은 사람입니다.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는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고 직설적으로만 하지 않고, 어떤 사기(史記)를 가지고 이야기도 하고 혹은 자기의 말로 책망하는 것같이 맹렬하게 질책하기도 하고, 또 앞일을 예언하기도 합니다.
예언이라 할 때 거기에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말한다는 부분이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예언의 전부는 아니고 예언이라고 할 때에는 먼저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걸쳐서 어떤 제목을 취해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 예언자(預言者)라 하는 말을 한문으로 쓸 때에도 맡을 예(預)자를 쓰는 것이지 미리 예(豫)를 쓰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말씀을 받아 가지고 저축해서 그것을 가지고 얘기한다 하는 의미가 더 강한 것입니다. 장래를 미리 알려 준다는 의미가 주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지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말씀을 잘 맡아서 선지자는 전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신의 감동으로 명령을 그대로 받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또한 자기의 판단과 깨달음을 통해 이것이 분명히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알려 주도록 하신 것이다 하는 결론과 확신 가운데서 움직이는 것 또한 많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직접 신정(神政)을 하시겠다는 뜻으로서 뽑아내신 민족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처음부터 명확히 민족 사명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보통 이 세상의 한 국가를 놓고 너희 나라가 무엇을 위하여 이 세상에 있느냐 할 때 ‘우리는 영구하고 역사적인 것, 전 국민이 과연 그렇다고 수긍하며 따라갈 만한 사명을 갖고 있다’고 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다만 각각 자기가 원하는 대로 ‘나는 이것을 원한다, 이렇게 되기를 바란다, 이런 뜻으로 살고 있다’고 얘기하는 정도입니다. ‘우리 민족 혹은 국가의 역사적 사명이 이것이니까 같이 가자’ 하고 무엇을 제시할 만한 능력과 초연성과 신비력을 가진 사람도 없는 것이고, 그것을 강제로 제시를 한다고 해서 국민이 충분히 이해하고 확신하고 그렇게 밀고 나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점에 있어서 어떤 한 국가나 한 사회가 무엇을 사명으로 한다할 때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지 항구한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 민족은 고대의 여러 민족과 여러 족속과 여러 나라가 있는 시대에 처해서 자그마한 군소 왕국의 하나로서 활동을 했습니다. 사사의 시대는 길지도 않았고 역사 위에 어떤 성격을 크게 끼친 바는 없었습니다. 주위에 영향을 미친 것이 적었습니다. 그건 그 시대의 성격상 불가피한 일이기도 하였습니다.
그 후 왕국의 시대라는 것도 긴 역사는 아니었으나 적어도 수백 년은 지속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추산을 해서 사울이 기름 부음 받고 왕으로 선택된 것을 가령 주전 1040년이라고 정할 때, 그가 실제로 왕으로서 통치권을 행사하고 또 백성들에게 그렇게 인정을 받은 시기는 대개 1028년경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처음부터 왕국의 성격과 목표를 전혀 모르고 있다가 일단 자기가 왕권을 움켜쥐자 그저 왕권 신장을 위해서 혈안이 되었습니다. 거기에 다윗 같은 경쟁자가 생긴 것을 보고 죽여 없애려고 독한 시기와 무서운 증오를 가지고 맹렬하게 찾았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울 시대에는 그 나라 역사에 하나님이 내리신 바 특수한 사명을 반성하고 혹은 깊이 생각해서 국민이 각성한 위치로 올라갈 만한 문화적인 활동의 여지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이 다윗이지요. 다윗은 처음에 사울의 군대 장관으로 가장 중요한 신하이면서 사울의 딸 미갈의 남편으로 여러 가지로 훈련을 받고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는 사울이 죽자 곧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먼저 유다 지파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주전 1010년의 일입니다. 그래서 헤브론에서 7년 반 유다 사람들을 다스렸고 사울의 집을 그대로 밀고 나가던 사람들이 다 없어진 다음에 비로소 이스라엘 열 지파가 다윗을 추대함으로써 이스라엘 통일 국가의 왕이 되었습니다. 이때가 대개 주전 1003년 쯤 입니다.
이렇게 해서 다윗이 역력히 33년을 전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다윗이 통일왕국의 왕이 되어 곧 여부스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던 큰 요새 예루살렘을 공격해서 점령해 가지고 다윗 성을 만들고 거기를 수도로 해서 통일왕국을 다스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이란 나라를 세우고 그 민족을 구별하시고 그리고 이제 국가의 제도를 이러한 왕국이라는 형식으로 취하게 하셨느냐 할 때 다윗은 왕으로서 자기의 민중에 대하여 그리고 하나님께 대하여 지고 있는 사명과 책임이 막중하다는 것을 의식한 사람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통치자로 서 있는 것이 아니고 통치자이신 야훼 하나님의 부리는 종이라는 사실을 다윗은 확실히 알고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왕은 그 나라 백성 가운데 머리되는 하나님의 종이요 관료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이 성격 즉 신정정치(Theocracy) 혹은 신권정치를 명확히 드러내기 위해서 왕은 어떠해야 할 것인지를 자기가 전범으로서 보인 사람이 다윗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그는 사사(事事)에 국가를 경영하는 일에나 전쟁을 하는 일에 하나님께서 감화하시고 지시하시고 인도하심을 받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충실하게 살아가려고 한 사람입니다. 그가 비록 사생활에서 넘어진 일이 있고, 그로 말미암아 공사 간에 큰 타격을 받는 일이 있었다 할지라도 결국 그의 생활과 존재 의의를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평 할 때 그는 공이 많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아 주실 만한 여러 가지 열매를 맺은 왕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 그 사람 하나가 그런 왕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시내 산에서 한 민족으로 형성되어 민족 생활을 경영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시내 산에서부터 광야를 향하여 나간 것인데 가나안 복지를 향하여 들어가려고 갔으나 이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큰 뜻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그저 노예 상태에서 자유를 얻었다는 기쁨으로 저희들이 자유롭게 나라를 세워서 저희도 한번 독립국가로 즐겁게 살아보겠다는 가장 세속적인 생각 가운데만 젖어 있었습니다. 그 넓은 황야를 지나려니까 모든 것이 너무 고생스러웠습니다.
