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01 14

빛을 이어가는 사람들 (요 1:9) / 김재홍 목사

'참 빛이 있었다. 그 빛이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다.'-------------1. 어둠은 계속되고예수, 나심 좋을시고~. 청파교회의 성탄절 인사입니다. 우리 구주, 메시야께서 주시는 참된 평안과 위로와 새롭게 하시는 은혜가 저와 여러분 위에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그리고 전쟁 많은 이 세계와 혼란 중인 이 나라와 신음하는 이 피조세계 위에도 주님의 평화가 함께하시기를 빕니다.빛이신 주님이 찾아오셨지만, 이 세상은 여전히 어둡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는 3년째 전쟁 중이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은 1년 3개월째 전쟁 중입니다. 이스라엘과 가자지구의 전쟁은 휴전 이야기가 오래 전부터 나오고 있지만 휴전 합의에 이르고 있지 못합니다.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무차별적 폭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

십계명(8), 11월12일(월) / 정용섭 목사

“도둑질하지 말라.”(출 20:15) 주님, 오늘 우리는 너무나 평범한 명제를 하나님의 계명으로 듣습니다. ‘도둑질하지 말라.’ 이 세상 어떤 종교도, 어떤 선생도, 어떤 부모도 도둑질하라고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무엇이 도둑질인지 잘 모른다는 데에 있습니다.     우리는 직접 남의 것을 훔친 행위만을 도둑질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도둑놈을 감옥에 처넣고, 그런 조치를 정의라고 규정합니다. 그런 도둑들은 주로 생계형 도둑에 불과합니다. 오늘날 합법적으로 더 크게 도둑질하는 개인과 단체와 국가도 많습니다.     주님, 세상만이 아니라 교회도 도둑질을 합니다. 기독교인들의 부동산 투기가 도둑질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공포와 사행심을 부추겨 분에 넘칠 정도로 헌금하게 하는 것이 도둑질 아니고 무엇이겠습..

십계명(10), 11월14일(수) / 정용섭 목사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출 20:17)  주님, 오늘 우리는 십계명의 마지막 말씀을 듣습니다. 우리가 언제 이웃집을 탐냈다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우리는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돈 벌고, 열심히 가정을 돌보고, 열심히 교회 봉사하면서 살았습니다. 이웃집을 탐낸 적이 없습니다.     이웃집을 탐낸 적이 없다는 말은 정직하게 않습니다. 겉으로야 양심적으로 산다고 하지만 속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는 끊임없이 이웃집을 탐내고 있습니다. 우리의 탐욕은 끝이 없습니다. 이웃을 파괴하고 결국 자기까지 파괴합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우리는 지금 무한 경쟁, 무한 탐욕에 근거해서 작동되는 21세기의 신자유주의 체제에 무기력하게 휩쓸려갑니다. 자신도 모르게 탐욕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

십계명(9), 11월13일(화) / 정용섭 목사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출 20:16) 주님, 우리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면서 삽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거짓말만이 아니라 교묘하게 숨어 있는 거짓말이 우리 삶에, 우리의 무의식에 깊숙이 배어 있습니다. 우리의 거짓말로 인해서 자신과 이웃의 삶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선지자의 전통을 따라가는 목사들의 거짓말로 인해서 수많은 기독교인들의 영혼이 병들어갑니다. 친미 사대주의가 복음인 것처럼, 반공주의가 기독교 신앙인 본질인 것처럼 가르치고, 성적 소수자를 정죄하는 설교는 거짓 증거입니다. 오늘의 극단적인 물질주의를 하나님의 축복으로 포장하는 행태도 거짓 증거입니다. 이런 거짓 증거에 반복적으로 노출됨으로써 기독교인의 인격이 왜곡되고 있습니다.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십계명(7), 11월11일(주일) / 정용섭 목사

“간음하지 말라.”(출 20:14) 주님,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일곱 번째 명령을 듣습니다. 오늘처럼 성폭력이 만연한 시대에 이 명령은 더욱 준엄합니다. 구약성경에서도 흔하게 확인할 수 있듯이 이런 일들은 시대를 불문하고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28). 겉으로 드러난 행위만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 안에서 작동되고 있는 성적 욕망이 실제 간음과 다를 게 없다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여기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도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의 성욕을 허락하셨습니다. 그것이 없다면 생명은 유지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한 선물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폭력..