그것을 못 견디어 마침내 모세에 대해서 반항을 하고 반역을 일으키려고까지 하였습니다. 다른 지도자 하나를 두어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그들은 민족정신이나 이상에 있어서 너무나 목전의 찰나주의와 현실주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요원한 것을 바라보고 견디거나 큰 것을 생각할 줄을 모르고 나갔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그 거룩하신 계획에 따라서 나가려고 않고 하나님을 반역하고 원망하고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자들은 광야에서 다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속에서 이 백성의 행위가 옳지 않다고 맹렬하게 분노한 두 사람이 있었지요. 여호수아와 갈렙입니다. 물론 모세는 지도자니까 제외하면 일반 백성 가운데 이 두 사람만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까닭에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사십 년 광야 생활에서 스러졌습니다. 애굽에서 나왔던 사람들 가운데 이 두 사람 이외에 하나도 남지 않고 광야에서 난 세대가 계속적으로 모세의 인도를 받아서 에돔 땅을 지나서 저 요단강 동편의 여리고 맞은편까지 나갔습니다. 그리고 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렇게 가나안으로 들어가서 나라를 세우고 민족 생활을 구체적으로 경영해 나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국가를 세웠다고 하지만 당장에 왕국을 세운 것은 아니고 그에 앞서 수백 년 사사 시대를 지냈습니다. 몇 세기에 걸친 사사 시대를 보낸 후 백성들은 하나님의 신정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주위 여기저기서 촉생하는 세상 왕국들의 형식에 점점 눈이 가고 마음이 솔깃해서 왕국을 세워달라고 하나님 앞에 무리한 요구를 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왕국이 되었든지 그렇지 않으면 별다른 국체를 가지든지 이스라엘은 다른 나라에는 없는 독특한 국민적인 성격을 가지고 역사의 길을 걸어가야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출애굽기 19:5-6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왜 내가 너희를 뽑아냈다’ 하는 것을 보이신 부분이 나옵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 이 세상에서 저희가 스스로 주인 노릇 하는 그런 나라로 사람들이 알지 않고 분명히 하나님이 이 백성을 특별히 꼭 쥐고 계신다는 것이 드러날 것이고 -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그들의 임무 가운데 하나가 이 세상 나라와 하나님과 사이에 제사장으로 서 있는 나라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나라 백성들의 전체의 그 기준과 다른 말로 거룩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목적을 위하여 구별되어 있고 도덕적으로는 순일하여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두려워하고 경외하여 섬기는 백성이라는 말입니다. 율법을 주시기 전에 한 전문(前文)과 같이 이것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에도 마찬가지로 해당합니다. 사도 베드로가 그 편지에 말하기를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해서 그 모든 내용이 다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서 그렇게 된 것이다 하는 얘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오이코노미아로서 가지고 있던 그 사명과 해야 할 그 목표, 국민적인 이상 그것이 오늘날에는 그리스도 교회에 그대로 다 있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너희를 선택해 놓았었는가 하면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건져내어서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와 같은 민족 사명을 주신 동시에 그렇게 거룩한 나라, 제사장 나라가 되기 위해서 그들에게 또한 율법을 주셨습니다. 이 율법을 행하고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바로 깨달아서 이스라엘 사회는 그러한 경지에 도달해서 살라 하신 것입니다. 율법의 내용은 그저 고매한 이상론을 세운 것이 아니라 매일 생활에서 현실적으로 어떻게 하라는 실정법으로서 의미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율법은 사회적인 목표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번문욕례로 잡아 늘여서 이래라 저래라 하고 사람에게 굴레를 씌우는 것이 아니라 어떤 목표를 향해서 어떤 경지를 향해서 이 단계를 징검다리로 하고, 사다리로 삼아 올라가거라 하고 주신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율법의 목적에 비춰서 사람의 잘잘못을 평가할 것이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가지고 있던 표준 즉 율법 그 자체를 지켰는가 못 지켰는가 하는 것으로 크라이테리아(criteria)를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율법이 무엇을 요구하고 무슨 정신을 요구했느냐 하는 것이 크라이테리아가 되어서 찾아야 할 것이었습니다. “너희의 의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보다 낫지 아니하고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것으론 천국을 형성할 수 없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그러한 귀한 은혜를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그 본의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이방 나라의 종교의식과 찬란한 문화에 휩쓸려 따라갔습니다. 자기네의 가장 우수하고 숭고한 민족사명이나 정신에 대해서는 깨닫지 못하고, 항상 주위에 있는 다른 나라의 종교의식과 그 의식에 부대하는 찬란한 장식들을 큰 의미가 있는 것으로, 훌륭한 문화로 생각해서 따랐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상을 섬긴 일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을 보내서 그때마다 그것을 책망하시고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올 하나님의 징계와 고통이라는 것을 정신 차려서 생각하고 하나님께 속히 돌아오도록 하신 것입니다. 징계를 받아야만 깨닫는 우매성이 거듭거듭 나타나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사람들은 선지자였습니다.
선지자들 가운데에도 왕자라고 할 만한, 문학적인 스타일에 있어서 다른 사람에 비견할 수 없는 높은 경지에서 아주 다채다능한 표현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반역과 죄악을 타매하고 회개를 촉구한 이가 이사야 선지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뽑아내신 그 큰 원칙과 목적과 또 하나님이 그 사람들을 깨닫게 하시리라는 거룩한 경지를 구체적으로 바라보면서 그걸 크라이테리아 삼아서 여러 가지 스타일을 써서, 여러 가지 수사법을 써서 아주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을 쓴 것이 이사야입니다. 특별히 이사야는 종합적이고 유니버셜(universal)한 내용을 가진 예언서라는 점에서 쌍벽이 없습니다. 거기서 우리가 주의해서 볼 것은 하나님께서 거룩한 구약의 교회를 세워 놓으시고 그들에게 요구하신 것은 무엇인데 그들의 현실은 어떻다 하는 것입니다. 다른 예언서에서도 그렇지만 특별히 여기서 그것을 보게 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주전 8세기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수명도 상당히 길었던 사람으로 대개 그가 예언 활동을 하기는 한 반세기 쯤 걸쳐 하였습니다. 그가 활동한 시기가 그가 살고 있던 남방 유다 나라의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임금 시대였다고 본문의 맨 처음에 나와 있습니다. 다윗을 제1대 왕이라고 하면 - 그전에 사울이 있었어도 왕국이 제대로의 의식과 사명과 성격을 띠기 시작한 것이 다윗 왕국부터인데 그때부터 계산해서 내려오면 - 웃시야는 제 11대 임금이고 요담은 12대 아하스는 13대이고 히스기야는 14대입니다. 대략 연대로 볼 것 같으면 웃시야 B.C. 787년서부터 히스기야 시대 B.C. 697년까지입니다. 그러나 이사야가 활동한 것은 B.C. 745년경부터입니다. 아마 이스라엘 사람들이 신성한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하려면 한 30이 되어서 부르심을 받고 일을 하게 되는 까닭에 약 30년 준비하고 수양하고 했다면 주전 745년부터 약 반세기에 걸쳐 예언자의 활동을 한 사람입니다.
그가 난 곳이 어디인지 명확하게 몰라도 대개 예루살렘에서 난 것 같고 유대 사람들의 전설, 탈무드에 의하면 그는 웃시야 왕의 사촌이라 합니다. 그러니까 이사야의 할아버지는 요아스 왕이고 그는 왕의 손자가 됩니다. 그게 전설이니까 우리가 잘 알 수 없습니다. 어쨌든지 이사야는 궁중에서 유대 나라의 사정뿐 아니라 북쪽 이스라엘 나라의 관계나 또 주위에 있는 여러 나라에 대한 소식을 그 시대에 가장 구체적으로 잘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 기구라는 것이 그때 시대에는 왕궁이었으므로 그런 것들을 잘 들어서 그의 정치적인 안목은 아주 높았고 또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생각이 깊었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예언은 여러 나라에 관해서 지적해 가면서 얘기를 할 만큼 다채로웠습니다.
유다 왕 웃시야나 요담과 아하스, 히스기야의 시대에서 우리가 주의해서 볼 것은 이사야가 예언을 쓸 때에 그 시대의 현실을 꼬집어 가지고 그 시대를 타매하고 얘기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가르쳐 주신 내용을 전하되 이스라엘 민족의 과거부터 지금까지 지내온 여러 가지 현실과 이스라엘 민족이 지고 있는 세계사적인 사명에 비추어 장차 나타날 것은 무엇인가 하는 큰 염려에 관한 것을 쓴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예언 내용이 한 시대에 국한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크신 경륜이 인간의 역사에 나타나는 어떤 한 부분의 중요한 흐름을 얘기한 것입니다.
이사야 1장을 우리가 쭉 읽으면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의 여호와께 대한 배은과 반역이라는 것이 첫째 확연히 드러납니다. 둘째는 그에 대한 하나님이 진노와 징책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필연적으로 사람의 세계에 고통이 오고 슬픔이 오는데 그 비참과 고통을 이사야는 아주 다채로운 표현으로 구사합니다. 은유법을 썼다 비유를 썼다 또 직설적으로 쓰기도 하면서 우리에게 얘기합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거기에 큰 소망을 표시했다는 것입니다. 신실치 못한 괴악한 자들에게 대해서 하나님의 분노가 임할 때 소멸할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의 그 거룩한 자비와 크신 경륜은 저들을 완전히 소멸해 버리시지 않고 거기에서 남은 자들을 구원하시고 건져 내시사 택하신 백성이 하나님의 법에 의해서 사죄함을 받고 다시 의롭다 하심을 얻어 순결을 회복하게 된다 하는 역사적인 큰 소망이 거기 또한 나타나 있습니다.
이사야와 동시대의 선지자로서는 미가가 있고, 북방을 향해 예언한 호세아가 있고, 또 아모스가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 같은 연배는 아니고 조금 앞서고 뒷 서고 그렇습니다. 아모스 같은 사람은 훨씬 더 젊은 사람입니다. 어쨌든지 동시대에 같이 예언 활동을 한 사람이 북방에는 호세아이고, 아모스는 남방 유대 산간의 드고아에서 목양자로서 살던 유대 사람이지만 그의 예언 활동은 늘 북방을 향해서 했습니다. 남방에서는 이사야와 미가가 있었는데 아마 때때로 만나서 얘기도 하고 그랬을 것입니다.
이사야는 그가 예언한 이 말씀을 한 마디로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본 이상이라” 하는 말로 표시했습니다. 여기서 ‘이상’이란 말은 독특한 심벌에 의한 무슨 환상을 보았다든지 할 때 쓰는 이상이란 말이 아니고 그 원어도 좀 달라서 ‘본다’ 하는 말입니다. 본다는 말에서 온 말이지만 크게 말할 것 같으면 ‘예언’이라 하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서 전해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다 하는 뜻과 비슷한 말입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보이시는 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그 시대에 있던 어떤 사실만을 꼬집은 것이 아니라 역사에서 취하고 또 현실에서도 취하고 또 어떤 것은 미래에 나타날 것을 취해서 크게 펼쳐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께서 교회를 땅 위에서 어떻게 해나가실 것인가에 관하여 깨닫게 하였습니다.