십계명(6), 11월10일(토) / 정용섭 목사

“살인하지 말라.”(출 20:13) 주님, 오늘도 우리는 당연한 명령을 들었습니다. “살인하지 말라.” 당연한 명령인데도 여전히 세상에는 살인이 그치지 않습니다. 카인과 아벨의 형제 살해로부터 시작되는 인류 역사는 피로 얼룩져 있습니다. 개인적인 원한으로 살인하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느라 살인하고, 국가 이데올로기를 추종하느라 살인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주님, 우리는 직접적으로 살인을 저지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간접적으로 살인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형제를 향해서 화를 내거나 욕을 하는 것마저 이미 살인한 것과 마찬가지의 심판을 받는다고 경고하셨습니다(마 5:22). 이런 경고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살인자들입니다.     열악한 노동현장에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십계명(5), 11월9일(금)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 20:12)   주님, 오늘 다섯 번째 계명을 듣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윤리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 이전에 본성적인 윤리입니다. 그런데 왜 그것을 계명으로 말씀하셨는지요. 반복적으로 가슴에 새겨야 할 정도로 중요한 것이라는 뜻인지, 또는 예상 밖으로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인지요?     그렇습니다. 부모는 단순히 피를 나눈 부모만이 아니라 모든 늙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사람은 늙음 앞에서 좌절합니다. 생존의 능력이 떨어지기도 하고, 정신적으로 무기력해지기도 합니다. 노후보장이 전혀 없었던 고대사회에서 늙음은 생존의 위기이며, 또한 후손들에게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경쟁력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현대사회에서도 역시 늙은 사람들은..

믿는다는 것 (시편 15편) / 김영봉 목사

해설:앞의 시편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부정하고 자신의 욕망대로 사는 “어리석은 자”의 삶의 태도에 대해 묘사했는데,  이 시편에서는 “지혜로운 자”의 삶의 태도에 대해 묘사한다.  “주님의 장막”(1절)은 광야 유랑 시절부터 이스라엘 백성이 제사 드리던 성막을 가리킨다. “주님의 거룩한 산”은 성전이 세워진 시온산을 가리킨다. “성막(혹은 성전)에 산다”는 말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과 같다. 1절의 질문은 “주님을 믿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라는 뜻이다.  2절에서 다윗은 세 가지의 덕을 먼저 제시한다. “깨끗한”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타밈’은 “바른”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정의”는 ‘쩨데크’의 번역이고, “진실”은 ‘에메트’의 번역이다. 이 세 단어는 하나님의 성품을 묘사할 때 가장 중..

일터에서 수고하여 형통하라!(시편 128:1-2) / 원용일 목사

일터에서 수고하여 형통하라!(시편 128:1-2)다시 밝아온 새해에도 우리는 일하며 살아갑니다.어떻게 일터에서 복된 삶을 살 수 있을까요?시편 128:1-21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2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시편 128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중 하나입니다. 이 시에서는 복을 반복해 노래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다고 노래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 신앙의 길을 걷는 사람이 복됩니다. 손으로 수고하면 복되다고 합니다. 형통할 것이라고 합니다. 수고한 대로 결과물을 얻는 추수의 법칙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어디에서 힘써야 합니까? 바로 일터입니다. 우리가 일터에서 복을 받고 형통, 성공의 길을..

갈망과 욕망사이에서 / 봉민근

갈망과 욕망사이에서       글쓴이/봉민근인간은 갈망하는 존재다.하나님만 바라고 하나님만 갈망하는 삶이라면 얼마나 좋을까?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아니라 세상적인 욕심에 빠져 사는 것이 문제다.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갈망과 자신의 욕망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자신의 강한 신념이나 의지 보다 더 강한 것이 그 무엇으로도 채우지 못할 욕망이다.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욕망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인간이다.세상적인 욕망이 지나치면 하나님이 보이지를 않는다.기도를 해도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다.수단화된 신앙은 하나님이 욕망의 도구일 뿐 하나님 자신을 구하지 않는다.세상에 대한 욕심은 채워도 채워지지 않으며 거기에는 참 만족함이 없다.그런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