2절을 보면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증인을 세우되 하늘과 땅에게 ‘너희가 증인 노릇 좀 해라’ 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큰 탄식과 거의 호곡하는 소리와도 같이 ‘원 세상에 이 악을 하늘이여 좀 쳐다봐라 땅이여 이것 좀 들어봐라’ 하는 얘기입니다. 벌써 글 쓰는 것이 아주 사람의 심정 가운데 크게 울려오게 합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도 제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내가 양육했다는 이 자식, 이스라엘은 주인을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이라고 이름을 붙여준 이 백성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도다.” 이것이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이다 하면서 처음부터 이스라엘 백성의 반역과 배은을 맹렬히 타매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이사야의 탄식이 나옵니다. 문학적인 미라는 관점에서도 볼 때 변화가 많게 참 다채롭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리쳤도다.” 자 그러면 너희들은 괜찮으냐? 그가 여기서 탄식하는 것은 어찌하여 이런 위험한 짓을 하고 있느냐 그것입니다. 과거에도 너희가 그런 짓을 해서 매를 맞아서 흔적이 있는데 매를 좀 더 맞으려고 그러느냐?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네가 이미 얼마나 맞았는가 보아라. “온 머리는 병들어 있고 - 머리가 병들어 있다 말이오 -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가는 회초리들로 묶은 긴 채로 맞은 흔적 뿐이어늘 괸 고름을 짜낸 일이 없고 싸매 준 일도 없고 또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도 못하고 있지 않느냐.” 이렇게 은유법을 써서 다채롭게 표현 했습니다. 매 맞은 한 사람으로서 표시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일전(一轉) 해서 직설로 이야기합니다. “너희의 땅은 황무했고 너희의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의 토지는 너희의 목전에서 이방인에게 삼키웠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같이 황무했고 딸 시온만이 원두밭의 상직막같이 겨우 남았도다.” 앗수르가 와서 다 그렇게 해나갈 판입니다. 이것은 701년에 있던 일로서 이사야가 자기 사명의 거의 마지막 때, 노인이 되었을 때에 앗수르가 유다까지 쳐들어 와서 벌어지게 될 환난입니다. 앗수르의 강력한 힘은 이사야의 예언 활동 및 봉사의 생활에서 항상 대척적인 위치에서 북쪽 이스라엘 나라와 남쪽 유다 나라를 위협 했습니다.
앗수르는 아주 오래된 나라입니다. 주전 2000년경에 벌써 그 이름이 나온 나라입니다. 그렇지만 그 나라가 세계적인 제국으로 용명(勇名)을 떨치기 시작한 것은 B.C. 875년경부터인데 아주 잔혹한 그 백성들이 사위(四圍)의 나라를 막 집어먹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북쪽 이스라엘 나라가 아람 나라와 의논을 하여 남방 유다를 쳤는데, 이게 734년경 얘기입니다, 그만 어떻게 할 길이 없으니까 유다는 사자를 멀리 앗수르로 보내 가지고 원조를 요청했습니다. 앗수르의 속국과 같이 조공을 해주고 ‘저놈들이 우리를 못 치게 좀 도와주십시오’ 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니까 앗수르가 그 말을 듣고 대군을 몰고 와서 수리아와 이스라엘 나라를 쳤습니다. 그리고는 갈릴리 일대로 막 몰려 들어가 굉장히 많은 사람들을 잡아서 북쪽으로 가버렸어요. 이게 ‘갈릴리 포로 사건’ 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앗수르한테 그렇게 곤욕을 당한 뒤에 다시 쳐내려온 앗수르의 사르곤 임금에게 주전 721년에 완전히 망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다시는 회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 다음에 한 20년 지나서는 앗수르가 이번에는 유다까지 집어먹으려고 남쪽으로 몰려 내려와서 유다의 40여개 성읍을 궤멸시켰습니다. 여기 본문에 나오는 말대로 황무해 가지고 아무것도 없고 딸 시온 하나만 남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이 대목은 지금 예언으로 그렇게 얘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701년쯤에 이사야는 한 70세가 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체로 볼 때 반드시 그때 이후 늙어 가지고 썼다고 볼 이유가 없습니다. 그때 앗수르 사람들이 유다에 와서 그 많은 성읍을 친 다음에 사람들을 잡아 다시 앗수르로 갔습니다. 이것이 히스기야 때입니다. 얼마 후 앗수르는 다시 유다를 침공하였고 그때 히스기야는 하나님 앞에 간절히 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계시하셨고 그 계시대로 천사가 와서 18만 5천 앗수르의 대군을 도륙해 버렸습니다. 그 후에 앗수르 임금 산헤립은 본국으로 돌아가 20년을 더 살았지만 다시는 예루살렘으로 쳐내려오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받은 타격이 컸고 또한 하나님의 무서운 징벌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이사야 시대에 앗수르는 이런 관계에 있던 나라입니다.
이사야는 유다 왕국이 장차 앗수르에게 그렇게 될 것을 이야기하면서 “시온만이 에워싸인 성읍같이 겨우 남았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 장차 이렇게 무서운 사실이 올 것인데 너희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여전히 악을 행하고 있느냐? 이것이 이사야서의 서두에 있는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그는 여러 열국에 관해서도 많은 예언을 했지만 주로 항상 유다와 예루살렘 중심으로 얘기하였습니다. 유다와 예루살렘, 시온 즉 장차 올 메시아의 내림과 복음의 사실 또 메시아가 주실 바 그 은혜의 자리를 놓고 얘기합니다. 그런 만큼 복음적인 내용을 또한 많이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사야서를 다섯 번째의 복음서라고 하기도 합니다.
여기 이사야서 맨 처음에서 우리가 보는 바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 구약 교회로 하나님이 선택해서 그 크신 하나님의 경륜을 나타낼 오이코노미아가 자신의 성격과 존재 의의, 또한 신성한 사명은 느끼지 못하고 배반하고 반역하는 죄악으로 말미암아 받은 징계의 자리가 아물지도 않았는데도 계속적으로 악을 행하는 답답하고 슬픈 현실을 통곡하듯이 외치는 소리입니다. ‘하늘이여 이것 좀 보아라 땅이여 귀를 기울여 이 소리 좀 들어라’ 하는 슬픔과 통곡입니다.
by 김홍전
오늘은 우리가 이사야를 생각하려고 합니다. 구약의 시가들이나 예언서는 구약의 역사서나 신약의 복음서, 서신서에 비해 비교적 접하는 시간이 적고 그냥 읽고 지나가는 때가 많습니다. 이사야에 대해서도 비교적 다른 부분보다도 잘 아는 내용은 아닙니다.
구약 시대의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사람에게 전해 주는 임무를 맡은 사람입니다.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는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고 직설적으로만 하지 않고, 어떤 사기(史記)를 가지고 이야기도 하고 혹은 자기의 말로 책망하는 것같이 맹렬하게 질책하기도 하고, 또 앞일을 예언하기도 합니다.
예언이라 할 때 거기에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말한다는 부분이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예언의 전부는 아니고 예언이라고 할 때에는 먼저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걸쳐서 어떤 제목을 취해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 예언자(預言者)라 하는 말을 한문으로 쓸 때에도 맡을 예(預)자를 쓰는 것이지 미리 예(豫)를 쓰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말씀을 받아 가지고 저축해서 그것을 가지고 얘기한다 하는 의미가 더 강한 것입니다. 장래를 미리 알려 준다는 의미가 주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지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말씀을 잘 맡아서 선지자는 전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신의 감동으로 명령을 그대로 받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또한 자기의 판단과 깨달음을 통해 이것이 분명히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알려 주도록 하신 것이다 하는 결론과 확신 가운데서 움직이는 것 또한 많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직접 신정(神政)을 하시겠다는 뜻으로서 뽑아내신 민족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처음부터 명확히 민족 사명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보통 이 세상의 한 국가를 놓고 너희 나라가 무엇을 위하여 이 세상에 있느냐 할 때 ‘우리는 영구하고 역사적인 것, 전 국민이 과연 그렇다고 수긍하며 따라갈 만한 사명을 갖고 있다’고 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다만 각각 자기가 원하는 대로 ‘나는 이것을 원한다, 이렇게 되기를 바란다, 이런 뜻으로 살고 있다’고 얘기하는 정도입니다. ‘우리 민족 혹은 국가의 역사적 사명이 이것이니까 같이 가자’ 하고 무엇을 제시할 만한 능력과 초연성과 신비력을 가진 사람도 없는 것이고, 그것을 강제로 제시를 한다고 해서 국민이 충분히 이해하고 확신하고 그렇게 밀고 나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점에 있어서 어떤 한 국가나 한 사회가 무엇을 사명으로 한다할 때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지 항구한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 민족은 고대의 여러 민족과 여러 족속과 여러 나라가 있는 시대에 처해서 자그마한 군소 왕국의 하나로서 활동을 했습니다. 사사의 시대는 길지도 않았고 역사 위에 어떤 성격을 크게 끼친 바는 없었습니다. 주위에 영향을 미친 것이 적었습니다. 그건 그 시대의 성격상 불가피한 일이기도 하였습니다.
그 후 왕국의 시대라는 것도 긴 역사는 아니었으나 적어도 수백 년은 지속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추산을 해서 사울이 기름 부음 받고 왕으로 선택된 것을 가령 주전 1040년이라고 정할 때, 그가 실제로 왕으로서 통치권을 행사하고 또 백성들에게 그렇게 인정을 받은 시기는 대개 1028년경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처음부터 왕국의 성격과 목표를 전혀 모르고 있다가 일단 자기가 왕권을 움켜쥐자 그저 왕권 신장을 위해서 혈안이 되었습니다. 거기에 다윗 같은 경쟁자가 생긴 것을 보고 죽여 없애려고 독한 시기와 무서운 증오를 가지고 맹렬하게 찾았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울 시대에는 그 나라 역사에 하나님이 내리신 바 특수한 사명을 반성하고 혹은 깊이 생각해서 국민이 각성한 위치로 올라갈 만한 문화적인 활동의 여지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이 다윗이지요. 다윗은 처음에 사울의 군대 장관으로 가장 중요한 신하이면서 사울의 딸 미갈의 남편으로 여러 가지로 훈련을 받고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는 사울이 죽자 곧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먼저 유다 지파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주전 1010년의 일입니다. 그래서 헤브론에서 7년 반 유다 사람들을 다스렸고 사울의 집을 그대로 밀고 나가던 사람들이 다 없어진 다음에 비로소 이스라엘 열 지파가 다윗을 추대함으로써 이스라엘 통일 국가의 왕이 되었습니다. 이때가 대개 주전 1003년 쯤 입니다.
이렇게 해서 다윗이 역력히 33년을 전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다윗이 통일왕국의 왕이 되어 곧 여부스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던 큰 요새 예루살렘을 공격해서 점령해 가지고 다윗 성을 만들고 거기를 수도로 해서 통일왕국을 다스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이란 나라를 세우고 그 민족을 구별하시고 그리고 이제 국가의 제도를 이러한 왕국이라는 형식으로 취하게 하셨느냐 할 때 다윗은 왕으로서 자기의 민중에 대하여 그리고 하나님께 대하여 지고 있는 사명과 책임이 막중하다는 것을 의식한 사람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통치자로 서 있는 것이 아니고 통치자이신 야훼 하나님의 부리는 종이라는 사실을 다윗은 확실히 알고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왕은 그 나라 백성 가운데 머리되는 하나님의 종이요 관료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이 성격 즉 신정정치(Theocracy) 혹은 신권정치를 명확히 드러내기 위해서 왕은 어떠해야 할 것인지를 자기가 전범으로서 보인 사람이 다윗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그는 사사(事事)에 국가를 경영하는 일에나 전쟁을 하는 일에 하나님께서 감화하시고 지시하시고 인도하심을 받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충실하게 살아가려고 한 사람입니다. 그가 비록 사생활에서 넘어진 일이 있고, 그로 말미암아 공사 간에 큰 타격을 받는 일이 있었다 할지라도 결국 그의 생활과 존재 의의를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평 할 때 그는 공이 많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아 주실 만한 여러 가지 열매를 맺은 왕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 그 사람 하나가 그런 왕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시내 산에서 한 민족으로 형성되어 민족 생활을 경영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시내 산에서부터 광야를 향하여 나간 것인데 가나안 복지를 향하여 들어가려고 갔으나 이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큰 뜻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그저 노예 상태에서 자유를 얻었다는 기쁨으로 저희들이 자유롭게 나라를 세워서 저희도 한번 독립국가로 즐겁게 살아보겠다는 가장 세속적인 생각 가운데만 젖어 있었습니다. 그 넓은 황야를 지나려니까 모든 것이 너무 고생스러웠습니다.
그것을 못 견디어 마침내 모세에 대해서 반항을 하고 반역을 일으키려고까지 하였습니다. 다른 지도자 하나를 두어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그들은 민족정신이나 이상에 있어서 너무나 목전의 찰나주의와 현실주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요원한 것을 바라보고 견디거나 큰 것을 생각할 줄을 모르고 나갔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그 거룩하신 계획에 따라서 나가려고 않고 하나님을 반역하고 원망하고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자들은 광야에서 다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속에서 이 백성의 행위가 옳지 않다고 맹렬하게 분노한 두 사람이 있었지요. 여호수아와 갈렙입니다. 물론 모세는 지도자니까 제외하면 일반 백성 가운데 이 두 사람만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까닭에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사십 년 광야 생활에서 스러졌습니다. 애굽에서 나왔던 사람들 가운데 이 두 사람 이외에 하나도 남지 않고 광야에서 난 세대가 계속적으로 모세의 인도를 받아서 에돔 땅을 지나서 저 요단강 동편의 여리고 맞은편까지 나갔습니다. 그리고 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렇게 가나안으로 들어가서 나라를 세우고 민족 생활을 구체적으로 경영해 나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국가를 세웠다고 하지만 당장에 왕국을 세운 것은 아니고 그에 앞서 수백 년 사사 시대를 지냈습니다. 몇 세기에 걸친 사사 시대를 보낸 후 백성들은 하나님의 신정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주위 여기저기서 촉생하는 세상 왕국들의 형식에 점점 눈이 가고 마음이 솔깃해서 왕국을 세워달라고 하나님 앞에 무리한 요구를 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왕국이 되었든지 그렇지 않으면 별다른 국체를 가지든지 이스라엘은 다른 나라에는 없는 독특한 국민적인 성격을 가지고 역사의 길을 걸어가야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출애굽기 19:5-6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왜 내가 너희를 뽑아냈다’ 하는 것을 보이신 부분이 나옵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 이 세상에서 저희가 스스로 주인 노릇 하는 그런 나라로 사람들이 알지 않고 분명히 하나님이 이 백성을 특별히 꼭 쥐고 계신다는 것이 드러날 것이고 -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그들의 임무 가운데 하나가 이 세상 나라와 하나님과 사이에 제사장으로 서 있는 나라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나라 백성들의 전체의 그 기준과 다른 말로 거룩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목적을 위하여 구별되어 있고 도덕적으로는 순일하여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두려워하고 경외하여 섬기는 백성이라는 말입니다. 율법을 주시기 전에 한 전문(前文)과 같이 이것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에도 마찬가지로 해당합니다. 사도 베드로가 그 편지에 말하기를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해서 그 모든 내용이 다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서 그렇게 된 것이다 하는 얘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오이코노미아로서 가지고 있던 그 사명과 해야 할 그 목표, 국민적인 이상 그것이 오늘날에는 그리스도 교회에 그대로 다 있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너희를 선택해 놓았었는가 하면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건져내어서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와 같은 민족 사명을 주신 동시에 그렇게 거룩한 나라, 제사장 나라가 되기 위해서 그들에게 또한 율법을 주셨습니다. 이 율법을 행하고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바로 깨달아서 이스라엘 사회는 그러한 경지에 도달해서 살라 하신 것입니다. 율법의 내용은 그저 고매한 이상론을 세운 것이 아니라 매일 생활에서 현실적으로 어떻게 하라는 실정법으로서 의미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율법은 사회적인 목표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번문욕례로 잡아 늘여서 이래라 저래라 하고 사람에게 굴레를 씌우는 것이 아니라 어떤 목표를 향해서 어떤 경지를 향해서 이 단계를 징검다리로 하고, 사다리로 삼아 올라가거라 하고 주신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율법의 목적에 비춰서 사람의 잘잘못을 평가할 것이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가지고 있던 표준 즉 율법 그 자체를 지켰는가 못 지켰는가 하는 것으로 크라이테리아(criteria)를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율법이 무엇을 요구하고 무슨 정신을 요구했느냐 하는 것이 크라이테리아가 되어서 찾아야 할 것이었습니다. “너희의 의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보다 낫지 아니하고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것으론 천국을 형성할 수 없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그러한 귀한 은혜를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그 본의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이방 나라의 종교의식과 찬란한 문화에 휩쓸려 따라갔습니다. 자기네의 가장 우수하고 숭고한 민족사명이나 정신에 대해서는 깨닫지 못하고, 항상 주위에 있는 다른 나라의 종교의식과 그 의식에 부대하는 찬란한 장식들을 큰 의미가 있는 것으로, 훌륭한 문화로 생각해서 따랐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상을 섬긴 일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을 보내서 그때마다 그것을 책망하시고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올 하나님의 징계와 고통이라는 것을 정신 차려서 생각하고 하나님께 속히 돌아오도록 하신 것입니다. 징계를 받아야만 깨닫는 우매성이 거듭거듭 나타나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사람들은 선지자였습니다.
선지자들 가운데에도 왕자라고 할 만한, 문학적인 스타일에 있어서 다른 사람에 비견할 수 없는 높은 경지에서 아주 다채다능한 표현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반역과 죄악을 타매하고 회개를 촉구한 이가 이사야 선지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뽑아내신 그 큰 원칙과 목적과 또 하나님이 그 사람들을 깨닫게 하시리라는 거룩한 경지를 구체적으로 바라보면서 그걸 크라이테리아 삼아서 여러 가지 스타일을 써서, 여러 가지 수사법을 써서 아주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을 쓴 것이 이사야입니다. 특별히 이사야는 종합적이고 유니버셜(universal)한 내용을 가진 예언서라는 점에서 쌍벽이 없습니다. 거기서 우리가 주의해서 볼 것은 하나님께서 거룩한 구약의 교회를 세워 놓으시고 그들에게 요구하신 것은 무엇인데 그들의 현실은 어떻다 하는 것입니다. 다른 예언서에서도 그렇지만 특별히 여기서 그것을 보게 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주전 8세기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수명도 상당히 길었던 사람으로 대개 그가 예언 활동을 하기는 한 반세기 쯤 걸쳐 하였습니다. 그가 활동한 시기가 그가 살고 있던 남방 유다 나라의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임금 시대였다고 본문의 맨 처음에 나와 있습니다. 다윗을 제1대 왕이라고 하면 - 그전에 사울이 있었어도 왕국이 제대로의 의식과 사명과 성격을 띠기 시작한 것이 다윗 왕국부터인데 그때부터 계산해서 내려오면 - 웃시야는 제 11대 임금이고 요담은 12대 아하스는 13대이고 히스기야는 14대입니다. 대략 연대로 볼 것 같으면 웃시야 B.C. 787년서부터 히스기야 시대 B.C. 697년까지입니다. 그러나 이사야가 활동한 것은 B.C. 745년경부터입니다. 아마 이스라엘 사람들이 신성한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하려면 한 30이 되어서 부르심을 받고 일을 하게 되는 까닭에 약 30년 준비하고 수양하고 했다면 주전 745년부터 약 반세기에 걸쳐 예언자의 활동을 한 사람입니다.
그가 난 곳이 어디인지 명확하게 몰라도 대개 예루살렘에서 난 것 같고 유대 사람들의 전설, 탈무드에 의하면 그는 웃시야 왕의 사촌이라 합니다. 그러니까 이사야의 할아버지는 요아스 왕이고 그는 왕의 손자가 됩니다. 그게 전설이니까 우리가 잘 알 수 없습니다. 어쨌든지 이사야는 궁중에서 유대 나라의 사정뿐 아니라 북쪽 이스라엘 나라의 관계나 또 주위에 있는 여러 나라에 대한 소식을 그 시대에 가장 구체적으로 잘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 기구라는 것이 그때 시대에는 왕궁이었으므로 그런 것들을 잘 들어서 그의 정치적인 안목은 아주 높았고 또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생각이 깊었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예언은 여러 나라에 관해서 지적해 가면서 얘기를 할 만큼 다채로웠습니다.
유다 왕 웃시야나 요담과 아하스, 히스기야의 시대에서 우리가 주의해서 볼 것은 이사야가 예언을 쓸 때에 그 시대의 현실을 꼬집어 가지고 그 시대를 타매하고 얘기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가르쳐 주신 내용을 전하되 이스라엘 민족의 과거부터 지금까지 지내온 여러 가지 현실과 이스라엘 민족이 지고 있는 세계사적인 사명에 비추어 장차 나타날 것은 무엇인가 하는 큰 염려에 관한 것을 쓴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예언 내용이 한 시대에 국한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크신 경륜이 인간의 역사에 나타나는 어떤 한 부분의 중요한 흐름을 얘기한 것입니다.
이사야 1장을 우리가 쭉 읽으면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의 여호와께 대한 배은과 반역이라는 것이 첫째 확연히 드러납니다. 둘째는 그에 대한 하나님이 진노와 징책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필연적으로 사람의 세계에 고통이 오고 슬픔이 오는데 그 비참과 고통을 이사야는 아주 다채로운 표현으로 구사합니다. 은유법을 썼다 비유를 썼다 또 직설적으로 쓰기도 하면서 우리에게 얘기합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거기에 큰 소망을 표시했다는 것입니다. 신실치 못한 괴악한 자들에게 대해서 하나님의 분노가 임할 때 소멸할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의 그 거룩한 자비와 크신 경륜은 저들을 완전히 소멸해 버리시지 않고 거기에서 남은 자들을 구원하시고 건져 내시사 택하신 백성이 하나님의 법에 의해서 사죄함을 받고 다시 의롭다 하심을 얻어 순결을 회복하게 된다 하는 역사적인 큰 소망이 거기 또한 나타나 있습니다.
이사야와 동시대의 선지자로서는 미가가 있고, 북방을 향해 예언한 호세아가 있고, 또 아모스가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 같은 연배는 아니고 조금 앞서고 뒷 서고 그렇습니다. 아모스 같은 사람은 훨씬 더 젊은 사람입니다. 어쨌든지 동시대에 같이 예언 활동을 한 사람이 북방에는 호세아이고, 아모스는 남방 유대 산간의 드고아에서 목양자로서 살던 유대 사람이지만 그의 예언 활동은 늘 북방을 향해서 했습니다. 남방에서는 이사야와 미가가 있었는데 아마 때때로 만나서 얘기도 하고 그랬을 것입니다.
이사야는 그가 예언한 이 말씀을 한 마디로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본 이상이라” 하는 말로 표시했습니다. 여기서 ‘이상’이란 말은 독특한 심벌에 의한 무슨 환상을 보았다든지 할 때 쓰는 이상이란 말이 아니고 그 원어도 좀 달라서 ‘본다’ 하는 말입니다. 본다는 말에서 온 말이지만 크게 말할 것 같으면 ‘예언’이라 하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서 전해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다 하는 뜻과 비슷한 말입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보이시는 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그 시대에 있던 어떤 사실만을 꼬집은 것이 아니라 역사에서 취하고 또 현실에서도 취하고 또 어떤 것은 미래에 나타날 것을 취해서 크게 펼쳐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께서 교회를 땅 위에서 어떻게 해나가실 것인가에 관하여 깨닫게 하였습니다.
2절을 보면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증인을 세우되 하늘과 땅에게 ‘너희가 증인 노릇 좀 해라’ 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큰 탄식과 거의 호곡하는 소리와도 같이 ‘원 세상에 이 악을 하늘이여 좀 쳐다봐라 땅이여 이것 좀 들어봐라’ 하는 얘기입니다. 벌써 글 쓰는 것이 아주 사람의 심정 가운데 크게 울려오게 합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도 제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내가 양육했다는 이 자식, 이스라엘은 주인을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이라고 이름을 붙여준 이 백성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도다.” 이것이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이다 하면서 처음부터 이스라엘 백성의 반역과 배은을 맹렬히 타매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이사야의 탄식이 나옵니다. 문학적인 미라는 관점에서도 볼 때 변화가 많게 참 다채롭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리쳤도다.” 자 그러면 너희들은 괜찮으냐? 그가 여기서 탄식하는 것은 어찌하여 이런 위험한 짓을 하고 있느냐 그것입니다. 과거에도 너희가 그런 짓을 해서 매를 맞아서 흔적이 있는데 매를 좀 더 맞으려고 그러느냐?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네가 이미 얼마나 맞았는가 보아라. “온 머리는 병들어 있고 - 머리가 병들어 있다 말이오 -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가는 회초리들로 묶은 긴 채로 맞은 흔적 뿐이어늘 괸 고름을 짜낸 일이 없고 싸매 준 일도 없고 또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도 못하고 있지 않느냐.” 이렇게 은유법을 써서 다채롭게 표현 했습니다. 매 맞은 한 사람으로서 표시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일전(一轉) 해서 직설로 이야기합니다. “너희의 땅은 황무했고 너희의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의 토지는 너희의 목전에서 이방인에게 삼키웠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같이 황무했고 딸 시온만이 원두밭의 상직막같이 겨우 남았도다.” 앗수르가 와서 다 그렇게 해나갈 판입니다. 이것은 701년에 있던 일로서 이사야가 자기 사명의 거의 마지막 때, 노인이 되었을 때에 앗수르가 유다까지 쳐들어 와서 벌어지게 될 환난입니다. 앗수르의 강력한 힘은 이사야의 예언 활동 및 봉사의 생활에서 항상 대척적인 위치에서 북쪽 이스라엘 나라와 남쪽 유다 나라를 위협 했습니다.
앗수르는 아주 오래된 나라입니다. 주전 2000년경에 벌써 그 이름이 나온 나라입니다. 그렇지만 그 나라가 세계적인 제국으로 용명(勇名)을 떨치기 시작한 것은 B.C. 875년경부터인데 아주 잔혹한 그 백성들이 사위(四圍)의 나라를 막 집어먹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북쪽 이스라엘 나라가 아람 나라와 의논을 하여 남방 유다를 쳤는데, 이게 734년경 얘기입니다, 그만 어떻게 할 길이 없으니까 유다는 사자를 멀리 앗수르로 보내 가지고 원조를 요청했습니다. 앗수르의 속국과 같이 조공을 해주고 ‘저놈들이 우리를 못 치게 좀 도와주십시오’ 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니까 앗수르가 그 말을 듣고 대군을 몰고 와서 수리아와 이스라엘 나라를 쳤습니다. 그리고는 갈릴리 일대로 막 몰려 들어가 굉장히 많은 사람들을 잡아서 북쪽으로 가버렸어요. 이게 ‘갈릴리 포로 사건’ 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앗수르한테 그렇게 곤욕을 당한 뒤에 다시 쳐내려온 앗수르의 사르곤 임금에게 주전 721년에 완전히 망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다시는 회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 다음에 한 20년 지나서는 앗수르가 이번에는 유다까지 집어먹으려고 남쪽으로 몰려 내려와서 유다의 40여개 성읍을 궤멸시켰습니다. 여기 본문에 나오는 말대로 황무해 가지고 아무것도 없고 딸 시온 하나만 남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이 대목은 지금 예언으로 그렇게 얘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701년쯤에 이사야는 한 70세가 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체로 볼 때 반드시 그때 이후 늙어 가지고 썼다고 볼 이유가 없습니다. 그때 앗수르 사람들이 유다에 와서 그 많은 성읍을 친 다음에 사람들을 잡아 다시 앗수르로 갔습니다. 이것이 히스기야 때입니다. 얼마 후 앗수르는 다시 유다를 침공하였고 그때 히스기야는 하나님 앞에 간절히 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계시하셨고 그 계시대로 천사가 와서 18만 5천 앗수르의 대군을 도륙해 버렸습니다. 그 후에 앗수르 임금 산헤립은 본국으로 돌아가 20년을 더 살았지만 다시는 예루살렘으로 쳐내려오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받은 타격이 컸고 또한 하나님의 무서운 징벌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이사야 시대에 앗수르는 이런 관계에 있던 나라입니다.
이사야는 유다 왕국이 장차 앗수르에게 그렇게 될 것을 이야기하면서 “시온만이 에워싸인 성읍같이 겨우 남았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 장차 이렇게 무서운 사실이 올 것인데 너희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여전히 악을 행하고 있느냐? 이것이 이사야서의 서두에 있는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그는 여러 열국에 관해서도 많은 예언을 했지만 주로 항상 유다와 예루살렘 중심으로 얘기하였습니다. 유다와 예루살렘, 시온 즉 장차 올 메시아의 내림과 복음의 사실 또 메시아가 주실 바 그 은혜의 자리를 놓고 얘기합니다. 그런 만큼 복음적인 내용을 또한 많이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사야서를 다섯 번째의 복음서라고 하기도 합니다.
여기 이사야서 맨 처음에서 우리가 보는 바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 구약 교회로 하나님이 선택해서 그 크신 하나님의 경륜을 나타낼 오이코노미아가 자신의 성격과 존재 의의, 또한 신성한 사명은 느끼지 못하고 배반하고 반역하는 죄악으로 말미암아 받은 징계의 자리가 아물지도 않았는데도 계속적으로 악을 행하는 답답하고 슬픈 현실을 통곡하듯이 외치는 소리입니다. ‘하늘이여 이것 좀 보아라 땅이여 귀를 기울여 이 소리 좀 들어라’ 하는 슬픔과 통곡입니다.
출처 : 행 복 충 전 소
글쓴이 : DaeMyu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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